탁군은 호러영화를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호러영화만 보다보면 정서가 불안정해지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개소리라고 넘겨버리는 탁군이지만, (아마도 다른 호러팬들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현실을 지배한다는 얘기는 원래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약간 조용한 영화를 보면 금새 지루해 하는 경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영화를 만든 모든 스텝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내 돈 7000원을 주고는 절대로 극장에서 보지 않을 만한 영화중의 하나였다.

다행스럽게도 시사회라는 장치를 통해 영화를 볼 수있게 되었고, 영화는 기대이상이었다. ( 만약 이 영화를 극장에서 놓쳤다면 엄청 후회했을 것이다, 따위의 얘기는 하지 않겠다. 영화가 좋았다고 느끼는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

혹자는 이 영화가 젊은이들의 희망없는 일상을 건조하게 담아냈던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고들 하는데, 감독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탁군의 느낌엔 전작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전작 '세 친구'에서의 젊은이들의 모습은 우울하기 그지 없었지만 오히려 '와이키키..'에서의 주인공들의 10대 시절의 모습은 훨씬 더 밝고, 힘이 넘쳐 흐른다.

'세 친구'에서의 무소속이나 삼겹,섬세같은 주인공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면, '와이키키..'에서의 10대시절의 친구들은 아웃사이더라기 보다 그저 꿈을 잃고 현실에 안주한 우리 삶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있는 중장년층의 모습이다.

거기에다 간간히 나오는 일상적인 유머장치들 ( 물론 특별히 의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 은 영화를 훨씬 더 편하게 볼 수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다.

'세 친구'에서도 그랬지만 영화는 관객이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보고 펑펑 울만한 감정의 과잉상태를 불러오지는 않는다. 그저 비루한 주인공들의 일상을 지켜볼 뿐이다.

카메라는 단 한 순간, 강수가 팔을 다쳐 술을 마시고 있는 장면에서의 상반신 풀샷을 제외하고는 주인공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대놓고' 눈물을 보이는 장면도 이 장면 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사실적인 '일상'이기에 관객들에게 지켜보는 것 이상의 감정적 접근을 허락하지 않고, 그것은 탁군이 영화에 있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약간의 오버를 보여준다. 결국 수안보를 떠난 주인공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여인을 보컬로 여수에서 다시 무대에 서며 영화는 끝나는데, 밴드일원들의 웃음짓는 얼굴에서 희망을 발견할 순 있지만, 조금은 뜬금없고, 너무나 사실적인 영화속에서 유일하게 비현실적인 장면이다.

마지막 장면 바로 전에 결국 혼자 남은 주인공이 변태 영업소에서 발가벗긴채 연주를 하는 장면이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모습 (역시 벗은 모습이다) 과 겹쳐지는 장면이 있었는데, 탁군은 개인적으로 여기서 영화가 끝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물론, 거기서 영화가 끝났으면 영화가 완결성을 가지지 못한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마지막 장면이 더 사족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한물간 밴드의 재기를 다룬 영화가 아닐바에야 철저히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마땅하다. (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

그럼 마지막으로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이 질문은 영화속에서도 등장하고 영화가 끝난 뒤 배우들에게 던져졌던 질문이기도 한대, 두 가지 모두 대답은 하나였다.

'행복하다. 현실은 어렵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기 때문이다.'

누구나가 자신의 이상과 현실 앞에서 고민을 하기 마련인데 영화속 마지막 장면에서 웃음짓는 밴드들의 모습이나 거리낌없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영화 밖 배우들의 모습을 보면 이들에게는 이미 그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

p.s. 포스터의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류승범의 실제 출연시간은 얼마되지 않는다. 아무리 저예산영화로써 홍보에 신경을 써야한다지만 다분히 흥행을 의식한 포스터라 기분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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