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감독의 영화를 얘기하면서 전작을 들먹이는 건 참 유치한 짓이다. 그들이 영화마다 표현을 달리하고 자세를 달리한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짓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영화를 만들지 않은 감독에게는 하나의 감독론을 기록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본다. 뭐. . 이 말은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짓을 자행하는 나를 위로하는 거고.

임순례 감독은 단편 <우중산책>, 장편 <세 친구>를 거쳐 <와이키키 브라더스>까지 왔다. 그에게선 흔히 말하는 여성 감독의 감수성을 찾을 수 없다. <우중산책>에서 그것을 찾으려 한다면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곡해하게 되는 이유일 수도 있다.

류승범이라는 유명한 신인(?) 배우를 포스터 전면에 내세우고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과 만든 신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전작들과 비교해 조금 색다른 면이 있다. 그는 인물들과 한발짝 떨어졌다 다시 다가가는 식의 영화 만들기를 했는데 <세 친구>가 독특한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어울리지 않게 다룬 것에 반해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평범한 이야기를 그와 아주 어울리게 담아낸 작품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한 남자가 혼자가 되는 과정과 거기서 느끼는 아쉬움과 향수. 그리고 그 남자가 다시 혼자가 아니게 되는 것. 거기엔 한 발짝 떨어져서 냉정하게 바라본 사랑이 있고 조금 다가가 바라본 남자들의 관계가 있다. 결국 주인공과 오래하게 되는 남자 두 명은 <세 친구>의 구조와 얼핏 닮아있지만 그들의 상관관계는 다르다. 서로 하는 일이 독립되지 않고 그들간의 문제에 끼어들게 되며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로 합쳐진다. 이런 구조는 그들의 감정으로는 <세 친구>의 친구들과 같지만 겉모습으로는 결국 흩어지게 된다. 임순례 감독은 다른 감정으로 같은 결과 만들기와 같은 감정으로 다른 결과 만들기를 실험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슬픔을 우리가 보며 즐기기에는 끝맺음이 조금 거슬린다는 것이다. 한참 힘든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애처로움이 감도는 웃음을 쏟아낸 관객이 궁여지책의 해피엔딩을 보며 박수를 쳐주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이 말은 극단적 즐거움과 슬픔에 길들여져 있는 지금의 관객들에게는 다가서기 어려운 영화라는 것이다. 삶이, 인간들이 항상 극과 극에 서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영화들이 극장 안에서만은 사람들을 그렇게 길들여 놨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또 주목할 것은 촬영과 조명이다. 이야기의 늘어짐을 감추는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촬영은 자칫 지겨워질 수 있는 관객들에게 가장 안정적인 부합을 보여줬고 <텔미썸딩>, <공동경비구역 JSA>등의 조명을 담당했던 임재영 조명기사의 빛에 대한 감정은 영화를 더욱 빛내주고 있다.

그리고. . 독자를 위해 하는 말인데. . 이 영화에서 음악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인간들의 엮어주는 매개체의 역할이고 류승범은 리트머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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