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기
톰 행크스의 영화 속 페르소나는 항상 그래 왔지만 제임스 스튜어트와 함께 모든 미국 남성들의 평균적인 이미지를 창출해 왔었다. 톰이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과 가장 공화적인 미국 남성들의 성실함과 자상함, 가정적인 모습을 연출해 왔다면 알프레드 히치콕과 작업했던 스튜어트의 경우, 가장 민주적이며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미국의 남성들을 대변해왔다. 두 감독의 작품 스타일이나 연출성향에 비추어 이러한 자신의 영화 속 페르소나를 완성시키는 상이한 형태는, 이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이르러 더 대중적이고, 우아하며, 세련되어진 저멕키스의 작업 방식과 잘 다듬어진 톰의 연기로 인해 한층 더 그 차이를 드러내게 될 것 같다.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은 1985년부터 시작된 '백투더 퓨처' 시리즈를 통해 영화의 테크놀로지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경외로운 모습들에 가장 경도된 헐리웃의 몇 안되는 감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88년 '누가 로저래빗을 모함했나?'에 이르러서는 실사와 합성된 만화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1992년 '죽어야 사는 여자'에서는 아름다움과 미모를 결부시키려는 인간들의 끊임없는 사투(?)를 초보적인 특수효과를 동원해 그려내기도 했다. 또한 1994년 '포레스트 검프'가 가져다 준 엄청난 시너지 효과들을 바라보면서 저멕키스 감독은 보수적인 정치적 애국주의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바보스러움에 덧붙여 테크놀로지와 이데올로기의 그 완전한 결합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그러나 가장 먼 공간으로부터의 수화와도 같은 기호들의 조합을 영화의 테크놀로지로 보여준다는 것에 흡족할 만큼 따라주지 못했던 것이 '콘택트'였다. 그것은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관객과 함께 외계인과의 제3의 근접조우를 시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리수가 따르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예가 되 버렸다. 결국 이 영화는 스프트니크호가 지나쳤던 아쉬움에 대한 우주의 동경을 한 소녀의 꿈으로만 해석했을 따름이었다. 그것은 테크놀로지의 자장 안에서 영화가 지닐 수 있는 최대의 배수이자 약수로 우주를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오류였던 것 같다. 그것이 저멕키스의 매력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관점의 차이기도 하다. 그것들의 공통분모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캐스트 어웨이'다.

2. 영화 안에서
다분히 조직적이면서 관료적인 냄새를 풍기는 페덱스의 러시아 지부 팀장을 맡고 있는 척 놀랜드(톰 행크스)는 크리스마스를 멤피스에 있는 그의 약혼자인 켈리 프레어즈(헬렌 헌트)와 함께 보내기 위해 일손을 서두른다.

크리스마스 저녁을 함께 보내던 중 본사로부터 호출 연락을 받은 척은 그녀와 아쉬운 작별을 뒤로한 채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12월 31일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하면서...

하지만 남태평양 상공에서 비행기는 이상기류에 휘말리고 비행기 내부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뒤바뀐다. 유일한 생존자로 외딴 섬에 홀로 남겨진 척. 그로부터 5년 동안 그 섬에서의 외로운 삶의 기록들이 시작된다.

3. 한 남자의 이야기
로빈슨크로소 이야기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모험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작년 여름 미국 티비프로그램 중에서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생존게임'이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6명이 함께 무인도에 들어가 생활하면서 최후의 1인을 가리는 그런 오락프로였다. 물론 13개월이나 촬영을 이어온 이 영화에 그런 흉부를 들이미는 것은 조금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현대인의 심리에 대해 참고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외로움도 상품이 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바로 요즘 사회인 것이다. 무인도에서 살아가는 방법까지 티비를 참조하는 세상인 까닭이다.

그런 암울한 판단이 전부가 아닌 까닭은 척 놀랜드가 생명을 부지하는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약혼녀인 켈리 프레어즈를 기억하는 작은 시계, 배구공을 웨인이라 이름 붙이며 의인화하는 것에서 척은 삶의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누구와 공유할 수 있는 끈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무인도에서 혹은 사회에서 고립되는 수많은 현대인들에게 자신과 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얼마나 소중히 간직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암시하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다는 것이다. 그 누구와도 이웃할 수 없으며,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 철저한 무신경의 세계. 자신과의 철저한 싸움인 것이다. 관객들은 2시간을 조금 넘는 지루한 시간에 아무도 나오지 않고 덩그러니 남겨진 한 남자의 생존에 관한 사투를 들여다보게 된다. 감독은 여타의 시선을 허용치 않기 위해 철저하게 무인도 안에서의 척의 생활만을 다룬다. 그것은 척이라는 인물의 내부의 스토리텔링에 의해 진행되여야만 하는 모순과 자기함정에 빠져드는 위험을 안고 있지만 감독은 사실성을 부과하기 위해 극적인 여과장치를 전혀 이 섬에 들여놓지 않는다. 관객과 극중 인물의 철저한 동질감을 이끌어 내기 위해 그러한 상황을 역이용한 셈이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흥분되는 수중 촬영과 폭풍우 씬을 들 수 있겠는데, 지난 해 여름 개봉됐던 '퍼펙트 스톰' 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듯한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모험이라는 장르에서 우리나라 관객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항상 이중적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톰 행크스라 해도 똥배 내밀며 사죽을 이간질하는 표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흥행되는 스코어를 지켜보며 추측해 보는 수밖에 없겠다.

표류라는 사건은 아마도 톰 행크스가 당면한 영화 속 문제들 중에서 가장 큰 난관과 부딪치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그가 출연작 전작들을 살펴보면 그의 영화는 대부분 인간적인 구린내를 풍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사실적이든 사실적이지 않든 간에 그의 영화 안에서 우리는 항상 모범적인 삶을 기대하며 부드럽게 살아가는 유토피아적 삶에 푹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경우가 다르듯 가장 큰 난관에 부딪힌 그에게 우린 온전한 삶의 이면들을 기대키 어렵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사고를 모험으로 치장하고 깨어져 버린 그의 1500일 간의 사라진 과거를 단지 귀향이라는 환영과 맞물려 쉽게 지우려 한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여전한 미련과 아픔은 그가 혼자 무인도에 살았을 때는 겪어 보지 못했던 것들 이였다. 새옹지마 같은 인간사를 그는 사회에 다시 도착하자마자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캐스트 어웨이'속에서 톰은 결코 부유하지 않는다. 그는 무인도에서 삶이란 목표를 정했듯 사회에서도 한 가지 목표를 갖기 위해 길을 찾는다.

4. 나가기
로빈슨 크루소의 원작자인 다니엘 디포는 실제로 4년 간이나 무인도에서 생활했던 스코트랜드 선원의 모험담을 참고로 소설을 창작했다. 그는 이 소설에서 살아가는 수단으로서 자신의 노동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페덱스가 삶의 도구를 대신하고 있다. 문명의 이기는 변질하지만 원천적인 도구인 인간의 노동은 계속해서 생산물을 나아야 한다는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흥행과 평단 모두에서 가장 성공을 거두었던 두 사람은 바로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과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다. 저멕키스 감독은 '왓 라이즈 비니스'와 이 영화. 소더버그 감독은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을 동시에 상영 중에 있다. 아마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두 영화를 함께 지켜보는 일이 많아질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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