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ry의 영화읽기 #10

"아디... 죽음은 죽음일뿐 극복할 수 없어요..." 성을 떠나 자신이 만든 지옥으로 향하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건네는 에바 브라운의 마지막 대사에서 <몰로흐>는 안개속에서 벗어난다. 아돌프 히틀러와 같은 꿈을 꾸었던 독재자를 중국의 역사속에서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지나치게 이상화된 영웅의 모습의 이면과도 같이, 죽음의 그림자에 두려워하는 히틀러의 모습은 완벽한 괴물로서 주형되었던 인물을 영화속에서 다시금 재구성한다.

알렉산더 소쿠로프는 에이젠슈타인과 타르코프스키의 중간쯤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것은 소쿠로프 자신이 위대한 러시아 영화의 두 개의 유산을 물려받은 영화작가임을 의미한다. 소쿠로프의 필모그래피가 타르코프스키와 달리 다큐멘타리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은 그가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VGIK에서 배운 영화 지식을 타르코프스키처럼 절대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내면화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그의 필로그래피는 분명히 다큐멘타리에서 그 경계를 허물고, 다시 시적 리얼리즘으로 이행하고 있는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그가 소비에트 해체 이후의 러시아 특유의 체르누하(어두운 색체의 영화)를 지탱하는 감독으로 불리우게 된 이유이다. 그는 니키타 미할코프와 함께 슬라브 민족성 특유의 진지함으로 자신의 내면세계와 영혼의 탐구에 몰두해온 러시아 영화가 체홉, 도프도예프스키, 톨스토이로 대표되는 러시아 문학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속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으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몰락한 러시아 필름 스튜디오의 페허위에서 자본주의화되어진 젊은 감독들과 달리 여전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는 몇 안되는 감독들 중 하나이다.

독점적이고 전제적인 정부의 영화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러시아 영화감독들은 그들 특유의 상징과 은유의 세계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주제의 추상성과 진지함은 이러한 러시아 영화의 시적 리얼리즘을 발전시키는 근원이 된다. 소쿠로프는 그러한 전통속에서 삶과 죽음, 러시아적인 정체성을 진지하게 사색한다. 그에게 있어서 다큐멘타리와 극영화를 나누는 틀이나, 이데올로기적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따라서, 타르코프스키와 마찬가지로 그의 영화는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영화적 성찰의 결과물이다. 모든 영화감독은 자신만의 작가적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영화적 사명인 소쿠로프는 동일한 사고를 가지고, 그보다 조금 앞서 자신만의 리얼리즘 세계를 구현했던 타르코프스키와 분명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쿠로프가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삼 개국 자본의 합작으로 제작한 <몰로흐>는 그의 영화적 사색의 가장 최근의 결과물이다. 이제 더 이상 체르누하에 투자할 자본을 구할 수 없는 러시아의 영화산업속에서 소쿠로프의 명성은 분명히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분명하다. <몰로흐>는 러시아어가 아닌 독일어로 대화를 나누며, 영화속에는 그가 러시아의 이미지를 담았다고 말했던 전작 <러시아 엘레지93'>나 러시아 문학의 전통속에 존재하는 <스톤92'>과 달리 러시아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되어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사색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보편성으로 향한 듯 보이기도 한다. 소쿠로프는 <세컨드 서클90'>에서 다루었던 죽음의 문제를 아돌프 히틀러라는 실존하는 인물의 모습속에서 다룸으로써, 결코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한다.

영화는 이렇다할 갈등구조없이 연극적인 형식속에서 진행된다. 한정된 공간속에서 한정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지극히 연극적인 분위기를 띄며, 탈색되어진 색채의 어두움은 카메라에 비추어지는 모든 인물들을 사색의 대상으로 만든다. 타르코프스키적이라기 보다는 잉그마르 베르히만을 연상시키는 스타일로 소쿠로프는 에바의 시점에서 히틀러와 그의 심복들을 그린다. 그것은 역사속에서 지극히 개인화된 시점으로의 이행이다. 에바의 주관적인 시점에서 기억되어지는 나치의 수뇌들은 어리숙하고, 치사하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것을 바라보는 친위장교의 시선, 혹은 망원경을 통한 시선들은 에바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개인화되어진 탈역사적인 관점들이다. 그들이 그 속에서 나누는 대화들은 역사적인 것들이 아니라, 개인화된 것들이며, 따라서 실제로 존재했던 살아있었던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산정상의 성은 안개로 둘러쌓여있고, 공간은 표현주의적이다. 그들이 나누는 무의미한 대화들은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인물들이 살아있음을 의미하지만, 그들의 주위에는 이미 죽음이 존재한다. 소쿠로프가 바라보는 인간적임은 혼재하는 죽음속에서 희극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에바와의 섹스를 거부할 만큼이나 정신적인 불모상태에 놓여있다. 그는 비정상적인 과대망상증과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그가 가지고 있는 불안은 죽음과 유한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적인 것이다. 문제는 그의 피해의식이 치유되어질 수 없다는 점이며, 그것은 에바와의 불안정한 관계속에서 치유가능성을 상실한 것이다. 에바가 사랑한 연약한 남자는 속살보다 겉껍질이 더욱 단단한 견갑류의 괴물이 되어버렸다. 소쿠로프가 바라보는 히틀러는 그런 인물인 것이다. 그와 그를 둘러싼 주변의 인물들은 희극의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심술굳은 뚱뚱이와 기죽은 땅딸이는 마르틴과 선전상인 괴벨의 이미지이다. 여자들은 언제나 의미없이 깔깔거리고, 그들은 모두 연극적인 희비극성을 가지고 있다. 소쿠로프에게 있어서 히틀러는 신을 믿지 않기에 그만큼 두려워했던 존재이다. 그를 찾아온 신부와의 대화속에서 히틀러는 그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더더욱 강경하게 신부를 내친다. 그러나, 계단 난간의 양면의 석상처럼, 그의 이면은 에바가 사랑했던 어리숙하고 두려움에 떠는 인간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소쿠로프는 모든 작가는 자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것과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소쿠로프에게 있어서 히틀러는 완벽하게 탈인간화된 역사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있는 신경증, 결말부를 이루는 에바와의 희극적 상황은 그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인간임을 드러낸다. 아우슈비츠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도, 인종말살정책을 주장한 히틀러는 자신의 행위의 결과물에 대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인간중에 하나일 뿐이며, 그를 한없이 위협하는 죽음에 대해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자살한 과거의 존재이다. 소쿠로프는 히틀러의 내면을 인간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세계내에서의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과,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것은 2차대전을 직접 경험했었고 그 기억속에서 끊임없이 3차대전을 두려워했던 타르코프스키와 달리 소쿠로프가 속해있는 전후세대가 가지고 있는 탈역사적일 수밖에 없는 철학적 사색을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르코프스키가 <솔라리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기억의 문제를 다루며, 과거의 악몽을 되짚을 때, 소쿠로프는 순수한 철학적 사색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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