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rry의 영화읽기 #11

마이클 래비거는 다큐멘타리란 일정한 사건에 대한 제작자의 시선이 드러나는 영상으로 쓴 에세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다큐멘타리는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던 순간, 혹은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의 인과관계, 그리고, 그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의 결과라는 시간의 이야기구조에 의해 완결성을 갖는다. 극영화가 19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시간에 대한 모더니즘적인 사고를 시작한데 반해서, 다큐멘타리가 시간에 의한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은, 다큐멘타리가 드러내고자 하는 이야기구조가 극영화와는 달리 애시당초부터 삶으로부터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며, 인간의 삶은 시간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1975년 샹탈 애커만 Chantal Akerman 은 <잔느딜망 Jeanne Dielman, 23 Qual du commerce, 1080 Bruxelles>을 통해서 카메라의 시선을 시간의 흔적에서 공간의 존재로 옮겨놓는다. 그녀에게 있어서 사건은 나름대로 치열하지만, 재현의 모든 대상은 아니다. 사건의 연대기적 재현은 완전한 이야기틀의 구성을 가능하게 만들지만, 재현의 대상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나래티브구조속에 가두어진다. 따라서,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로서 샹탈 애커만은 평범한 가정주부인 잔느 딜망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그녀가 사회와 맺고 있는 불평등한 관계와 심리를 공간속에서 형상화시키는데 주력한다. 공간은 사건의 흐름과 무관하게 사건과 인물 모두를 포함한다. 그리고, 공간은 잔느 딜망이 속해있는 권력구조의 축소판이 된다. 잔느 딜망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속에서 그녀가 속해 있는 구조와 그래서 파생되는 이야기는 한없이 그안을 맴돈다. 사회적, 구조적 모순관계인 성적 착취는 개별 사건의 문제가 아니라, 현세계내의 문제인 것이다.

90년대의 샹탈 애커만은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곳은 성차별과는 다른 형태의, 그러나 분명한 차별이 존재하고 있는 미국 남부의 소도시 재스퍼이다. 그것은 미국의 <남쪽>이다. 그곳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미드나잇 가든>의 '사바나'처럼 미국의 원형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성적인 차별을 집요하게 드러내는 전위적 페미니스트로서 영화를 시작했던 샹탈 애커만이 지구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또다른 차별인 인종차별에 대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1999년의 <남쪽>과 1975년의 <잔느 딜망> 사이에는 그녀의 공간에 대한 성찰이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이 존재하고 있었다. 와 은 <잔느 딜망>에서 시작된 그녀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작업이 농익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남쪽>은 남부 미국 소도시의 공간에 대한 응시에서 시작한다. 인물은 화면속에 드러나는 제스퍼라는 도시의 한부분을 이룬다. 그러므로 그속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은 구조적인 것이며, 제스퍼라는 도시에서 자행된 제임스 버드 주니어에 대한 살인행위는 재스퍼의 일부분으로서의 사건이다. 샹탈 애커만은 <남쪽>에서 사건을 재현하는 것만큼이나, 인종차별을 표면적으로 다루는 것을 경계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버드의 살해과정의 다큐적 재현은 재스퍼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인종차별의 핵심을 벗어난 미니멀리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적이고, 분석적인 카메라를 들고 복합적인 시선을 영화에 담아내기 위해서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녀의 방법은 그녀가 오랫동안 숙련시킨 공간의 방법론이다. 그것은 빔 벤더스를 연상시키는 지긋한 길의 응시와, fix된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 인물들의 모습, 전경과 중경, 후경을 통해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화면구도를 통해 표현된다. 샹탈 애커만은 목격자들이 보지 못한 살해장면을 임의로 재현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에, 그녀는 버드가 차에 매달려 끌려갔던 길과, 그가 내던져진 들판만을 보여준다. 사건이 발생했던 순간으로서의 시간은 오랫동안 영화가 붙잡아두려한 미학의 정점이다. 바쟁이 말했듯이, 조형 예술의 원형은 시체보관의 욕구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시간을 붙잡아두는 것은, 그러나 사건을 인위적으로 재현시키며, 인종차별을 유발시키는 구조적 단층보다는 사건자체에 방점을 찍는다. 대신에, 샹탈 애커만은 크게 세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테이크들로 사건과 사건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관계를 드러낸다. 흑인사회를 이루는 거리와 인터뷰가 아닌 지켜보는 흑인들의 일상적인 모습들과, 버드가 살해당한 과정이 담겨진 길과 들판, 그리고, 백인사회를 이루는 어스름짙은 거리의 모습이 그것인데, 이 이미지들과 섞여 있는 인터뷰들과 버드의 추모식장면을 통해 발견되는 정보들과는 별개로 공간의 이미지들은 관객이 사고하게 유도하고, 동시에 사건을 영화적으로 해결하려 들기보다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문제로서 인식하게 만든다.

인종차별은 지금 현재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현재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큐멘타리들은 그 매체적 속성상 과거의 시점에서 사건을 재현하고, 그것의 현재적 의미를 연결하는 시간적 구조를 갖게된다. 그러나, 샹탈 에커만은 과거의 사건에 대한 이미지는 단 한컷도 영화속에 담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녀는 인물과 사건을 현재의 공간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공간으로써 진행형을 표현해낸다. 그것은 <잔느 딜망>에서 공간의 미니멀리즘을 통해 여성의 생활공간과, 그 속에 내재하는 권력구조를 현재화했던 그녀의 철학이 다시한번 들어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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