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객 400만이 돌파한 시점에, <엽기적인 그녀>를 보았다. 별반 기대를 안한 덕분인가? 엽기적이라는 말이 무색하기는 했지만, 영화는 한마디로 평하자면 재미있었고, 누군가 손가락을 위로 올리든지, 내리든지 하라고 강요한다면 주변의 눈치를 살핀 후 살며시 손가락을 위로 치켜세울 셈이다. 재미있다는 것에 대해 부인하거나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다. 단지 이 영화를 어떤 경위에서 400만이나 보게 되었나가 의문인 것이다. 의문! 짱구를 굴려가며 답변을 생각해 보았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들어보시길….

넌 숫자과 돈 놀음에 당했어!

당신은 병신이다. 나 역시 병신이다. 언론과 광고 그리고 한국 영화 붐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얼마가 봤데. 인터넷 예매가 얼마나 되었데. 최초 금요일 개봉 영화에, 주말 관객 동원 최고래. 올 여름 최대 흥행작으로 부상하고 있데. 라는 말들이 연신 당신의 주변을 맴돈다. 빌어먹을 이거 안보면 병신 되는데,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심지어 길가는 행인들이 <엽기적인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 귓전을 때린다.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사회적인 붐이 되어 영화를 보고 만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그 조작의 선두는 역시 광고 마케팅과 차태현, 전지현의 팬들이겠지. 광고에 넘어간 사람들, 두 스타의 팬들은 영화 개봉과 동시에 영화관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영화보다 하루 일찍 개봉했기 때문에 첫 주 다른 영화보다 많은 사람이 본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출판 시장에서 베스트 셀러 만들기를 하는 것처럼, 이제 영화도 흥행대작 만들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초기에 많은 관객들을 모이게 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스타 시스템은 기본이고, 초기 마케팅에 과잉 투자를 한다. 헐리웃의 경우 첫주 박스 오피스 3000만불을 넘은 영화 중에서 총 수입 1억불을 넘지 않은 영화는 없다는 공식이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그런 공식이 성립되어 간다. 당신은 숫자 놀음에 넘어갔다. 돈이 만들어낸 숫자 놀음. 홍보 마케팅과 스타 시스템 역시 돈놀음 아닌가!

넌 인터넷에 미쳤어!

<엽기적인 그녀>의 진원지는 역시 인터넷이다. 세기말과 세기초 최고의 화두가 엽기라는 것에 대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엽기의 진원지는 인터넷이다. 엄밀히 말하면 통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엽기적인 그녀>는 PC 통신 나우누리에서 정말 엽기적인 흥행 성적을 보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 새로운 통신 조어를 썼다는 점, 주인공들의 엽기적인 행각에 대한 관심 등. 인터넷을 이용하면서 <엽기적인 그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덕분에 통신의 인기 실화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할 때, 많은 인터넷 광신도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그리고 궁금했을 것이다. 먼저 발간된 소설이 인기를 이어주었고, 네티즌들은 과연 이 영화에 주인공이 누굴까에 관심을 가졌다. 역시 젊은 네티즌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차태현과 전지현이 낙점되었다. 전지현의 경우 하리수, 정양 등이 등장하기 전에 최고의 검색어로 명성을 날렸다. 인터넷에 미친 당신이라면,아니 인터넷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엽기적인 그녀>를 안본다면 이상한 거지? 안그래?

넌 천상 한국 사람이야!

누가 부인하랴? 그래 난 한국 사람이다. 한국 사람은 어떤 영화를 좋아하지?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고,? 아니야! 그럼 SF? 아니지! 그럼, 한국 사람은 멜로 영화를 제일 좋아한데. 그렇다. 한국 사람의 정서 속에는 멜로의 공감대가 자리 잡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는 전형적인 멜로 영화이다. 엽기라는 당의정 속에는 껍질보다 더 달콤한 멜로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로 곽재용 감독은 제작사에서 '절라 유쾌'한 영화로 포장했는데, 자신의 영화가 '가슴 뭉클'로 만들어 졌다고 했다. 특히 전후반이 에피소드 위주의 엽기 사건들이 에피소드식으로 나열되었던 것에 반해, 연장전에서는 앞에 펼쳐졌던 이야기들을 아울러 정리하며 멜로 드라마적인 해피 엔딩으로 마감하고 있다. 즉 <엽기적인 그녀>는 상당히 엽기적인 척(!)하지만 그것은 젊은 이들을 현혹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엽기적인 것을 보고 싶어 영화관에 온 그들도 사실은 감동적인 것을 바라고 있으며, 이를 간파한 곽재용 감독은 관객들의 구미에 맞는 음식을 차렸던 것이다. 감동과 따스함, 멜로는 어느 나라든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정서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우리 정서에 더 많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엽기적인 그녀>는 알고 보면 <멜로적인 그녀>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엽기적인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또한 인터넷의 파급력과 사전 네티즌들의 기대 심리로 <엽기적인 그녀>는 흥행 행진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웃음과 감동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왔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술자리에서 한마디 했을 것이다.

"야, 띱쌔들아! 그거 잼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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