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를 얼마 전 학교 도서관에서 보았다. 20대 들어서야 영화를 보기 시작했고(그 이전에도 감명깊게 본 영화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취미란에 '영화감상'이라고 적은지는 5년전쯤부터 였다) 소위 말해 명작이라고 분류되는 영화들은 아주 가끔 보는 체질이라서 그런지 이제야 그 영화를 보았다.

76년 작이라서 그런지 화면은 무척 안좋았고 패션이나 길거리 풍경은 낯설었다. 낯설은 뉴욕거리를 노란 택시가 몽유하듯 지나다닌다. 그 지나다님을 통해서 트레비스(로버트 드 니로)는 세계를 본다. 그가 본 세상은 온통 먹구름뿐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와 같은 내레이션이 센세이션을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대사는 노골적이다.

게이와 레지비언, 마약상과 창녀들을 쉽사리 그는 쓰레기와 등치시킨다. 운행을 마치고 오는 택시를 씻어내는 것과 같이 누군가 쓰레기를 씻어버려야한다고 그는 강렬히 소망한다. 그리고는 결국 유력한 대통령 후보를 살해할 결심을 한다. 왜 그런 결심을 하는지 영화 내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통령 후보를 우연히 택시에서 만나고 대화하는 중에 그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모습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인지, 그의 선거캠프에서 만난 이상형의 여인에게서 차여서인지 아니면 그-대통령 후보를 쓰레기라고 본 것인지는 모른다. 마치 그가 영화 내내 앓고 있는 불면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결국 그는 실패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을 대신 청소하게 된다. 아이리스(조디 포스터)의 포주와 여관주인, 그리고 그들의 똘마니라고 보여지는 사내를 살해하게되고 그는 순식간에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트레비스에게 유일하게 이름을 말해주어서 그녀를 구원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한명의 대통령후보를 살해하는 것보다 10대 소녀를 구원하는 것이 훨 낫다는 정치적 구호가 담겨있었던 것인지.

불면증은 종종 시대와의 불화를 겪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쓰인다.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것은 지금 살고 있는 땅이 고향이나 집이 아니라는 것을 상징한다. 인간은 수면을 통해서 생활을 이어간다. 불면이 지속된다는 것은 유일한 안식마저도 박탈당하게 되는 사회를 그려내게 되는 것이다. 수면이 자의든 타의든 박탈당하게 되는 사람은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구조의 정점에 놓인 대통령후보에게 총구를 겨눈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총구에서 뿜어져 나온 총알은 아이리스를 교묘히 강금하고 있는 포주일당에게 향해진다. 이것을 좌절의 모습으로 봐야하는가 긍정의 모습으로 봐야하는가.

그는 그가 전혀 원치 않았던 히어로가 된다. 그리고 그는 이상형의 여인에게서 다시금 유혹을 받는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감독은 불면과 불화를 겪던 택시드라이버에게 무엇을 던져주려하는 것인가? 알 수 없는 결말을 두고 며칠을 생각했지만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영화는 흘러갈 것 같다.


PS) 덧말: 이 영화를 보고 레이건을 저격하려했다던 한 청년의 감정을 이해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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