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동물농장](White)에 대한 비판
글: 성재원
2002년 0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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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스탈린이 지배하던 소련의 처참한 상황을 돼지, 말 등의 동물사회를 통해 우화적으로 그리고 있다. 인간의 지배 하에 고통 받는 동물들은 자본가들의 억압과 착취를 받는 노동자의 참혹함을 보여주며 돼지들은 레닌이 주도한 볼셰비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은 스탈린, 스노볼은 트로츠키를 의미한다. 혁명 이후 자본가 계급과 별 차이 없는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당 관료들을 돼지로 은유한 부분은 돼지라는 동물이 갖는 – 실제의 생물학적인 자료를 근거로 했는가는 의문이다 – 이미지 즉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속성과 연관하여 풍자의 맛을 더하게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연극 [동물농장 White]는 모든 배우들이 하얀 의상을 착용함으로써 시각적인 효과를 배가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관객은 다만 그들의 대사를 통해서 극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계속해서 한 배우가 여러 동물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 수긍할 수도 있지만, 여간 아쉬운 게 아니다.
비교적 무대장치는 단순하고 소품들도 거의 쓰이지 않고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와 원작에 충실한 대사, 진행은 조지 오웰의 원작을 훌륭하게 재현하고 있다.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어떤 이념이나 사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는 과정에서 봉착하는 큰 장애중의 하나는 바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고 있는 죄악된 경향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순수했던 혁명가도 권력을 쥐면 그것에서부터 누리게 되는 쾌락에 조금씩 맛을 들이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타도하고자 했던 부류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가버린다. 나폴레옹과 그 측근 돼지들의 횡포에 지치고 상처를 입은 채 “이게 우리가 바랬던 그런 것이 아닌데…” 하며 나지막하게 고통을 저며내는 독백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인간의 역사에 대해 배반의 감정이 일기도 하며, 인류의 미래에 대해 어두운 상념마저 생긴다. 이 카타르시스가 연극 [동물농장 White]가 겨우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일 뿐이다.
신 자유주의가 창궐하며 점점 <노동의 종말>에서 제레미 레프킨이 예언한 20:80의 사회가 도래하는 현 상황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에서 예언한 논리가 무색해지는 시대이다. 브라질 남부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 (WSF)은 제국주의와 자본가 계급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세계화와 신 자유주의에 대한 세계적 저항의 물결이 거세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 전 <공산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외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의 유명한 말이 현재에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에 반발해서 발전노조원 들이 무려 37일동안이나 파업을 했음은 잘 아는 사실이다. 물론 맑스 – 레닌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의 사회는 같을 수가 없지만 현재의 불평등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다를 수가 없다. 즉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 현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주 원인이기 때문이다.
만약 소련이 붕괴되는 시절에 연극 [동물농장 White]가 공연되었다면 극의 주제와 시대상이 적절히 조응하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시대상황에서 연극 [동물농장 White]의 의미는 무척 반동적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을 다시 현대에 재현한다고 했을 때는 고전이 출현했을 때의 상황에서 갖는 의미와 현재의 상황에서 갖는 의미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렇지 않고 그저 시대를 초월해서 갖는 고전의 가치에만 급급하여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기획자로서의 의무감이나 식견의 택부족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극 [동물농장 White]은 나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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