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성춘향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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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성춘향 2002] :::

성재원 | 2002년 03월 10일
조회 1499

어렸을적부터 명절 때마다 보아온 춘향전의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알기에 만약 그것을 연극으로 본다면 선뜻 맘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춘향전을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뮤지컬로 보여준다면? 당근,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도령과 춘향의 애틋한 사랑, 방자와 향단이의 익살, 변사또의 욕정과 학정의 모습, 춘향이의 절개 등등, 춘향전에 나오는 인물들의 개성과 그들이 이야기속에서 보여주는 뜨거운 정념들을 노래와 춤에 실어 보여준다면 어찌 구미가 당기지 않겠는가?

극 초반에 기존의 춘향전과는 다른 점이 눈에 뜨인다. 두 젊은 남녀의 만남을 싯구절을 노래처럼 읊으며 서로 화답하는 형식을 취한 부분이 그것이다. 그 상황이란 것이 마치 현대로 치자면 나이트 클럽에서 스테이지에서 멋지게 춤을 추고 있는 여성을 보고는 뿅 가서 즉시 달려가 그녀 앞에서 마주하고 자신의 춤실력을 뽐내는 것과 비슷하다. 이에 여성도 쌈빡한 남성의 면면에 맘이 동하게 되고.. 단, 현대사회에서는 즉시 맘이 맞으면 그 시각부터 앤이 되는 것이지만, 춘향전의 시대에서는 워낙에 그 시간과 문화이 갭이 큰지라.. 그저 서로를 맘에 깊이 새겨두고 헤어진다.

두 주인공의 첫만남에서는 풍류적인 멋과 노래가 큰 역할을 했다면,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가는 과정의 표현은 노래외에도 상징과 이미지가 강렬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녀의 사랑이 깊어감은 곧 육체적 합일을 의미한다. 이도령과 춘향이 하얀 바지, 치마, 저고리만을 입고서 안개가 자욱한 무대위에서 노래와 몸짓으로 연기를 한다. 순백한 영혼의 젊은이들이 첫 관계를 맺는 것이다. 과하진 않지만 꽤 애로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뮤지컬은 너무나 친숙한 춘향전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작품이다. 노래와 춤도 계속해서 반복하다보면 서사의 친숙함에 파묻혀 지루해질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암튼 연출가는 2번에 걸쳐, 웅장하면서도 독특한 군무를 선보이고 있다. 그 군무는 막연히 지루한 관객의 눈요기감으로 설치한 장치가 아니라, 앞뒤 이야기의 맥락에서 중요한 주제나 혹은 인물의 강한 정념을 폭넓게 표현하고 있기에 주의깊게 살펴보면 치밀하게 조직된 또다른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자연스러우면서도 특별한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첫번째 군무는 춘향이의 어머니인 월매의 소망을 담고 있다. 4개의 큰 북에서 울리는 장엄한 울림은 이 혼인을 통해 신분상승이라는 삶의 획기적인 변화 즉 개인사의 혁명을 기대하는 월매의 심장 고동소리에 다름아니다. 가운데 열에 앉아있는 무희들.. 그들이 입고 있는 인도풍의 황금빛 비단은 딸의 결혼이 신성하고 보배로운 것이기를 바라는 소망이며, 진한 붉은 빛 장삼을 걸친 비구니들의 바라춤은 이 결혼이 소위 거친 운명이나 악한 소욕에 침해받지 않길 바라는 소망의 매듭이 아닐까? 마치 월매의 간절한 소망을 바라는 꿈을 들여다 본 느낌이다.

두번째 군무는 춘향이가 옥에 갇히고 변사또의 학정으로 백성이 곤궁에 처한 시점이다. 또한 이도령이 암행어사의 신분을 허름한 비렁뱅이로 위장하여 돌아오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풍물한마당이 뻑적지근하게 펼쳐진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평민의 깃발이 앞장서고 그 다음을 상쇄를 필두로 하여 꽹과리, 장구, 소고를 든 이들이 신명나게 놀아재낀다. 그 놀이판이 여간 흥겨운게 아니다. 왜 이 시점에서 풍물인가?

사실 춘향전의 진정한 가치는 두 선남선녀의 사랑이라기보다 그 밑에 감춰진 민중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일 테다. 천민출신인 춘향이 양반계급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이미 신분제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드러내는 심히도 혁명적인 것이 아닌가? 또한 변사또의 학정을 엄중하게 꾸짖는 이도령의 싯구에는 조선시대 지배계층으로부터 핍박받는 민중의 피맺힌 소리가 절절히 배어있다. 그러므로 춘향전의 앞에는 사랑이 뒤에는 민중의 절규가 결합되어 하나의 주제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 맥락에서 출현한 풍물은 충분히 의미있는 군무이다.

신명나는 풍물, 두번째 군무는 이제 이야기가 학정을 일삼는 변사또에 대한 처벌이 민중의 이름으로 실행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몽룡과 춘향이의 애틋하고 뜨거운 사랑 못지 않게 그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민중의 상황, 역할과 그들의 사회변화에 대한 염원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풍물이 상징하는 바는 바로 농민들이 정말 행복하게 활짝 웃으며 살 수 있는 그런 사회에 대한 소망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출가 강대인님의 주제의식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2번째 군무가 끝난 다음 시간이 흐르면 다소 지루해진다. 그건 공연 시간이 2시간 40분으로 매우 길기 때문이기도 한다. 이미 빠삭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라 그 진행의 호기심은 전혀 생기질 않는 상황에서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진 노래와 춤들이 단조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루해하는 시간이 얼마되지 않기에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흠.. 괜찮은 뮤지컬이다..

연출: 강대진(現 서울시뮤지컬단장)

예그린의 맥을 이어 시립가무단, 현대극단, 서울예술단의 음악감독 및 예술 총감독을 두루 겸했다. 2002년, 서울시뮤지컬단의 단장을 맡은 후 첫 작품으로 선보이는 <성춘향 2002>는 그만의 독특한 빛과 색으로 다시한번 변신할 것이다.

- 주요작품 -

뮤지컬 <환타스틱스> <드라큘라> <미녀와 야수> 연출
마당놀이 <허생전> <이춘풍> <황진이> 출연 및 음악감독
악극 <이수일과 심순애> <눈물젖은 두만강> <아리랑> <번지없는 주막> 등 편곡 및 음악감독 외 다수 연출

출연진
이몽룡: 주성중, 김법래
성춘향: 이정화
변사또: 김기현, 이병준
월매: 김미정, 권명현
방자: 곽은태
향단: 길성원, 조수정
그 외 서울시뮤지컬단,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
서울시합창단, 서울시무용단 단원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