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의 로맨스> 지루한 동어반복

영화돼지 우르릉

<내 남자의 로맨스> 지루한 동어반복 :::

이윤형 | 2004년 0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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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로맨스’라는데. . 남자와 보러 간 것부터가 큰 잘못이었다. 사랑 얘기를 남자 둘이 보면, 여자와 여자의 사랑 이야기에는 의심받고 여자와 남자 이야기에는 한심스럽고 남자와 남자 이야기에는 확신에 찬 눈빛을 받기 마련이다.

이야기는 너무 간단하고 ‘흔해’서 속상할 정도다. 사랑하는 평범한 남녀가 있는데 이 남자가 여자 연예인과 사랑하게 되고 애인은 지키려하고. . 결국 지킨다. 안 지키거나 못 지키면 모르겠는데. . 지킨다. 이들의 관계에 더해지는 것이라곤 연예인인 여자가 생각보다 착하고 순수하다는 점. 남자가 기억력이 나쁘다는 점. 여자에게 머저리 친구들이 있다는 점. 더는 아무 것도 없다. 연예인의 순수함은 남자와의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여된 매력이고 남자의 기억력은 마지막의 이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여된 가짜 건망증이다. 진짜는, 여자의 친구들이 머저리라는 점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김정은의 매력을 기대했겠지만 그녀의 덜렁거리는 듯한 모습에서 나오는 매력에 기대를 하기에는 이야기가 김정은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김정은이 귀엽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녀가 이야기와 인물들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많은 카드를 그녀가 쥐고 있는데도 시청자가 예상하는 것이나 기대하는 것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것을 보여주기에 귀엽고 매력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매력이 뒤늦게 기대에 부흥하는 행동을 자아낸다는 데 더 매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남자의 로맨스>에서 현주(김정은)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중심부와는 멀리 떨어져있고 그 떨어져있는 위치에서도 머저리 친구들 때문에 전혀 튀지 못한다. 눈치 없는 머저리 친구들-눈치 있으면 머저리는 아니다-은 그녀를 예쁘게도, 불쌍하게도, 귀엽게도 보이지 않도록 분위기를 흐려놓는다.

듬성듬성 에피소드를 늘어놓은 듯한 구성은 순간적인 웃음도 주지 못하고 지루한 동어반복의 연속일 뿐이어서 포커스를 놓치는 데에만 일조했다는 데도 문제가 있다. 이렇게 순간적인 웃음이 전체의 드라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면 순간적인 웃음을 일으키는 사건이, 혹은 사람들이 재미있거나 사랑스러워야 한다. 박제현 감독이 영국의 영화사 ‘워킹 타이틀’의 영화들이 이 영화에 영향을 많이 줬다고 하는데 추구하는 건 비슷할지 몰라도 그 안의 모든 것들이 다르다.

<러브 액츄얼리>나 <노팅힐>을 이야기하며 사랑이라는 코드로 분석을 하는 건 허공에 손가락질 하고 하늘 찔렀다고 자랑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 영화들을 이끌어가는 건 그들 간의 사랑이 아니라 그 안의 에피소드이다. 그들의 키스보다 중요한 건 그들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진척시키느냐이다. 그들은 그닥 똑똑하지도 않고 딱히 무언가를 잘 해서 추진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남자의 로맨스>에서 소훈(김상경)처럼 우유부단해서 답답해 보이지도 않는다.

문 앞에 서서 [To ME, You ARE PERFECT]라는 판때기를 들고 있는 이 남자의 불륜이라면 불륜인 현장에서도 관객은 세 사람 모두를 사랑한다. 남자도, 그걸 보는 여자도, 안에 있는 남편도, 딱히 힘이 있는 것도, 특별한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유부단하거나 멍청하지도 않은, 그 이야기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 남자와 여자가 키스를 해도 아무도 욕할 사람 없다. 왜? 당사자들 누구도 흥분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누가 봐도 평온한 사람들이다. 가만있는 사람 욕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내 남자의 로맨스>속 인물들은 어떤가. . 다들 흥분해있고 어떻게든 판을 깨보려 난리들이다. 머저리 친구들은 이유 모를 행동들만 자꾸 해대서 모두에게 해만 되는 것 같다. 특히 관객에게. 이런 사람들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란 애시당초 글렀다. 영화에서조차 그렇다. 지들끼리 싸우는 건 물론이고 저주까지 퍼붓는다. 이런 사람들이 귀여운 사랑을 하겠다고? 360도 머리를 돌려서 눈에 보이는 게 착한 사람, 친한 사람, 사랑할 사람인 경우에나 귀여운 사랑이 통하는 거다. 180도만 돌려도 멍청한 사람, 시끄러운 사람, 우는 사람, 욕하는 사람,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무슨 귀여운 사랑? 그런 사람들은 직접 죽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주 기쁜 결말에, 혹은 분위기를 기쁘게 바꿀 필요가 있는 슬픈 결말에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