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퀼리브리엄 Equilibrium (2002) ★★☆
글: Djuna
2003년 0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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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으로도 줄거리 소개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 부족하신 분들을 위해 조금 상세한 내용 설명을 해드리죠. 이 영화의 무대는 제3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리브리아라는 독재국가입니다. 리브리아 정부는 전쟁과 폭력의 근원이 인간의 감정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모든 인간 감정을 금지합니다. 사람들은 감정을 억제하는 프로지움이라는 약을 의무 주사해야 하고 감정과 관련된 모든 예술품들을 소각됩니다. 물론 여기에도 Sense Offenders라는 반정부 세력이 존재해서 Cleric라는 엘리트 전사들이 이들을 제거하는 의무를 맡게 되는데, 우리의 주인공 존 프레스턴도 그 중 하나죠. 존은... 여기서부터는 정말 줄거리를 소개할 필요가 없습니다. 존 프레스턴은 [화씨 451]의 몬태그가 했던 일들을 그대로 반복합니다. 그러는 동안 [매트릭스]식 폭력을 잔뜩 섞는 게 다를 뿐이죠.
우린 이 진부함을 비판해야 할까요? 원론만 따진다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원래 장르물이란 이전에 한 이야기를 반복하기 마련이니까요. 만약 후배 작가들이 표절로 몰릴까봐 타임머신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면 [영원의 끝]도, [빅 타임]도, [둠즈데이 북]도, [백투더 퓨처] 시리즈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퀼리브리엄]에서는 그 진부함이 비판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위에 언급된 시간 여행 이야기들이 가치있는 작품들로 남은 것은 그들이 타임머신이라는 기존 소재 위에 고유의 아이디어와 사유를 쌓아올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퀼리브리엄]에서는 그런 게 없습니다. 주제들은 반복되고 소재들은 조립됩니다. 영화에 분명한 유머가 조금이라도 들어있다면 농담이라고도 여길 수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요.
영화가 주제와 소재에 대해 깊이 생각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감정이 금지된 세계'라는 설정은 그럴싸해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죠. 리브리아를 유지하는 건 모두 감정입니다. 파멸에 대한 두려움, 자기들에게 동화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증오, 체제에 대한 충성심... 이 모든 것들은 감정입니다. 그것도 아주 강한 감정이지요. e.e. 커밍즈가 말했듯, 감정이 언제나 우선입니다. 사람들이 행동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필요해요. 논리와 이성은 그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물론 여러분은 프로지움이 그렇게 대단한 약이 아니고 바로 그런 허울 때문에 리브리아의 체제가 그렇게 허약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감독/작가인 커트 위머가 그걸 의도한 것 같지는 않군요.
[이퀼리브리엄]의 가장 큰 단점은 커트 위머의 각본입니다. 소재와 주제의 조립과 반복도 문제지만 이것들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녹여내는 위머의 테크닉은 영 어설프기 짝이 없거든요. 그건 영화에서 설정을 설명하는 도입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팁 하나. 관객들에게 '설정집'을 강요하는 SF나 판타지의 도입부는 대부분 작가가 나태하다는 증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죠.) 여기서 중요한 건 위머가 쓴 각본이 주제의 심각함도, 시적 진실도, 주인공들의 감정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의 각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배들을 어설프게 흉내내고 있습니다.
[이퀼리브리엄]의 장점은?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하나는 크리스찬 베일과 에밀리 왓슨과 같은 좋은 영국 배우들을 활용한 캐스팅입니다. 이 영화의 캐스팅과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 자체를 능가합니다.
다른 하나는 영화의 액션입니다. 이 영화에서 공화국 전사들은 '건카타'라는 총기 무술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가공의 무술은 [매트릭스]의 모방으로 시작한 이 영화의 스타일에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부여합니다. 이건 아주 좋은 재활용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장점들은 드러난 단점들에 가려지고 오용됩니다. '건카타'의 화려한 액션은 영화의 침울한 주제와 어긋납니다. 에밀리 왓슨이나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이 영화보다 더 나은 재료를 요구하고 있고요. [이퀼리브리엄]은 괜찮을 수도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만든 평범한 영화입니다.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모나리자]는 캔버스에 그려진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루브르의 [모나리자]는 나무 판 위에 그려졌죠. 이 장면은 역시 캔버스에 그려진 [모나리자]를 파괴하는 장면이 나오는 레이 브래드베리의 단편 [미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아닌가 싶군요. 하긴 스토리 전체를 [화씨 451]에서 훔쳐왔으니 이 정도 인용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죠.
감독
커트 위머 Kurt Wimmer
주연
크리스찬 베일....존 프레스턴
Christian Bale....John Preston
에밀리 왓슨....메리 오브라이언
Emily Watson....Mary O'Brien
테이 딕스....브랜트
Taye Diggs....Brandt
앵거스 맥페이든....듀퐁
Angus MacFadyen....Dupont
숀 빈....파트리지
Sean Bean.... Partridge
숀 퍼트위....파더
Sean Pertwee....Father
윌리엄 피트너....유르겐
William Fichtner....Jur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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