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월드 Underworld (2003) ★★★

듀나의 영화낙서판

언더월드 Underworld (2003) ★★★ :::

Djuna | 2003년 09월 20일
조회 4385

케이트 베킨세일이 늑대인간들을 사냥하는 뱀파이어로 출연한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요새야 여자 배우들이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건 흔한 일이지만 그래도 베킨세일과 수퍼 히어로 액션물은 아무래도 코드가 다른 것 같았으니 말이에요. 배우의 기존 이미지만 고려한다면 이건 마치 오드리 헵번이 45구경 콜트 권총을 휘두르며 "Go ahead punk, make my day"라고 으르렁거리는 것과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촬영되고 슬슬 사진들이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이런 걱정은 엉뚱한 방향으로 선회했습니다. 착 달라붙은 검은 가죽옷을 입은 베킨세일의 모습이 예상외로 그럴싸했던 거예요.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화제의 대상이 되었던 것도 순전히 착 달라붙는 가죽옷을 입은 베킨세일의 이미지가 불러일으키는 불건전한 욕망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마치 페티시 패션의 수호천사처럼 보였으니 말이에요.

실제로 보니 어땠냐고요?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죠.

다들 아시다시피 [언더월드]가 다루는 이야기는 수백 년에 걸친 뱀파이어들과 늑대인간들의 전쟁입니다. 늑대인간들은 몇 백년 전에 뱀파이어들에 의해 거의 멸종하다시피 했지만 최근에 다시 생존자들을 모아 수상쩍은 음모를 꾸미고 있지요. 늑대인간을 사냥하는 뱀파이어 킬러인 우리의 주인공 셀린은 늑대인간들이 마이클이라는 병원 인턴을 쫓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음모의 정체를 밝히려는 동안 마이클과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문제가 있다면 마이클이 그러는 동안 늑대인간에게 물려 늑대인간이 되었다는 거죠.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뱀파이어/늑대인간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이 됩니다.

[언더월드]는 선악구분이 그렇게 분명한 영화가 아닙니다. 뱀파이어들과 늑대인간들이 벌이는 전쟁이니 어느 쪽이 이겨도 인간들에겐 별다른 도움이 안되지요. 주인공 셀린이 뱀파이어라 우린 일단 뱀파이어들에게 조금 더 기울게 되지만 배배꼬인 음모의 진상이 밝혀지는 후반부엔 그런 편향성도 사라집니다. 그냥 셀린과 마이클이 살아남는지만 신경쓰게 되는 거죠. 사방으로 폭력과 살인과 음모를 토해내는 영화의 줄거리는 꼭 자코비안 복수극의 고딕 버전 같습니다.

[언더월드]의 관객들은 마치 실수로 고스족이 가장파티를 벌이는 클럽에 말려든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스족들의 미적 감각에 의해 통제됩니다. 영화에서 뱀파이어들과 늑대인간들은 진지하고 당연한 존재들이며 인간들은 배경에 불과합니다. 온갖 페티시 패션들과 S&M적 감각이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하며 감독과 각본가들은 그 울타리 안에서 '쿨'함을 찾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여기에 적응하지 못할 거예요. 저도 순진해 보일 정도로 직설적인 이 영화의 설정 때문에 종종 난처했으니 말이에요.

영화는 굉장히 분주합니다. 제한된 시간 동안 두 종족간의 전쟁도 보여주어야 하고 숨겨진 음모도 밝혀야 하며 두 주인공들의 연애도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영화는 카페인 과용이라도 한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흥분해있는데, 아마 그건 각본가가 쉴만한 빈 틈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일 겁니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토끼들을 잡느라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거든요. 로맨스로 보기엔 열정이 부족하고 순수한 액션물으로 보기엔 에너지가 분산되어 있고 미스터리가 스토리의 기둥이지만 해결 과정은 빈약하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또 모든 게 너무 많아 북적거리는 느낌이 들어요. 난처하죠?

영화의 시각적 분위기는 [매트릭스]와 [블레이드 2]를 섞어 놓은 것 같습니다. 쿨한 검은 의상을 입은 주인공들의 와이어 액션이 거의 모노톤인 어둡고 푸른색 화면 속에 던져지는 것이죠. 기존 영화에서 구축한 스타일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고유의 개성을 찾기는 힘든 편입니다. 그래도 늑대인간들의 변신과정과 같은 특수 효과들은 설득력있고 몇몇 폭력 장면들은 그럴싸해요. 종종 화면이 지나치게 어두워져 배우들의 표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정도지만요.

배우들에게 큰 불평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두들 자기 일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 활용도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영화의 간판 스타인 베킨세일은 연기의 질이나 외모만 따로따로 평가한다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연기는 정확하고 겨우 2주 연습한 것 치고는 와이어 액션도 통과할만한 데다 스크린에서 딱 떼어다가 집에 가져와 진열장 같은 데 넣어두고 싶을 정도로 예쁘죠. 하지만 영화는 이 배우가 가진 고유의 자질을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베킨세일은 케리 앤 모스나 시고니 위버처럼 무게나 힘이 느껴지는 배우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영화는 이 캐릭터에게 있지도 않은 무게를 부여하는 대신 이 배우의 장기인 경쾌한 위트와 가벼운 느낌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다른 배우들에게도 비슷한 문제가 발견됩니다. 배우의 능력과 개성이 캐릭터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따지고 보면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중 성격이 제대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몇 안됩니다.

[언더월드]는 해낸 일만 보면 큰 문제가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렌 와이즈먼은 이 영화를 지나치게 안전하게만 만들었어요. 각본이건 캐스팅이건 액션이건 모두 조금씩 대범하게 큰 획을 그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영화는 그냥 고만고만합니다. 그 때문인지 영화의 최종 결과는 고스족 틴에이저의 차고 세일 비슷하게 보이는군요.

기타등등

케이트 베킨세일과 루시안 역의 마이클 쉰은 애인 사이였답니다. 둘 사이엔 딸도 하나 있었어요. 하지만 영화를 찍을 무렵 베킨세일은 쉰을 버리고 감독 렌 와이즈먼과 데이트를 시작했지요. 얼마 전에 약혼했다고 하더라고요. 소프 오페라가 따로 없군요.

감독
렌 와이즈먼 Len Wiseman

주연
케이트 베킨세일....셀린
Kate Beckinsale....Selene
스코트 스피드먼....마이클
Scott Speedman....Michael
셰인 브롤리....크레이븐
Shane Brolly....Kraven
마이클 쉰....루시안
Michael Sheen....Lucian
빌 나이....빅터
Bill Nighy....Viktor
소피아 마일즈....에리카
Sophia Myles....Erika
어윈 레더....싱
Erwin Leder....Si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