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할 입은 없고, 두손은 공허하며 머리는 터져버렸다.
글: 박용하
2001년 03월 03일
우리의 아버지와 너희의 아버지, 그리고 혹은 나의 모습.
입이 아퍼 더이상 하기 싫은 말이 있다.
육체를 입고 영혼을 담고서는 이땅 한 아들 딸로 태어나
서글프고 가난한 사랑에 몸 섞어가며 얻은 귀한
자슥들 만나서는
셋 혹은 넷, 한 찌개 그릇에 숟가락 담가
박박 밥먹을 꿈을 꾸는
우리의 아버지와 너희의 아버지, 그리고 혹은 나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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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7년 통과된 정리해고 합법화 법안이 시행된 이래로
최고의 수치로 단행된 1700여명이 넘어서는 정리해고자..
거창하게 투쟁이나 연대니 세상을 바꾸자는
기치 아래가 아니라 절박하고 절박하게
생존권 수호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카메라도 인터뷰도 설득도
모두 잃어버리고는 '제 일이니까' 농성을 하고
'아이들 돌봐줄 곳 없으니' 아이들을 공사장바닥으로
데리고 오게 된 우리의 어머니, 아내, 딸들
그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꽃병이
그토록 초라하게 보이는 이유는
4500여명과 500여명이라는
수치상 비대칭성 뿐만 아니라
결코 이겨낼 수 없는 싸움을 하는
신의 보호아래 서 있는 다윗도 아닌
인생의 뷰파인더로 사물들에 들이대고
찍는다 찰칵 차르르륵
그러면 늘 찍히는 비극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가?
오늘도 유독 추운 전철역 한 켠에
술로 날을 이기는 노숙자 한명과
강제진압당해 공장 밖에서 매일 목터져라 울어대는 어느
정리해고자 부인네 두명쯤과
분노조차 할 줄 모르게 옭조인 현실로 질식해가는
대졸 실업자 선배 세명 쯤을
모아두고
'죽어버린 신을 심판으로 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이란 다소 긴 이름의 영화를 찍는다.
물론,
비극이다.
-MBC 스페셜, '1750명의 해고통지서'를 보고-
※사진은 '오마이뉴스'가 출처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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