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딩 포레스터> 황혼
글: 박용하
2001년 09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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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딩 포레스터'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오는 윌리암 월러스(숀 코너리분)가 쓴 두번째 작품의 제목이 바로 '황혼'이다. 인생의 황혼에서야 찾은 진정한 우정을 위한 이야기를 적어낸 내용이라고 생각되며, 저자의 서문은 자말이 썼다.
'파인딩 포레스터'를 보면서 지속적으로 든 생각은 이 얕으며 진부하고 보기에 그럭저럭한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이 건강한 애잔함의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였다. 나는 왜 이 영화에 그토록 건강하면서 동시에 애잔함이 스쳐갔는가?
어렸을때 공책 책받침 용도로 학교 앞에서 받은 전단지 역할을 겸하는 플라스틱 책받침 뒤에 타자기 광고가 있었던 적 있었다. 그때는 컴퓨터가 그리 흔한 때가 아니였고 자판을 두들기면 깔끔한 글씨체로 공고문같은 공식적인 문서를 칠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가지고 싶었다. 게다가 가끔 보는 영화에서 타자를 치는 그 엄숙하고 정중한 모습이란, 아름답기 까지 했으니 어린 맘에도 타자기로 글을 친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질꺼라는 환상을 품었었다. 탁탁탁 타자를 치는 소리는 한발 한발 어른의 문, 현실 이면의 문을 여는 경쾌한 발걸음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그 책받침을 무척이나 소중히(칼집내는게 그때 내 취미였는데 거기에는 칼집하나 내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여겼었고 그걸 잃어버리게 되었을때쯤은 컴퓨터가 흔히 보급되었었던 때로 기억이 된다.
자말과 윌리엄의 글쓰기 차이는 타자기가 있는 이와 없는 이의 차이로 구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말은 연필과 같은 도구로 글을 쓰는 반면에 윌리엄은 타자로 글을 친다. 윌리엄이 자말에게 타자로 글을 쓰는 방법,'초고는 가슴으로 쓰고, 재고는 머리로 쓴다'는 것은 연필로 글을 써오던 자말에게 있어서는 매우 습득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그러나 그는 해낸다. 자말에게 엉켜있는 문학적 천재성과 뉴욕 뒷골목이라는 삶의 배경에서 체득해온 생의 무게가 곤조를 뚫고 나와 하얀 백지 위에 하나의 세계로 펼쳐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윌리엄과 자말은 나이와 인종을 넘어선 친구가 된다.
윌리엄은 자말에게서 분명한 우정을 느낀다. 그는 자말이 위험에 빠졌을때 오랜 침묵을 깨고 창밖의 세상으로 나선다. 그에게 있어서는 형을 잃게 만든 증오의 세상이며, 동시에 휘파람새와 농구하는 건강한 검둥이들이 있는 희망의 세상이였다. 증오가 너무 커 자신을 투영시킬 수 없었으나 바깥세상에서 분명 어린날의 자신과 비슷했을 아이를 만나고, 자말이 다시금 보여준 어린날 행복했던 시절, 더불어 그 속의 자신과 형을 만나게 됨으로 그는 용기를 얻게 된다. 암으로 죽을때까지 그는 증오로 덮여있었던 세상에서 단지 증오뿐이 아니라 희망과 아름다움을 보았을 것이다.
삶에 대한 진정한 태도는 무엇이 되어야할까?
매순간순간을 진지한 이성의 판단과 논리, 분석으로 전체적 사회와 그 속에서의 나를 조망하는 것? 모순과 갈등의 요소를 찾아내고 대중에게 끊임없이 설득하며 좀더 나은 생활을 만드는 것? 나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여 모두 나의 생각과 말, 더불어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하려는 것?
윌리엄은 그 복잡한 시내를 자전거를 타고 즐겁게 지나다닌다. 영화여서 그런지 아니면 실제로 미국에선 저렇게들 운전매너가 좋은지, 그의 자유로운 하이킹은 신비롭기까지한 외피를 입고 사라져간다. 그렇게 사라져감으로 인해 그는 자말과 관객들에게 애잔함으로 남게 된다. 인생의 황혼에 뒤늦게 찾게된 생이 아름다울 수 있을 가능성, 그것은 너무나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가 너무나 짧기에 애잔한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은 그걸 탓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는 고향 스콧랜드에서 좋은 술과 주점에서 새로 사귄 입담 건 아저씨와 더불어 흥쾌스런 민요를 불러재끼면서 취했을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의 죽음은 평화로왔을 것이고 비서에게는 아마도 타이핑을 부탁했을 것이다. 무언가를 적기 위한 타이핑이 아니라 무언가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타이핑, 단지 소리만으로도 천국에 문에 다다를 수 있을 거 같은 즐거운 타이핑말이다.
감독은 우리에게 진정한 우정으로써의 포레스트를 찾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자말과 같은 영혼의 교감되는 친구를 찾으라는 소리가 아니라 스콧랜드에서 즐거웠을 포레스트처럼 삶의 아름다운 한자락, 그게 명멸하는 점등처럼 짧은 순간일지라도 그 한자락을 찾아서 즐기고 느끼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행복한 순간은 짧다. 여자친구와의 달콤한 입맞춤도 생의 눈으로 볼때 無에 가까우며 황혼에 의자에 누워 위스키 한잔을 마시는 것 또한 짧다. 그러기에 애잔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내일이 올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순간순간이 우리가 만들어내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시간이 아닌가? 애잔함을 애잔함으로 멈추지 말고 그 순간에 충실하는 것, 그것이 정말 좋은 일이 아닐까? 자말과 플라이가 윌리엄을 잃은 슬픔을 농구로 대신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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