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니와 준하> 아쉬운 영화
글: 박용하
2001년 12월 14일
김희선을 배우로 부르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김희선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많은 영화들을 많이 봐왔다면 더욱더 그가 김희선을 배우로 부르는 것에 대한 신뢰감은 많이 떨어질 것이다.
신현준이 무를 안고 있는 비천무 패러디 포스터, 비싼무의 존재가 김희선의 연기에 대한 반감을 반증하는 것을 살펴볼때 이 '와니와 준하'를 봤던 관객들이 얼마나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영화를 봤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7000원은 그렇게 싼 편이 아니다. 2002 원한다는 맥도날드 빅맥햄버거를 사먹으면 6원 보태서 3개를 사고도 돈이 남는다. 그렇지만 난 이 영화를 보고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영화 '와니와 준하'는 굳이 김희선 말고도 볼만한 것이 많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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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 아름다움이 이 영화의 가장 커다란 추동력이지만 이 영화는 곳곳에 사소하지만 깊이 생각할 부분에서 일반적인 상식에 맞서는 과감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전달하기에는 김희선이라는 배우가 가지는 감정의 폭은 그가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매우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1. 경찰인 남성 동성애자
경찰은 그 복잡한 알튀세르의 사상을 인용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듯이 군대와 더불어 강제와 폭력을 상징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이런 경찰은 사회 저변에서도 매우 보수적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땅에서는 더욱더 그러한데 보수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경찰이 게이라는 설정은 매우 파격적이다 못해 이런 설정이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의 관객들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관객들은 키득거리면서 자신의 애인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짓는 애니메이터의 모습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의 연기가 매우 진중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접근을 원리적인 측면의 사람들은 영화가 너무 동성애라는 문제를 가볍게 다루고 있다라고 비판할 수 있으나 이러한 접근이 아니고서야 상업영화라는 장르에서 이토록 거부감없이 동성애자를 다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경찰이 동성애자라는 설정이 그렇게 가볍게 다가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코믹함으로 다가설 때 가지는 장점이라는 것은 동성애라는 것이 단지 먼나라에서 이뤄지고 있는 외계인들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주지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와니는 그의 연애담에 조언을 하면서 절대 무게를 잃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그를 설득하려고도 하지 않고 단지 사회적 편견, 가족들의 외면들에 부닥친 연애를 하는 사람으로 애니메이터를 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해에 이른 경찰과 애니메이터를 기쁜 마음으로 바라본다. 이런 생활에서의 접근, 그것은 인권운동과 같은 사회적인 접근과 함께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쓴 약만 먹고만 살 수 없다.
2. 여자 주도의 연애담
와니의 첫사랑은 우연한 사고로 아버지가 죽자 죄책감에 도피하듯 유학을 떠나버린다. 와니는 법적으로 근친이 되는 연하의 동생과의 사랑을 가족들에게 분명한 목소리로 인정한 것과 다르게 영민(조승우)은 그녀를 두고 떠나버린다.
와니와 준하에서의 관계에서도 와니는 준하에 비해서 적극적이다. 준하와의 동거를 먼저 제안한 것도 와니이다. 외양적으로 볼때 와니가 준하보다 내성적인 것인 것은 사실이나 상황의 주도권은 와니에게 있다. 준하는 자발적인 것도 있으나 집에서 일을 해야하는 시나리오 작가라는 직업상 살림을 도맡아 한다. 매일 늦게 들어가는 것도 와니이며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대부분 준하의 몫이다. 이런 일은 앞서 경찰이 동성애자로 설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자연스럽다. 이 사실도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차별을 보이는 점이다.
영화는 내내 와니에게 주도권을 쥐어준다. 다른 영화가 남자주인공이 사건의 전면에 나서고 그런 남자의 정신적인 반려로 여자주인공이 등장하는 것과 다르게 준하는 철저하게 와니의 감정을 존중해준다. 와니와 준하 사이에서 와니는 절대 이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영민의 방을 비워둘까라는 미련이 절절히 남은 제안을 하는 것도 와니이다. 와니와 준하, 영민 사이에서 가장 적극적인 것은 와니이다.
그것은 '엽기적인 그녀'에서의 그녀(전지현)가 보여주는 주도적 역할과도 '번지점프를 하다'에서의 그녀(이은주)가 보여주는 역할과도 다른 것이다. 둘이 결국 종착하게 되는 것은 남자에게로 절대적으로 흡수되는 과도기로써의 적극성이지 사회적으로 남성보다 낮게 측정되는 여성의 가치를 전복, 혹은 극복하기 위한 적극성은 아니다. 그러나 와니는 다르다. 와니는 준하나 영민, 나아가 사회와의 대립에서도 결코 스스로를 낮추어 어떤 일을 성취하지 않는다.또한 이 일은 매우 자연스럽다.
3. 준하의 고민
준하는 감독의 고민을 대신하는 듯이 자신이 쓴 영화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로드무비를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의 특성때문에 설정을 바꾸고 삼각관계의 멜로로 가야한다는 제작자와 감독의 요구를 수용할 것인가 그 설정 그대로 갈 것인가, 이러한 고민은 그가 시나리오 작가로써 겪는 고민임과 동시에 감독이 겪는 고민이다.
영민과 준하를 연적으로 설정하여 와니와의 삼각관계를 영화의 축으로 놓을 것인가? 말것인가?
이러한 고민은 극중 준하에게서처럼 매우 치열하게 보여진다. 하지만 영화는 끝내 어떠한 극적 절정을 포기하고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이 충돌할때 감독은 고민 끝에 준하의 시나리오를 긍정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제작자의 결론과 같이 준하와 와니의 사랑으로만 밋밋하게 극을 결론짓는다.
4. 그 외
영화는 시종일관 시각적 이미지에 집중한다. 그 천착은 때로는 유미적이기까지 하다. 아쉽게도 이러한 철저한 집착이 크게 증폭되지 않았다고 보여지는데 그것은 영화가 너무나 복잡한 감정을 요하는 여주인공에 김희선을 캐스팅했기때문이다. 그녀가 메우기에 이 영화가 건드른 폭이라는 것, 감정적인 폭이나 논리적인 폭, 사실적인 폭 모두가 너무나 크고 깊다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렇지만 김희선의 연기가 조금은 발전된 듯 보인다. 적어도 비천무에서처럼 자신이 어떤 역할인지 모르고 헤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녀의 캐스팅을 미스캐스팅이라고 하기에는 극중 와니의 이미지와 김희선의 마스크는 꼭 맞춘 듯 들어 맞았다. 김희선은 좀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발성과 발음 부터 다시 시작하는게 어떨런지 생각되지만 그것의 선택 역시 김희선에게 달려있는 것..
배우 주진모는 자칫 평면적이게 될 수 있는 준하의 역할을 매우 입체적으로 표현한 점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 작들이 그에게 너무 많이 힘을 요구했다는 점을 상기해볼때 그의 이번 역할에서 보여준 성과는 대단하다고 본다. 아쉬운 점은 그는 화를 내는 연기를 할때 좀더 폭력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죽었을때 그는 좀더 광기를 보였으면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든 내내의 생각, 어느새 우리는 냉면과 화학조미료에 익숙해져있다. 냉면이 한두번의 별미로, 생라면이 일년에 한두번 추억의 간식거리로 먹을만 하지만 그게 끼니가 되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새 위경련이 생길지 위암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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