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용하
2002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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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의 연기는 매우 탁월하다. 그는 늘 역할 속으로 빠져들어갈 줄 아는 힘을 지녔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코미디는 <넘버 3>의 어투를 넘지 못했고 아직 <공동경비구역 JSA>의 무거움을 떨쳐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좋다.
이 잘짜여진 극본의 사극영화를 보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점점 인물중심으로, 캐릭터 중심으로 끌려가는 한국영화에 사회가 무엇이고 상황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살펴볼 수 있는 영화가 한 편 태어났다는 것, 비록 그것이 상업성을 노린 장르영화적 관습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의외로 그러한 장르적 관습을 따르는 도중에 성취해낸 결과들은 매우 만족스럽다(개인적인 취향입니다~ ^-^;)는 것. 그것이 이 영화를 강추하는 바이다.
1. 우리 희망을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갈등은 바라는 것과 지금 주어진 것 사이에 놓여있다. 그런 점에서 야구단 전원은 바라는 것과 주어진 것 사이에 괴리가 크다. 량현량하가 분하고 있는 나뭇짐 지는 쌍둥이 소년들은 밥걱정 없는 아이들과 다르게 삶이란 짐을 하나 더 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주 소박하게 '놀고 싶다'는 욕망을 가둘 수 밖에 없다. 양반이고 무엇인가를 배운 그넘은 방탕하게 기생집만 드나든다. 무엇이 꿈이지 모르나 그의 입술이 한쪽으로 비죽이 올라서는 냉소적으로 뱉어대는 언어 속에는 왠지 모를 자조가 있다.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 시대의 아픔을 주식처럼 보유한다. 그것을 직접적인 행동으로 풀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스포츠로 풀어내는 사람이 있다. 의병으로 전사한 사람이나 테러조직을 만들어 을사오적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은 행동으로 풀어내려는 사람이고 스포츠로 풀어내려는 사람은 소극적이나마 울분을 터트려내려는 사람이다.
굳이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다. 때로 개인이 감당하기에 너무 커다란 절망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2. 암행어사 출두요~!!(주의! 스포일러성 강함)
암행어사는 곧이 곧대로, 원리 원칙대로 말하자면 민중들의 울분을 조금 터트려 감시와 처벌을 더욱 유용하게 하려는 기만적 술책이다(이 이 유연성 없는 언어들 사이를 보라~) 하지만 생각해보라. 정말 진실한 암행을 하고 어사활동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고민을 풀어주려는 사람이 정말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산골 속에서 살면서 관리에 속한 말을 키우는 이는 결국 일본과 촌부들의 싸움터에서 마패를 집어들고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친다. 이제는 역사적으로 사라져버린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이 주술은 무엇인가? 단지 과거로의 회귀인가? 그리고 그것을 복잡다단한 표정으로 웃으며 바라보는 송강호는 어떻게 해석해야하는가?
세상이 바뀐지도 모르며 자신의 생업을 묵묵히 하던 이가 울분을 참지 못해 토해내는 정의에 대한 열망, 그것은 무척이나 뜨겁다. 우리는 종종 그런 모습을 보게된다. 이길지 어떨지 모르지만 우선 지금의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모든 것을 폐하고 들고 일어서는 일, 그것은 순수히 그 일만을 바라는 일이다. 순수한 것, 순수한 것의 발견과 그 순수함이 불러일으키는 경이.
3. 언해피한 해피엔딩
생각해보면 임창정과 고소영이 운동장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엔딩은 언해피한 엔딩이랄 수도 있다. 생각해봐라. 야구심판과 잘나가는 연예인이 잘 살 수 있을까? 순식간에 CF는 떨어질 것이고 수입은 엄청나게 줄어든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볼때 그리고 경험적인 측면에서 볼때 그둘의 결합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해피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얼까? 그건 순수함때문이다. 순수하게 누군갈 믿고 순수하게 자신을 버릴 줄 아는 것. 암행어사가 되고자하는 선비나 암행어사를 바라고 평생을 말을 키우는 사람, 그 둘은 '암행어사'라는 직업이 가져올 수 있는 순수히 이타적인 행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배경이 그야말로 진짜 주인공이다. 그들이 사는 세계, 혼돈된 가치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낼줄 알고 기뻐할 줄 알고 슬퍼할 줄 아는. 어쩌면 가장 리얼리즘적인 모습, 그것이 이 야구단에게는 주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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