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 슬픈 초상
글: 박용하
2002년 12월 09일
죽어도 좋아는 화제의 영화이다. 소재면에서도 주제면에서도 정말 파격적인 영화임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가슴 언저리가 묵직한 이유는 무엇이였을까?
1. 소외의 대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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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성을 다시 볼 필요가 생긴다. 사드의 입장까지를 수용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성욕의 발로는 건강한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따뜻하게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법은 성교이다. 성적인 교제라는 뜻의 한자어는 이런 경우에 그 뜻이 더욱 확연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우리는 노인들의 성을 무시하고 살아왔다.
그들은 내면적으로 외면적으로 모두 성에 대해 강제당해온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을 생각해볼때 이들의 소외는 단지 '성'에 대한 소외 뿐만 아니다.
2. 배움의 소외
판소리 <춘향가>중 '청춘가'대목에 기본뼈대를 맞춘 이 영화에서 여자주인공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는 민요전수자이기는 하지만 글을 통해서 그것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남자주인공은 여자주인공에게 글을 가르쳐준다.
가장 높은 수준의 문자해독율을 가진 나라이지만 노인들, 특히 여성노인들에게 우리는 배움에 대해 인색하다. 그들에게 교육은 수혜의 대상이 아니였다. 그저 먼 곳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배움의 설움을 남자 주인공은 절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못배운 설움은 우리나라와 같은 열광적인 학벌중심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매우 처절한 고통이 따른다.
여성고령자는 배움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3. 가장 처절한 소외
교육과 성적 억압에서 오는 소외보다 더 심각한 소외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 존재 자체를 인정치 않는 사회에 있다. 그들은 골방에 갇혀서 섹스에 몰입한다. 그들의 섹스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사랑의 확인이며 숭고한 의식이지만 그들은 같이 무엇을 한다는 개념이 없다. 무엇을 해볼 수 있는 여건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아주 처절한 사회보고서이다.
남자주인공은 혼자 산다. 틀니를 정성스레 닦고 머리를 빗기도 하지만 그가 사회와 통할 수 있는 창구는 작은 담배가게 창 뿐이다. 사회로 통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전혀 달라보이지만 정치적 구호 가득한 장정일 원작,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과 닮아 있다. 그들은 그저 단둘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이 사라지면 자신의 전부를 내걸고 찾아다닌다.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서 얻을 것은 많다. <춘향가>중 사랑가만 알아온 사람들에게 청춘가를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있는 일이고, 다큐적인 시점을 통해서 노인들의 성생활을 밀도있게 그린다는 점에서 영화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우리 주변에 있는 노인들이 얼마나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는 일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들이 찾아간 이상향이 그저 좁은 고무다라였을까? 우리가 그렇게 내몰고 있는게 아닐까??
웃기는 건 고무다라 안의 행복을 이야기하지도 못하게 하는 몇몇 사람들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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