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잊혀진 끔찍한 현실
글: 박용하
2003년 05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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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버려진 아들
우리는 오락실에서 올림픽 게임을 하는 다 큰 아이 하나를 만난다. 다 큰 아이는 두번째 살인의 유력한 용의자다. 그 녀석은 전신에 화상이 있는 정신박약아인데 오래전부터 장애가 있었던 탓에 마을 사람들 모두가 어느 정도는 꺼리는 인물이다. 그러나 정신박약아가 대개 그렇듯 아이들과는 한없이 친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가감없이 대한다. 세상에 투명히 다가가기 때문에 녀석은 세상에게 늘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다. 마치 가오나시처럼 말이다. 가오나시가 세상에서 욕망이라는 것을 배우지만 이 녀석은 그저 모든 것을 감내할 뿐이다.
나는 감히 이 캐릭터가 감독 자신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해봤다. 그렇기에 그는 열려진 구조의 결말처럼 열려진 시간 속으로 변해버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끔찍한 사연이 있다. 그건 그가 입은 화상이 마음에 입은 화상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없다 결정적인 때에 자신의 과거사를 신들린듯 이야기 하기 시작한다. 어릴때부터 앓아온 정신박약을 그들의 부모라고 참아낼 수는 없었던 듯 아비는 어린 그를 들어 불구덩이에 던져버렸다. 그래서 그는 그와 더욱 어울리는 화상을 입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걸 그녀석은 분노로 삼지 않는다. 그리고 아버지도 아들이 범인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열렬히 주장한다. 이 부정(父情)은 어떻게 된 것일까?
2. 백골단과 학생들
가끔 우리는 정말 웃기는 일을 본다. 나도 잘 행하는 짓이지만 입으로 떠드는 일에는 열라 잽싸면서도 그 상황 속의 인물이 실제로 되는 것은 민감하다. 그럴 일이 될리 없으니 80년대 학생들은 그렇게도 노동자와 민중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반동적 생각을 해본다. 영화 속에서 김상경은 독재탄압을 외치는 학생시위단에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한 여학생은 뒷덜목이 잡힌채 발로 밟힌다. 그걸 카메라는 담담히 그려낸다. - 극장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들은 몸으로 생각하는 강력계 형사가 난리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분노하다가 김상경의 폭력에는 무감각하였다. 나는 그걸 이해할 수 없었다. 얼마간 우리는 분위기에 휩싸여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폭력 경찰이라는 점에서 송강호도, 김상경도, 서장도 피해갈 수 없는데 왜 그만 파상풍에 걸리는가?
조금 심하게 이야기하면 경찰과 학생들이 상정하는 '적' 자체가 다르다. 김상경과 송강호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연쇄살인에 대해 분노한다. 그들의 적은 눈앞에 있고 그들의 분노는 지금 일어난다. 학생들의 적은 정권이다. 구조이며 정권이고 이념적 적이다. 그들은 눈앞에 없고 그들의 분노는 지금 일어난다. 그래 어쩌면 학생들의 시위가 훨씬 고차원적인 대응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텔레비젼을 쳐다보면서 오징어 씹다 한두마디 던지는 학생들의 주둥이는 값싼 것일 뿐이다. 그들은 이념 유희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감독은 그렇기에 분노하기를 부추긴다. 바로 앞의 적들에 바로 앞의 현실에 분노하기를 부추긴다.
3. 살인의 '추억'
이 영화가 대박나면 아마도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몇개의 아주 멋진 평론글들이 쓰여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그것 뿐이다. 계속 영화가 만들어지고 두세시간의 유희가 이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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