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글: 박용하
2001년 01월 16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내가 고딩 2학년땐가 3학년땐가 베스트셀러로 읽혔던 걸루 기억이난다. 그런데 아직도 영풍이나 교보의 대형서점에 가면 그걸 볼 수 있는 걸 보면 우리는 아직도 이 씁쓸하고 약간은 야시시한 사랑이야기에 중독이 되어있는 것 같다.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멀리 영국서 유학하고 있다는 모선배-내 기억 속의 그 선배는 자취방에 수많은 창·비(창작과 비평사라는 이름의 출판사)쪽 서적과 선집만큼이나 녹색의 참이슬 병이 쌓여있던 방에서 소주냄새 짙게 베인 채로 살던 기인쯤으로 각인되어 있었는데 어느날 장학생으로 영국쪽에 유학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헛, 역쉬 술이란 것이 이토록 다르게도 작용하는군'이라는 생각을 들게끔 하였던 선배였다-가 분개한 체로 독서감상문을 후배-그래도 나한테는 3학번 위 선배이신-에게 영문으로 보냈다는 일화를 기억한다. 3학번 위 선배는 그걸 다 읽었다고 주장하나 신빙성은 떨어진다.
뭐 '상실의 시대'에 놓여져있는 그 기본적인 흐릿함,퀴퀴함, 어두움, 더불어 사회라는 체제 자체에 대해서 어떠한 의구심도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로 유유자적하는 것 같으나 따지고 보면 사회 모순이 그대로 있음에 협조하고 있는 주인공들에 대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그렇게 흥분하였을 것이나, 내 젊음이 쾌쾌해졌는지 아님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게 일조한 몇몇 대형서점의 판촉팀이나 대형 출판사 직원들의 조작 덕이였는지 그리 나쁘게 읽혀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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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주성치를 보고서도 그리 업되지 않아던 기분은 오늘 '내 마음의 풍금'을 보고 많이 업되어버렸다. ^^ 이 오래된(요즘에 세상은 초단위로 변한다잖어) 영화를 오늘에서야, 그것도 뚝뚝 끊기는 인터넷을 통해서 보고서 이토록 즐거워지게 된 것은(그래도 여전히 죽을 상을 하고 있기는 하나 영화볼 때는 정말 즐거웠다. 모처럼 크게 웃었고, 행복했다) 이 영화가 가지는 풋풋함때문이 아닐까?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이 이 영화를 영화관, 혹은 예전에 출시된 티브이, 혹은 얼마 전 kbs에서 방영해준 주말의 영화로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스레 군데군데 보기만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내가 조금 닭살 돋는 영화-적확한 표현을 하자면 어릴때 꼭 같은 감정이 들었던 난처한 상황이 보여지는 장면은 꼭 아이처럼 채널을 돌리거나 숨어버린다.^^; 이 얼마나 유치한 짓거리인가? 하지만 민망한걸 어쩌겠는가? -가 티브이에서 하면 잘 못본다. 하여튼 이 영화를 다음 카페에서 발견하고 보면서 얼마나 굴렀던가!!
영화는 산골 처녀-중간에 세상은 요지경으로 유명한 그 아지메가 '아무것도 몰라여~~ 열일곱살이래여~~'라는 노래로 암시하듯 극중 전도연은 열일곱이당-지만 국민학교 5학년을 다니는 약간 덜 떨어지는 홍연(전도연 분)은 새로 전근오게된 오선생님(이병헌 분, 눈치 채신 분은 채셨겠지만 이름을 또 까먹었슴다~^^;;;)에게 첫눈에 반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오선생님은 같은 날 전근오게된 양선생(이미연분, 아하 역쉬나.. ^^;)께 호감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산골 아이들의 천방지축인 학교 생활태도에 처음 교단에 서게된 오선생은 주변 충고대로 어떠한 새로운 실험보다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잘 컨트롤 할 수 있을까를 고민케 되다가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은 따뜻함이라고 생각하는 양선생의 교육철학과 방법에 감화되어 아이들과 쉽사리 융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양선생과 오선생은 둘다 음악에 대해서 무척이나 관심이 많았는데, 서로 LP를 돌려가면서 들려주다 오선생은 그만 양선생의 호의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편 홍연은 양선생인줄 알고 자신의 팔을 꼬집은 오선생의 장난을 어떠한 사랑의 표시인줄 알고 혼자 좋아하게 된다.
일기쓰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전달되리가 믿는 홍연-여기서 난 일기쓰기의 폐해를 본다. 왜 우린 보여지는 일기를 그토록 쓰기를 강요받았는가? 머 사실 그토록 성의있게 일기를 썼던 넘도 아니니..-은 끊임없이 선생님에 대한 사모의 정을 풀어놓았는데, 그날 왜 꼬집었는가를 계속 물어도 답변이 없는 선생님때문에 속이 상해 무단으로 이틀 결석을 한다. 오선생님의 가정방문으로 마음이 누그러진 홍연은 다시 학교를 찾아갔는데 얼마후 신체검사때 우연히 오선생이 양선생에게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부리기 시작한 투기.
어느 날 양선생에게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려주며 이런저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오선생은 아이들의 쳐다보는 시선에 당황하여 양선생을 안고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도는 소문들, '오선생님은 양선생님과 얼레리꼴레리레여~'라는 식의.. 양선생은 가을 소풍날 오선생에게 자신에게는 정혼자가 있음을 알리려다 홍연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알리지 못하고는 가을 운동회도 훌쩍지나가 버린 어느날 맘 굳게 먹고 양선생에게 고백하려던 오선생은 양선생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러브레터를 찢어버린다. 그날밤 흠씬 취해버리고 들어온 오선생은 밤새 LP를 틀어놓고는 울어버린다. 그날 부터 생기란 찾아볼 수 없게된 오선생은 그냥저냥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양선생에게 들려주기 위한 LP를 깼다고 의심받았던 녀석이 오선생의 돈을 들고 만화방에 있게 된 일로 오선생은 따귀를 날리게 된다. 그러다 잘못맞아 그녀석 고막이 터져버리고, 그녀석 엄니가 와서 그에게 폭행을 가하고는 한바탕 난리가 난다. 그녀석은 며칠동안 학교에 무단결석하게 된다.
가슴 한켠에 납덩이를 달아놓고 사는 기분이 된 오선생은 학예회날 창문너머 흘낏 학예회 준비모습을 보던 그녀석을 발견하게 되고 진짜 사고탱이들이 실화로 불을 지른 교실에 그녀석이 들어갔다고 착각한 오선생은 물을 끼얹고 교실로 뛰어들어간다.
화재사건 후 오선생은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오게 된다. 홍연은 선생님이 떠난다는 말에 깨진 LP를 새로 사주고는 멀리서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홍연은 이쁘게 머리를 틀고 아마 오선생이여도 아니여도 좋을 낭군과 결혼한 사진을 배경으로 사라진다.
'상실의 시대'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다. 처음 부분에선가 어느 숲 한 가운데 깊은 우물이 있어서 뚝 떨어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부분에서 제목을 따왔는지 모르겠으나, '상실의 시대'는 무척이나 진부하지만 무척이나 많은 것을 시사하는 제목이다. 작명을 잘했다. '내마음의 풍금' 역시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을 달아도 무방한 작품이다.
'내 마음의 풍금'은 실제적으로 양선생과 함께 있었던 잠시 잠깐의 협주, 그때 느껴지던 짧은 환상같은 사랑이라고 볼 수 있으나, '풍금'이 뭔지도 모를 지금 사람들에게-난 풍금이 뭔지 안다.음, 도시락을 올려두었던 기억도 있는거 보면 희한하지? 울 동네가 그리 후진 동네는 아닌데.^^;-'내 마음 속'에 남아있는 지나간 시간 속에 추억쯤으로 해석하는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한편으로 민망했으며 한편으로 유쾌하였던 것은 나에게도 홍연과 같은 오선생과 같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였으리라. 유치하게도 스스로 김밥을 말어서 선물한다고 다터진 김밥을 말아보기도 했고 매일 장미꽃을 주면 혹여 마음을 열까 싶어 까까머리로 뛰어가서 장미꽃을 준 적도 있으며,'정말 귀찮다'는 말에 눈물 머금고 '그래도 이꽃은 널 위해 샀으니 가져'라고 힘없이 말을 떨구고는 밤새 고이 쓴 러브레터는 몰래 찢어버린 적도 있었다. 한번은 스토커도 아니고 유치하게시리 잡지책에 있던 글자 하나하나를 오려서 이승환의 '다만'을 적어보낸 적도 있었다. 헤헤~ ^^;;; 어떻게 보면 참 엽기적인 일이였으나 난 그 카드에 색상지도 대고 봉투도 정성들여 만들었었다. ^^;;; 밤새 친구녀석과 술마시고 죽일년 살릴년 하면서 울어도 봤고 학교 앞(대학로 근처 s대) 맥주집에서 군대 들어가는 녀석과 그녀석과 헤어진 여친 붙잡고 '너희들 친구로써 잘지내야해'라며 대신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푸하하핫~~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사내 한녀석이 홀에 있던 모든 사람들 쳐다볼 정도로 울어버렸으니.. (이 일은 이 영화 색깔과 약간 안맞는군. ^^;;;)
그래서일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즐겁게 웃다 잠시 콧날이 시큰해지며 눈시울을 붉어진 것을 보면.
'나도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의 나는 왜 이렇지?'
사는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었지. ?
대답은 그래 yes야. 무섭지 엄청 무섭지.
새로운 일을 할때마다 또 한살 한살 나이를 먹을때마다..
근데 말이야, 남들도 그래.
남들도 다 사는 게 무섭구 힘들구 그렇다구..
그렇게 무릎이 벌벌 떨릴 정도로 무서우면서도
한 발 또 한발 그게 사는게 아니겠니?
-crom(신해철) 曲, [crom's Techno Works]
Letter to myself(나에게 쓰는 편지) 中-
이 노래는 91년 나온 노래를 테크노 버전(여기서 이 앨범이 무슨 테크노냐라고 안티를 걸 사람들이 있겠지만, 난 음악에 무지하니 답변을 할 수 없음을 밝히는 바임다)중 나래이션이다. 91년이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에 발표된 곡인데도 아직도 나에게 있어 정말 힘들때 주절거려지는 노래 중 하나이다. 특히 새로 추가된 이 부분은 여러번 반복하면서 마치 무한재생 클립해놓은 mp3처럼 주절주절..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게 되어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무언가는 잃어버린다. 그것이 친구가 되었건 사랑이 되었건 말이다. 나같은 경우는 세상을 따뜻히 보는 시선을 잃어버렸다. 나 스스로에 있어 많은 실망을 해서인지 세상이 그리 따뜻하게 뵈지는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열정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젊었을때나 하는 일이지 이 돈도 안되는 밥벌이 하면서 주변 속섞인다고 주저리며 술을 때려붓는다. 그리고 몇몇은 사랑에 대한 환상을 잃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지고 하면서 몇몇은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 다만 착하고 살림 잘 해줄 배우자가 있을 뿐 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도 많이 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래서 어른이 되기 싫다. 여기서 더 잃어버릴게 분명한 길을 가야한다는 것.. 그것이 두렵고 떨린다. 이 얼마나 무서븐 일인가? 내가 또 얼마나 사고를 치고 얼마나 사람들에게 깽판을 놓으며 살아가야한단 말인가? .. 그럴때면 주절거린다. 주절주절..
때로는 내마음을 남에게 감춰왔지,
난 힘들때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 싶어
나는 결코 강하지 않아
…(중략)…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의 아버지처럼 진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끝까지 누군가는 믿어줄 것이라는 믿음이라면..잃어버릴 것이 당연하다해도 잃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부단히 노력하며..
그렇게도 오늘 하루 이 껍데기 같은 하루를 살아볼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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