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상상 - CINELINe

구라파의 영화구라

철없는 상상 :::

박용하 | 2001년 07월 05일
조회 2573

스스로를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잘은 힘들겠지만. ^^

일기를 거꾸로 읽어본 적이 있습니까?
일기를 거꾸로 읽다보면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생각이 오류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고 그 나이만큼의 연륜을 통해 '어른스러워'지거나 '철'이 든다는 믿음 말입니다.

거창하게 말해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스스로는 진화한다는 믿음 말입니다. 과학문명의 성과나 발명품들의 연보대로의 나열을 통해서 본다면 역사는 진보한다는 E.H 카의 캐캐묵은 진리는 정말 불변의 진리처럼 느껴지곤 하지요. 그렇지만 종종 드는 생각, 우리는 왜 진보하지 않고 있나요? 왜 우리는 크지 않고 있을까요?

...

비가 내리는 길에 거리를 걸으면서 흥얼거리는 노래는 늘 비슷비슷하답니다. 무한궤도의 '비를 맞은 천사처럼'이나, 퀸의 'love of my life',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5월 12일' 등등이지요. 어쩌다가 신곡이 튀어나올라치면 문득 당황스럽습니다. '이거는 아닌데'라는 생각, 허당을 집을때 몸이 휘청거리는 것처럼 휙 엎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것은 아기때의 모습을 기억하기 때문이라는 오늘아침 신문에서였나 아니면 어디서 읽은 잡문에서 였는지 잘은 모르겠군요.

'그댄 비를 맞은 슬픈 천사처럼 떠나갔네~'라고 흥얼거리며 혜화 육교를 내려오면서 몇 해전 여름에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펑퍼짐한 몸뚱이가 기특하게도 그런 기억을, 그런 몸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데자뷰라는 것의 정체는 아무래도 그런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시 듭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예전 기억말이죠. 때로 정신이 말짱할때도 잊어버리는 기억들은 이 쓸모없고 볼품없는 몸뚱이 어느 한 허름한 창고에 말끔히 보관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인이랍시고 함부로 몸을 혹사시켜도 정신이라는 것을 놓아버릴때도 몸은 그 기억들을 소중히 보관하려고 애쓰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래서일까요 사람은 지치고 힘들때 더욱더 예전생각들이 보글보글 솟아나는 것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나의 모습은 늘 비슷합니다. 그것은 아마 여러분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릴때나 지금에서나 비를 좋아하는 건 같구요, 과장되게 커다란 목소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크게 변하는 건 아닌거 같습니다.

늘 놓이는 문제는 '내가 왜 이곳에 있지?'쯤.

비가 떨어지고 노래를 흥얼거려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종종 떠오르는 당혹감, 불안감, 익숙하게 떠도는 느낌들. 때로는 환희 때로는 슬픔, 때로는 좌절. 익숙한 모든 것들..

오늘 새벽에는 정은임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영화음악을 듣고 싶어지는군요. 늦도록 그녀의 목소리에 그리고 소개되는 영화음악과 연시를 읊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예전일기장 어느 한곳에 숨겨져있을 첫사랑의 기억들도 되꺼내고 싶습니다. 비록 영화음악의 진행자는 바뀌었고 연시를 읊고 싶어하는 마음이 새벽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지만..

그냥 그대로도 충분히 좋을거 같습니다. 늘 철이 없기때문인지 무엇때문인지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