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구라파의 영화구라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

박용하 | 2001년 09월 07일
조회 2696

서울 신설동에 위치한 미션스쿨인 대광고재학시절에 나는 신문반에 몸담았었다. 고등학교 신문반이 다 그렇게 운영되는 것은 아닐테지만 내가 들어갈때(신문반 42기)까지만 해도 신문반원 선출기준은 입학성적 상위 2%인가 3%안에 있는 신입생들이였다.

입학성적은 학생들에게 유출되는 것은 아니였음에도 불구하고 신문반 짱과 편집장(부짱)에게만은 예외로 고이 제출되었고 성적열람표를 들고 신입부원대상자를 찾아와 가입을 권유,협박하는 것이 당시 2학년들의 몫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치기어린 특권의식과 엘리트주의 가득한 선출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신문반원을 입증하는 펜촉형 뱃지는 어떤 특권의식의 상징이였다. (이렇게 까지 쓰고나니 언론개혁에 대해서 쓸건가 싶은 사람도 있겠다 ^^;)

이렇게 일방적으로 선출된 신문반 생활이였지만, 3년의 재학시절 내내 신문반 활동에 따라다닌 고민은 이것이였다.

'우리가 내는 신문을 광고·선전지로 만들 것인가 신문으로 만들것인가?'

언제나 정갈하고 상냥한 문체로 사실에 입각한 어떨때는 사실보다 약간 더 미화시키는 투로 늘 기사를 쓰라고 강요받던 신문반원으로써, 고작 10대 후반을 가까스로 넘긴 고등학생으로써 위의 질문은 감당하기 힘든 질문이였으나 몇몇번의 질책과 기사 삭제위기를 겪고도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야하는 게 신문반원의 특권이며 의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비록 나오는 신문이 검열과 교정으로 인해 처음 원고랑 상태가 많이 바뀌었을지언정 말이다.

1. 사립학교가 가지는 가장 커다란 단점

대광고도 그렇고 지금 다니는 성균관대학교도 그렇고 둘다 사립학교이다. 대광고 이사장은 작년인지 제작년인지 타계하신 故 한경직 목사이셨고 성균관대학교 창립자는 심산 김창숙선생이다. 두분 다 개인적으로 참 존경하는 분들이다. 한경직 목사는 지금은 그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팽배해진 개신교계를 이끄시던 커다란 기둥이셨고 김창숙 선생은 일제의 폭압에 꿋꿋이 항거하신 독립투사로의 한길을 걸어가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모든 것들이 흐릿해지듯 설립자의 취지를 이어가기는 힘들다. 특히나 사립학교라는 것은 재정적인 면에서 늘 동문이나 재단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동문과 재단의 입김이 설립자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신문반에서 느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과 (고작 학내신문가지고 그러냐고 그럴지 모르지만) 다르게 언론의 자유는 신문반 담당 선생님의 검열을 반드시 거쳐야만 했고 그러한 검열절차를 거치고도 지면이 어떤 이유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데 이용당하면 곧바로 회수되고 불타기 일수였다. 편집권의 독립? 언론의 자유? 그딴거 고등학교 신문반, 특히나 사립학교에서는 좀 힘들다.(그렇다고 대광고를 욕하는 건 아니다. 동문들이 화낼라~) 신문 활자 하나하나에 돈 수백에서 수천까지가 걸려있기때문이다.

2. 그래도 대학에서는 안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대학에서는 그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신입생때 꼭 일어보던 성대신문에는 운동이 어쩌구저쩌구 자본주의가 어쩌구저쩌구,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이야기도 실리는 걸 보고 '와~ 역쉬 대학이라 다르군'이라며 감탄했고 신문에 실리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조금 감을 잡기 시작했을때 '에이, 왜 이것밖에 말못하지?'라고 투덜거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등학교신문과는 다르군'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진.

얼마 전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최장집교수의 사상문제로 온나라가 시끌시끌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 성대신문은 최장집교수 입장을 옹호하는 사설을 실은 적이 있었는데 이 사설이 문제가 되어 배포금지를 당하고 강제회수를 당했었다. 어이 없게도 북한에서도 성대신문을 탄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외신보도도 들었다. 한참을 학교에선 성대신문 탄압에 관해서 자보가 붙고 난리가 났었다. 그 사건 이후로 성대신문의 사설은 편집주간교수에게 넘어갔다는 소릴 들었고 편집권은 현저하게 줄었다고 들었다.

위의 사태까지만 해도 사상논쟁에 끼여들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지 않으려는 학교당국의 과잉진압이려니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나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와 얼마전 발생한 교지회수사건을 통해 이 학교가 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가, 진정 대학으로써의 기능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직업인 양성소쯤올 전락해가고 있는 것인가라는 심각한 고민을 불러 일으켰다.

3. 성균지 회수사건

배포금지 당한 성균지 70호(출처, 오마이뉴스)

자세한 경위는 여기에에 들어가서 보시길 바라며, 짧게 요약하자면 성균관대학교 교지인 성균지가 학교당국에 의해서 강제 회수당하고 배포금지처분을 받은 것이 사건의 전말이다. 학교당국의 이토록 심한(교지는 일년에 딱 두번 나오는데 이번 회의 교지는 같은 내용으로 이번 학기내에 나오지 못하고 삭제와 수정을 거친후 다음 학기에 나온다고 한다) 처분의 직접적인 이유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재단으로 있는 삼성의 변칙증여에 관한 비판 만화개제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등록금과 함께 추징되는 1500원의 교지비용이 아까워서라기보다는 학교의 재정적 측면을 보호해주는 재단의 비리를 들췄다는 사실하나만으로 다 만들어져서 배포가 시작되고 있던 교지를 강제 회수하고 배포금지 처분을 내리는 학교당국의 과잉 대응을 보면 이건 누가 학교 발전방향과 미래를 설계하는 주체인지 헷갈린다. 학교당국은 재단에 속해있는 한 부서가 아니라 독립된 기구로 상호 견제의 자리에 설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성균지를 만들고 편집하고 배포하는 교지편집위원회의 실질적 주인은 바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이고 더 넓게 나가서는 1500원을 내고 교지 제작을 의뢰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들 전체가 교지를 볼 의무와 책무, 권리가 있는 것이다.

독재의 최종적인 형태는 구성원들의 사상적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메트리스의 세계가 두려운 것은 자아의 자의식마저 체제를 위해 늘 유도되고 기획된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가장 지켜야할 것은 바로 '알권리'이다. 미시적으로는 체제의 부당함을 알권리서부터 거시적으로는 체제의 존립당위까지를 보장해주어야만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있다.

대학생이란 무엇인가? 대학교란 무엇인가? 바로 사회에서 일상에 파묻혀 잘 볼 수 없는 깊은 곳을 파헤쳐 극에서 극으로, 좌에서 우로, 미시세계에서부터 광대한 우주까지를 비춰주려 노력하는 곳이 아닌가? 그러한 방황의 길을 걷게 하고 스스로에게 이커다란 우주안에 '나'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도와주는 산파가 바로 대학이 아닌가?

4. 정말 부끄러운 고백

칼럼을 쓰고나니 참으로 부끄럽다. 학내 신문이나 학내 교지의 편집권하나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구성원으로의 일부이기에도 그렇고 재단을 비난하는 일이라면 그것의 잘잘못, 경중을 따지기 이전에 학교 이미지 손상이 가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의 몸값이 떨어지는 일이기에 외부로 누설하지 말아야한다는 둥, 그러다 재단나가면 어찌하는가 우리 자제하자라는 둥의 논리로 재단의 헛기침 한번이면 알아서 기는 학교당국과 그런 학교당국을 하급부서쯤으로 생각하는 재단을 비호만 하는 성대인이 있다는 사실.. 이모두가 부끄럽기 그지 없다.

우리 대학만 뒤로 가는 건인가라는 생각에 한없이 부끄럽기만 해지는 금요일 오후이다.

ps.기사와 함께 벌어지는 추악한 논쟁의 모습이 성대생들의 전반적인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ps2.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라는 것은 학교건물중 하나를 호암관으로 개칭하는 일로 시끄러웠을때 명패에 테러가 가해진 적이 있는데 재발을 막기 위해서 명패 맞은 편에 무인감시카메라를 설치한 적이 있었다. 명패하나 지키려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을 보고 어찌나 우습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