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불친절함, 미덕인가 악덕인가?

구라파의 영화구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불친절함, 미덕인가 악덕인가? :::

박용하 | 2002년 09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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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라는 이름과 순제작비 90억이 넘는 블록버스트 영화라는 점, 그리고 임은경이라는 신비스런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조명을 받을만 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거 없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듯이 영화는 죽을 쑤고 있다. 이 영화는 전국관객 400만이 넘어야 겨우 손해를 면할 수 있단다. 동아일보에서는 성냥팔이소녀의 재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관객은 영화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왜 그런가?

1. 영화의 키치성

키치는 일부러 촌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똥폼잡는 모든 것에 엿을 먹이는 예술적 전략, 그것을 거칠게 이야기하여 '키치'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키치적 감성을 영화는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러한 키치적 감성의 수용은 감독의 전작 '거짓말'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촌스런 트로트 음악에 맞추어 고속으로 섹스를 나누는 남녀주인공. 분명 '거짓말'에서는 달파란의 음악과 고속편집으로 키치적인 이미지가 충분히 파괴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키치적 감성이 얼마나 작용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반감되는 느낌이 강하다. 이유는 영화가 가지는 암울한 설정과 주제의식이 발랄하게 풀어낼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말소리를 낮추고 상대와 눈을 마주친다. 그렇게 되면 상대도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심적 준비를 한다. 그렇지만 장선우는 전혀 이런 어법을 사용하지 않다. 그는 진지한 이야기가 흐를때쯤이면 '목포의 눈물'을 틀어버리고는 웃으면서 말을 만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요 노래처럼 늘 회자되는 이야기야'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진지하게 이야기를 들을 생각하는 관객은 불쾌해진다. '장난치나?'

2. 서사성의 실종

영화는 기본적으로 서사장르이다. 몇몇 영화는 시적 감수성이 영화의 기본이어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지만 시적 감수성을 영화로 풀어내기란 무척이나 어렵게 될 수 밖에 없다. 두시간 남짓한 시간을 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법. 게다가 액션장르라면 당연히 서사가 바탕이 되어야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결코 서사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을 액션으로 보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의 철학이 담긴 영화이지 액션극이 아니다. 그런데 그 철학이라는 것이 꽤나 선문답같은 것이다. 가장 직접적으로 보이는 문구, "모든 모습이 모습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볼 것이다(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문구처럼 장선우는 불교사상을 핵심에 두고 있다. 불교사상, 이 얼마나 서사와 거리가 먼 사상인가. 불교는 결코 서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깨달음이란 것은 짧은 찰나에 합일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다는 믿음을 진정 감독이 가졌는지는 의문이지만 전반적으로 영화를 지탱하여야할 서사성이 무너진 건 사실이다.

무너진 서사를 간헐적인 코미디와 난해한 상징으로 덮었는데 문제는 코미디는 약하고 상징은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징을 풀어보고 싶어하는 호기심마저 앞에 이야기한 것처럼 키치적 감성으로 덮기 때문에 의욕도 상실되어버린다. 문제는 보통심각한 게 아니다.

3. 자기 스스로 영화보기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외려 쉬울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관객들이 장선우와 비슷한 취향이거나 이 영화전체를 상징으로 보는 관객이어여 승자가 된다. 철저하게 이 영화는 게임의 방식에서 제작되고 편집되었고 상영되었다.

장자의 모티브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시, 금강경과 언어를 가지고 풀어보면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상징들은 쉽게 풀린다. (그렇지만 불교철학시간이나 언어론시간도 아닌데 영화보려고 이런걸 배운다는게 말이 되는지 궁금하다. 이건 보시가 아니라 새로운 시험이다. 그것도 매우 불친절한 위원회에서 던져준) 먼저 장자의 모티브. 호접몽이라고 일컬어지는 장자의 이야기는 쉽게 이 이야기가 가지는 기본 얼게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게 되는 상황. 첫 번째 엔딩으로 끝나게 되면 영화는 이 키로도 쉽게 열린다. 그렇지만 나비는 다른 층위를 가지게 된다. 다음으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라는 시. 이 시는 영화 초반에 전편이 소개되고 있다. 이 시의 이미지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되듯 이 시는 이미지중심적이며 꽤나 사회성이 강하다.

환각과 매춘을 강요하는 대한민국사회. 결국 라이트 가스를 마시다 성냥팔이 소녀는 죽는다. 환각을 강요하는 시스템(시에서는 대한민국)은 철저히 약자를 부려먹는다. 만약 성냥팔이소녀가 시스템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에 처음 설정되어 있는 것을 거부하면된다. 라이터를 팔지 않으면 된단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태업에 대한 찬양이 종종 드러나는데 그것은 자유를 지고의 덕으로 여기는 감독의 사상이 녹아있는 듯 싶다. 세번째 금강경. 금강경이 어떠한 경전인지 알길 없으나 영화에 등장하는 문구와 그 문구가 등장할 때 보여지는 화면들을 미루어 짐작할 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보이는 것은 '언어'로 만들어진 세계이며 보이지 않는 것은 '언어이전의 물자체(勿自體)'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비어있다는 공사상은 결국 그것이라고 보여진다. 순수한 세계의 본질.

네 번째 언어. 우리는 주가 가진 고등어라는 무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는 고등어는 고등언어의 축약이다. 고등언어라면 불경에 씌인 언어를 감독스스로가 붙인 용어가 아닌가 싶다. 이런 고등어로 108개의 번뇌를 씻어버린다. 그리고 사물을 본래 있는 모습으로 되돌려 자신에게 가져온다. 그런데 이런 무기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나비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그것을 깨닫고 나비가 바다를 건너는 화면으로 뛰어들어간다. 뛰어들어가 나비에게 총을 갈긴다. 나비는 맞아도 갈린다. 이는 언어통합을 꿈꾸었던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에스페란토어를 비롯하여 이제는 영어로 전세계는 통일되려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통합은 결코 이뤄진적이 없다. 로마시대도 중세시대도 지금 당대에도 말이다. 나비는 언어의 상징인 듯 싶다. 왜냐하면 그 이후 나비를 없애고는 대폭발이 일어나고 그들은 극락으로 갔기 때문이다. 언어이전의 세계에 도착한 주와 성냥팔이 소녀는 행복하게 산다. 결국 세계의 모든 시초는 언어다라는 것이 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주제의식이 아닌가 싶다.

4. 그러나

이렇게 영화를 볼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볼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너무나 난해한 코드와 너무나 드문 힌트를 통해서 장선우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영화는 본질적으로 예술영화이다. 그것도 키치적감성으로 외연을 가득 칠하고 청소년 성을 억압하고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철저한 반항과 나쁜영화 이래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미성년들의 자유로운 성추구에 관한 긍정, 철저히 억압적인 정치제도 안에 나약한 국민, 그리고 제행무상, 공사상으로 대변되는 불교사상, 이걸 액션으로 버무린 영화. 이것을 상업영화로 볼 수 있는가?

장선우 매니아라면 모를까 이 영화를 긍정하고 의미를 새롭게 평가하려는 움직임은 대중과는 철저히 괴리된 상태에서 벌어질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