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4년간 필자가 각 분야별로 써온 원고들의 압축본과도 같다. 여러 지면에 발표되었던 글들과 내용상 중복되는 부분이 있으며, 아울러 최근 일어난 변화가 새로운 내용으로 추가되었음을 밝힌다.)

이제 어떤 고정된 것은 없다. 기술도, 전통적인 시청자 개념도, 작품 배급의 유형과 방식도 모두 변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이런 변화를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알란 로젠털(알란 로젠털, 『다큐멘터리 기획에서 제작까지』, 안정임 역, 한국방송개발원 총서 15, 460쪽)

  1. 새로운 테크놀로지 : 희망 혹은 위기

  언제나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앞에는 구래의 역사적 한계를 돌파해내는 테크놀로지가 펼쳐갈 미래에 대한 희망섞인 예측과 불안감이 교차하고는 했다. 돌이켜보면, 필름으로 상영되는 영화가 등장했던 100여년 전이나, 포타백이라는 이름으로 비디오 매체가 처음 등장했던 30년 전이나, 리얼 비디오가 인터넷의 미래상을 거칠게나마 보여주기 시작하던 3년 전이나, 영화산업의 하부구조를 구축하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기존의 영화에 파열음을 일으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복제와 재현의 능력을 확대시키기 위한 과학자와 예술가의 협업은 20세기를 관통하며 간단없이 진행되어 왔다. 80년대이래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광범위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뉴 미디어, 그리고 디지털 SFX 테크놀로지로 대표되는 변화는 그러한 역사적 변화과정에서 일정한 질적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변화는 우선 산업 내부에 파열음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뒤이어 전반적인 영상문화의 변화를 강제하기 시작했으며 그 폭과 깊이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광범위하며 심각하다. 물론 아직까지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필름 중심의 영화산업은 1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의연하다. 필름 스톡의 혁신이나 극장을 제외한 비디오, 방송 등 여타 배급구조의 양적 확산에도 불구하고 '극장개봉작'은 영화산업의 여전한 중심이다. 그러나 뉴 미디어의 발전은 이러한 오랜 전통적 구조의 격변을 일으키고 있으며 미래는 예측불허의 혼란 속에 빠져있다. 그것은 지극히 복합적이다. 한편으로는 질적으로 새로운 미디어를 등장시킴으로써 미디어 산업의 확대 재생산 구조와 노동력의 편재를 변화시키고, 거꾸로 기존의 영화 제작방식에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도입함으로써 기술적 한계를 돌파함과 함께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또한 대중소비를 지향하는 저가 테크놀로지의 개발과 보급은 미디어 민주주의의 확대 가능성을 명백하게 제시하며, 네트워크의 정점에 서있는 냉전의 산물 인터넷은 아직도 그 위력의 10%를 채 보여주지 않은 상태이다. 자본의 편재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기술적 발전에 따라 서로 분리된 신호가 합치되는 수렴현상 (Convergence) 이 산업과 자본과 운동의 제수준에서 광범위 하게 발생한다. 분리되어 병존하던 산업이 통합되면서 대자본의 경쟁은 보다 격렬해지고, 그 경쟁은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독점의 경향과 맞물리면서 뉴 미디어가 창조해낸 격변하는 환경변화에 의해 매개되면서 자본의 집중과 국제화를 수반하게 된다. 계급대립과 자본간의 경쟁이라는 옛 전선은 새로운 형식을 지니며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 폭발력이 서서히 실감나는 시점에 이르러 다가온 전세계 차원의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은 두 가지 의미에서 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장밋빛 환상을 박살내버렸다. 호황기에조차 뚜렷한, 매체를 둘러싼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입각한 갈등은 보다 복합적이고 파괴적으로 드러나면서 평화롭고 아늑한 뉴 미디어 세상의 꿈은 여지없이 파괴되었고, 일직선적인 발전이 현 체제하에 가능하리라 믿었던 기대는 빛바랜 착각으로 변모했다. 말하자면, 이제 뉴 미디어는 안팎으로 전쟁터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2. 테크놀로지의 '차용' : 옛 제작 시스템의 내적 변혁

  역설적으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가장 대중적인 형태로 표현된 것은, 기존 영화산업의 경계를 파괴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미디어를 등장시킨 것이 아니라 기존 매체의 표현능력을 확장 시켜내는데 성공한 디지털 SFX이다. 온갖 무성한 추측과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선형적 영화(선형적(Linear) 영화는 비선형적(Non-linear) 영화 혹은 대화형(Interactive) 영화와는 구분되는 기존의 영화형식을 가리킨다. 전자가 후자와 구분되는 지점은, 상영시간(Running time)이 정해져있고 관객은 주어진 시간동안 영화의 진행에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아무런 개입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가 여전히 위세를 떨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에 동의한다면, 기존 영화의 제작 시스템과 표현 수단의 내적 변혁을 시도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개입이 전면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1) 기획에서 대본까지 (Preproduction)

  이미 10년 전, <어비스>에서 입체적 스토리보드가 도입되던 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사전제작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왔다.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계기중 하나가 워드 프로세서 프로그램의 등장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본다면, 영화제작과정에서 텍스트 정보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의 등장은 테크놀로지의 차용에 있어서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이 영역에 있어서 테크놀로지의 개입범위는 기획, 예산편성, 구성, 리서치, 대본작성의 전과정에 걸쳐 광범위하다. 미국의 경우 스크립트웨어(Scriptware) 등으로 대표되는 대본작성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않는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며, 점차 대규모화되며 분산공정으로 진행되고 있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예산편성을 위해 메이저 영화사들은 신규 소프트웨어의 개발(소프트웨어와 데이터 관리 사업을 포함해서 지난 8월에 폭스와 계약을 체결한 콜럼버스 시스템의 경우, 폭스의 모든 영화와 TV 제작 과정의 예산관리를 전산화하게 된다. 폭스가 계약을 체결하게 된 동기중 하나는 <타이타닉>의 회계상의 난맥상이었다. 2억달러에 이르는 예산집행을 추적하기 위해 폭스는 14명의 상근 회계사를 고용해야 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에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기도 하다. 반면에, 실리콘 그래픽스가 정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데이터 발굴(Data mining) 시스템의 경우는 가장 창조적이며 직관적이면서도 동시에 광범위한 과학적 데이터를 필요로 하는 기획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이다. "이 컨셉트에 들어맞는 배우들의 리스트와,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개런티라는 조건에 비추어 어느 배우가 가장 적절한 선택인가?" "이 소재를 사용한 영화들은 영화 100년의 역사동안 어떤 것이 있었으며, 그러한 영화들이 다루지 않은 영역은 무엇이 있을까?" "해피엔딩으로 이 영화를 끝낸다면 흥행 성공 가능성은 몇 퍼센트 정도일까?" 가장 극적인 사례는 90년 초반 이후 대화형 영화와 인공지능의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MIT의 미디어 실험실(Media Lab)이 시도하고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의 테크놀로지이다. 만들고자 하는 이야기 구조에 대한 기초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면, 컴퓨터는 그 정보들을 취사선택하고  새롭게 배치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관객의 기호와 흥미에 따라 반응하는 이러한 이야기꾼 컴퓨터(Storytelling Computer)는 어떠한 이미지와 음향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까지도 스스로 결정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컴퓨터의 영역에 비해 인간의 영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컴퓨터는 결코 완벽한 화자가 될 수 없다. 우리가 하고자하는 것은 작가와 컴퓨터 사이에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MIT의 케빈 브룩스)

  (2) 좁은 의미의 제작 과정 (Production=촬영)

  촬영 분야는 디지털 SFX가 발달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적으로 가장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주요 도입영역이었다. <스타워즈>로부터 시작된 모션 컨트롤 카메라(Motion control camera)의 활용, 70년대 이후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이제는 지극히 기본적인 기재가 되어가고 있는 스테디캠(Steadicam), 그리고 비디오 보조(Video assist)라는 이름으로 촬영현장에서 비디오를 점검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등이 주로 아날로그 시대 극영화 분야의 변화였다면, 60년대 이후 나그라 녹음기와 경량 16미리 카메라의 등장에 따른 다큐멘터리 미학의 변화는 소규모 제작 시스템과 그 장르적 성격에 있어서 발생한 가장 극적인 변화였다. 그런 점에서, 전반적으로 촬영분야는 아직까지는 옛 미디어의 입김이 거센 데, 그러한 상대적 지체의 또 다른 근거는 HDTV의 질곡에 기인한다. 이른바 차세대 TV로 불리는 HDTV의 등장은 한때 필름을 비디오로 대체할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관측을 낳게 했다. 그 근거는 HDTV의 탁월한 기술적 규격이다. HDTV는 기존 TV와는 달리 영화의 화면 비율에 가깝고, 화질을 결정하는 주요한 근거인 주사선수에 있어서 두배를 뛰어넘는다. 이렇듯 HDTV의 강점은 탁월한 해상도에 있으며, 또한 모든 신호 방식이 디지털화된다는 점에서 정보고속도로라는 첨단 유통망과 결합될 경우 기존의 영화산업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수도 있는 잠재력을 지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헐리우드 메이저들은 HDTV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실험해왔다. 촬영기사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 등은 영화 촬영 과정에서 HDTV를 활용했으며, 소니-컬럼비아는 <드라큘라>를 광케이블을 통해서 HDTV로 배급하는 실험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어떤 방식이 채택되든, 필름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그 어떤 기술적 사양도 결코 필름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필름의 해상도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수평 해상도가 2,000선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현재 나온 규격은 기껏해야 1125 선에 불과한 실정이며, 그나마도 대부분의 방송국은 새롭게 할당된 주파수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화질을 높이기 보다는 디지털 압축기술에 힘입어 채널을 늘리는데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6 : 9(극장에서 보는 일반적인 극영화의 가로 세로 비율(Aspect ratio=종횡비)은 1.85 : 1이며, 기존 TV의 종횡비는 1.33 : 1(4 : 3)이다. 이것은 16 : 9=1.77 : 1인 HDTV의 어떤 비율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라는 화면 비율은 기존 TV에 비해 영화에 가깝지만, 오직 가까울 뿐 결코 동일하지는 않다. 따라서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TV를 표현하게될 가장 포괄적인 개념은 HDTV라기 보다는 디지털 TV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며, HDTV는 새로운 기술적 혁신이 덧붙여지지 않는 한 소규모 극장을 대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는 어려울 것이 명확하다. 말하자면, HDTV의 경쟁상대는 극장이 아니라 기존의 아날로그 TV임이 결판난 것이다.

  더욱이, 필름 또한 제자리 걸음만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코닥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는데 신규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필름이 지닌 특성을 최대한 발전시켜왔다. 그러한 발전이 가능했던 한가지 근거는 필름에 대한 테스트 기간의 단축이었고, 그러한 단축을 가능하게 한 것은 바로 컴퓨터 모델링 기술의 발전이었다. 그 결과, 지금처럼 영화촬영기사가 색채 이미지를 자유롭게 컬러필름에 담아낼 수 있었던 시기는 없었다. 따라서, 비록 필름의 우수성이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어 있고, 비디오는 결코 스토리에 시각적 생명력을 불어넣어줄 수 없다는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유포되고 있기도 하지만, HDTV가 필름 촬영 기사들을 실업자로 만들 가능성은 아직까지는 없다. 아직까지는, 비디오로 촬영된 이미지를 필름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은 이 세상에 없으며, 현 시점에서 HDTV는 이미 그 도전의 의지와 가능성을 모두 상실한 상태이다.

  (3) 후반작업 (Postproduction)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위력이 가장 대중적으로 빨리 인식된 것은 전술했듯, 역시 후반작업에서의 특수효과 분야라고 할 수 있으며, 가장 발전의 성과가 탁월한 분야이기도 하다. 촬영이 끝난 후 필름을 디지털로 처리하게 되면 이전의 아날로그 방식과는 달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강점이 생긴다. 복제를 해도 정보의 손실은 없으며, 모든 정보는 어떤 형태로든 변조가 가능하다. 특히,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이르러 컴퓨터 테크놀로지는 고유한 표현 양식의 위치로까지 격상되었으며 <토이 스토리>로 대표되는 컴퓨터 그래픽 장편영화의 등장에 이르러서, 이제 그것은 단순한 수단(tool)이 아니라 새로운 매체(medium)로 자기갱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컴퓨터 그래픽 영화와 결부된 헐리우드의 새로운 꿈은 아예 배우조차 합성배우로 갈아치우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합성배우를 주인공으로 해서 관객과 영화가 상호작용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후자는 아직 관객의 기호를 예측하기 힘들어서 미지수이기는 하지만, 전자는 극히 매력적인 메뉴가 아닐 수 없다. 합성배우를 사용하는데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배우 개런티도 필요 없고, 촬영 스케줄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도 없으며 골치 아픈 뒷소문도 잠재울 수 있다. 물론, 아직 현실성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람의 동작을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것도 문제지만, 특히 얼굴의 표정까지 제대로 합성해낼 수 있을 지는 회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미>와 <벅스 라이프>가 사람을 제외한 생명체의 묘사에 주력하는 것은 이러한 테크놀로지의 발전 수준과 그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SFX와는 달리 작품의 결과물을 통해서는 전혀 눈치챌 수 없지만, 후반작업의 성격을 완전히 뒤바꾸어놓고 있는 것은 비선형 편집 시스템의 광범위한 활용이다. 비선형 편집 시스템(Nonlinear editing system)은 디스크 상에 디지털로 촬영자료 전체를 집어넣고 편집하는 것을 말한다. 블록버스터의 경우도 그렇지만, 후반작업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 메이저는 물론, 인디 역시 비선형 편집 시스템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최근 선댄스영화제에 출품된 작품들 대부분이 하이엔드(비디오 편집 시스템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인 하이엔드(High-end)와 로우엔드(Low-end)는 쉽게 말하면 비싼 제품과 싼 제품의 차이를 가리킨다. 예를 들어 디지털 비디오 시스템의 경우, 소프트웨어 CODEC(신호압축)을 주로 사용하는 시스템은 가격대도 1천만원대를 오르내리는 반면, 하드웨어 CODEC을 주로 사용하는 기재들은 5천만원에서 억대를 호가한다. 이전 시대와 구별되는 디지털 시대의 중요한 특징은, 이 두 가지 시스템이 그 결과물의 화질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종의 대명사인 AVID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새로운 변화의 한 단면이다.

  (4) 교육 훈련 (Training)

  제작과정과는 무관하지만,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또 다른 분야는 교육 훈련과정이다. CD-ROM 혹은 DVD를 사용한 교육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로버트 콜커의 《영화, 형식, 그리고 문화》는 콘티의 작성, 조명의 변화에 따른 시각적 이미지의 변화, 몽타주, 미장센, 카메라 무브먼트, 음악 등을 소재로 대화형 미디어의 교육적 효과가 어떠한가를 쉽게 확인시켜준다. (http://www.mhhe.com/socscience/art-film/kolker/Film, form and culture) 영화제작 과정 전반을 다룬 《어떻게 영화를 만들 것인가》도 유사한 방식의 교육용 CD-ROM다. (http://www.interactivefilmschool.com/How to make your movie CD-ROM)  디지털 저장매체의 방대한 저장용량과 대화형 기능을 활용하는 것 이외에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교육훈련과정에 끼친 영향은 무엇보다도 후반작업의 비선형 편집 시스템의 활용에 있다. 비선형 편집 시스템이 초래할 변화는 생산과정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 있어서도 위력적이다. 비선형 편집은 여러 가지 효과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작품의 수정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어느 화면이든지 순간적으로 재생할 수 있는 이른바 임의접근(Random Access)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영상 제작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훈련기간을 비약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3. 대화형, 혹은 상호작용 (Interactive) 매체의 새로운 도전
(Interactivity의 직역은 단어상으로나 의미상으로나 대화형이라기보다는 상호작용형이 적절하지만, 일반적으로 현재 국내에서는 사용자와 미디어의 대화라는 관점에서 대화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 글에서도 이를 원용한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단지 기존 시스템의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 데만 머무르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언제나 새로운 스타일과 새로운 장르의 개발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대용량과 멀티 미디어적 신호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개입은 장르에 있어서는 대화형 영화를 , 그리고 시스템에 있어서는 대화형 TV라는 새로운 개념을 등장시켰다.

  (1) 대화형 영화 (Interactive Cinema)

  5년 전, 새로운 변화와 관련된 과장섞인 예측의 중심에는 관객의 판단에 따라 그 줄거리를 달리하는 쌍방향(혹은 대화형) 드라마가 놓여있었다. 쌍방향 영화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요 논거는 기존 영화의 폐쇄적이고 선형적인 성격에 기초한 것이었다. 빌 게이츠가 한창 위세를 떨치기 시작하던 4년 전, 윈도우즈 프로그램의 발표와 함께 있었던 시연을 통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이 새로운 영화의 개념은 고정된 줄거리가 없이 관객의 '능동적인' 선택에 따라 영화의 줄거리가 변화하고 나아가 관객이 영화의 내용 전개 과정에 창조적인 주체로서 개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어찌보면 기존의 수동적 관객을 전제로 한 영화와 비교해서 지극히 혁명적인 발상인 듯 싶기도 하지만, 이러한 영화의 개념이 기존의 영화를 대체할 수 있을가에 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영시간이 정해져있지 않으며 때로는 여러 가지 경로의 이야기 구조가 가능한 비선형적(Non-linear) 영화에 대비해볼 때 선형적(Linear) 영화의 강점은 명확하다. 상영시간이 정해져있다는 것은 작가와 관객간의 관계를 미리 계산하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으며, 극장과 비디오 시장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핵심 시장과 캐릭터 산업으로 표현되는 부수 시장이 이미 구축되어 있다는 점은 선형적 매체의 비교우위를 떠받쳐주며, 관객의 수용 태도는 쉽게 창조되거나 변형되는 것은 아니니까. 게다가, 관객의 참여정도로 능동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기술중심주의적인 발상이기도 하며, 나아가 그러한 개념의 영화는 영화의 개념을 확대발전시켰다기 보다는 게임의 영역을 영화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을 뿐이라는 혹평으로부터도 쉽게 자유롭지 못하다.

  (2) 테마파크로서의 영화

  그런 근거들 때문인지, 대화형 영화의 떠들썩한 장광설은 현재로서는 거의 들리지 않으며, 다만 기술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특수한 공간에서만 감상 가능한 새로운 형태의 영화들만이 부분적인 전진에 성공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들의 역사적 근원은 이미 볼거리(Spectacle)를 찾기 위해 언제나 분주한 헐리우드의 옛 역사 속에 자리잡고 있다.

  1940년대 TV가 등장하면서부터 헐리우드는 무엇인가 새롭게 탈바꿈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였고, 고민 끝에 기존의 평면적이고 좁은 시야를 지닌 영화를 벗어난 새로운 대안적 영화 포맷들을 개발해냈다. 3D, 시네라마, 시네마스코프 등으로 등장한 이러한 대안들은 이후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나갔다. 시네마스코프는 기존 영화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보다 스펙터클한 성격을 지니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반면에, 씨네라마 등은 70년대 이후 기존의 영화보다 훨씬 강렬하고 입체적인 이미지를 묘사하는 아이맥스(I-MAX), Showscan, Iwerks 등의 이름으로 부활했다.  SFX의 전문가이기도 한 더글러스 트럼벨 등이 이러한 영화와 관련해서 파악해낸 원칙은 단순하다. 이미지가 강력해지면 상영시간의 축소가 불가피하며, 이러한 아이맥스류의 영화는 스펙터클을 기본으로 하면서 짧은 상영시간과 압축된 내러티브를 가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최대 단위 정보량인 초당 60프레임의 65미리 필름으로 무장한 아이맥스 등과 같은 새로운 포맷의 영화들은 아직까지는 기존 장편영화의 대안이라기보다는 주제공원에 부속된 볼거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3) 대화형 TV 시스템

  작가가 아닌 자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대화형 영화는 그리 매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자본은 새로운 매체가 새로운 이윤의 창출체계, 새로운 배급체계와 연결될 때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에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대화형 TV 시스템은 한때 모든 미디어 대자본의 가장 시급한 투자대상으로 떠올랐다. 기존의 비디 대여 산업과 케이블 TV, 심지어 인터넷을 대체할 것으로 여겨지던 대화형 TV는 90년대 초반 한때 주문자 비디오(Video on demand=VOD)(케이블 TV와 전화선 양자로 서비스가 가능한 VOD는 국내의 경우에는 한국통신에 의해 전화선을 통해서 먼저 시범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케이블과 전화회사 양자간의 격렬한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본다면, VOD는 만일 그 시장이 형성될 경우 또 다른 중복투자의 전형이 되기 십상이다.)라는 이름 아래 모든 뉴 미디어  뉴스란의 선두를 점했다. 타임 워너의 FSN(Full Service Network)을 필두로 한 이들 대화형 TV는 관객의 능동성에 기초해서 다양한 영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을 모토로 삼았고, 7년간 500만 달러를 이 분야에 투자하고, 2003년이 손익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예상 아래 마케팅에 열을 올리던 GTE의 예에서 볼 수 있듯 미래를 위한 신규투자는 모두 이 분야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모든 가설은 파산상태에 빠져들었고 대부분의 시범 서비스는 중단되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대용량의 영상 서비스를 다수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어려운 기술적 한계에 기초한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동안 관객을 수동적으로만 몰아세웠던 헐리우드가 스스로 관객을 능동적인 주체로 일으켜 세운다는 자가당착에도 기인하는 것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휩쓸고 지나간 지금 현재, 새롭게 가능성을 부여받기 시작하는 것은 그 동안 이러한 새로운 대화형 TV의 경쟁상대중 하나로 여겨졌던 케이블 TV의 케이블망을 활용하는 케이블 모뎀 방식의 대화형 서비스이다. 헐리우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최근 프로젝트중 하나인 인터테이너(Intertainer)의 경우는 신규 극영화 편당 3.95달러, 일반 극영화 편당 2.95달러, 1시간 분량 TV쇼 1달러, 어린이 프로그램은 50 내지 75센트 정도의 요율까지 확정한 상태에서 서비스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요금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프로그램 공급업자와 인터테이너 측이 분할하겠지만, 그 분할 비율은 아직 발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케이블 모뎀을 통한 영상 서비스가 자본의 입장에서 지니는 한가지 유리한 기술적 특성은 적절한 소프트웨어가 결합될 경우, 전자 상거래를 결합한 다층적인 정보유통체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찌되든 뉴 미디어의 끔직한 경향인 모든 영상정보의 상품화, 그리고 무한대의 채널이라는 개념 뒤에 있는 소수 블록버스터의 독점 심화현상은 민주적 미디어 구조의 암울한 미래상을 예상하게 한다.

4. 뉴 미디어의 약속과 배신

  대화형 TV와 대화형 영화에서 드러나는 뉴 미디어의 특수한 역학관계와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라는 관점에서 보다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는 보다 극적인 지점들을 HDTV의 지체현상, 그리고 DVD의 예상을 뒤엎은 조기 출현에서 발견할 수 있다.

  (1) 디지털 TV 혹은 HDTV

  아날로그 TV의 황혼기가 예상되기 시작하면서, 선지자를 자처하는 전문가들은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하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떤 이들은 90년대가 오기 전에 기존의 TV는 모두 고화질의 디지털 HDTV로 변화해갈 것이라고 예언했고, 그러한 약속에는 언제나 꺾임 없이 발전해갈 새로운 시장에 대한 숫자놀음이 뒤를 잇고는 했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고 있는, 그리고 채택되고 있는 HDTV는 그러한 약속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 HDTV의 채용 프로그램을 제시한 미국의 상황이 이를 극명하게 예시하고 있다. 올해부터 시작될 HDTV의 도입을 앞에 두고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는 논란 많던 규격에 관한 몇 가지 중요한 결정을 했지만, 막상 실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화질을 결정하게 될 가장 중요한 요소인 주사선수나 주사방식을 각 방송국의 고유 결정사항으로,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시장'의 결정사항으로 떠넘겨버렸기 때문이다.(ABC와 폭스는 720p를, NBC와 CBS는 프라임타임에 1080i를 채택하고 기타 시간대에 480p를 채택했으며, 케이블 업자들은 480p를 선호한다. 여기서 숫자는 주사선의 수를 의미하며 720부터는 HDTV에 해당한다. 케이블 TV 업자들이 480을 선호한 것은 디지털 TV를 채널수를 증가시키는 무기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숫자 뒤에 붙은 i와 p는 주사방식을 가리키는데, i는 기존 TV에서 사용되는 비월주사방식(Interlace)을, p는 기존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순차주사방식(Progressive)을 가리킨다.) 결국, 무엇인가 오긴 오겠지만 무엇이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HDTV의 현주소이다.

  (2) DVD와 뉴 미디어 기술 제국주의

  반면, DVD는 HDTV의 등장 이전에 이미 모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멋진 신세계를 열어갈 것처럼 보였다. 소니와 마쓰시다로 대표되는 반목하는 두 진영의 격렬한 싸움은 대타협으로 이어졌고, 마침내 미디어 역사상 최초로 전세계 대자본의 규격합의에 의해 탄생되는 신기원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마치 세계대전의 전조가 된 제국주의적 분할의 시작과 다를 바 없었다는 사실이다. DVD는 지역코드를 도입하여 인위적으로 세계를 분할했으며 그 결과 지역코드가 3번인 우리나라는 지역코드가 1번인 미국, 그리고 2번인 일본의 소프트웨어를 국산 DVD 플레이어로 볼 수 없다. 이것은 TV의 신호방식이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유럽에서 구입한 극영화의 비디오 테이프를 우리나라에 가지고 들어와서 보려면, 어렵기는 하지만 신호의 변환이 가능한 VCR을 구하면 된다. 하지만 DVD는 그러한 변환 기재를 만드는 것이 기술적으로 봉쇄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결국 새로운 미디어의 규격에 관한 한, 사용자의 편의보다 자본의 이윤 보장이 훨씬 중요한 결정요인이라는 점은 요지부동이다. 한편으로는 기술적 독점을 막아내는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편의를 보다 우위에 두는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형성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지역코드는 끝없이 출몰할 것이며 기술을 근거로 하는 제국주의는 두려울 것이 없다.

  5. 밑으로부터의 혁명은 다가오고 있는가?
     : 로우엔드(Low-end) 디지털 비디오 테크놀로지의 대두

  혼란을 피하기 위해 이 글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비디오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하자.  우선 멀티미디어 입장에서 바라본 디지털 비디오는, 아날로그 비디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량이 적은 작은 화면의 동화상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비디오의 입장에서 바라본 디지털 비디오는, 이와는 달리 애당초 TV 혹은 액정 스크린에 담아낼 영상을 가리키며 따라서 이러한 화상신호는 정보량이 상대적으로 많다. 이 경우에도 디지털 비디오라는 간단한 표현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포맷을 가리키는데, 이 글의 관심대상은 D1, D2 등으로 불리우는 방송 시스템의 디지털 비디오가 아니라 저비용 고효율을 자랑하는 새로운 포맷 DV를 가리킨다.

  (1) 커뮤니케이션과 민주적 창작의 가능성

  95년 하반기, 소니는 획기적인 카메라를 시장에 선보였다. 6.35미리의 소형 테이프를 사용하는 완전 디지털 방식의 이 카메라는 가격대가 300만원 대에 불과했지만, 화질의 재현 능력에 있어서는 6000만원을 넘나드는 방송용 카메라와 비교해서 별다른 손색이 없었다.(현재까지도 해상도면에 있어서는 VX-1000이 캠코더 분야의 왕좌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이후 캐논은 렌즈가 교체가능한 DV 카메라를 내놓았고, 빅터는 초소형 카메라에 주력하고 있으며 (집회참여자의 촬영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경찰이 선구적 사용자중 하나이다), 샤프는 아날로그 뷰캠을 마찬가지로 디지털에도 적용한 바 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DV(Digital video) 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새로운 시스템은 영상 제작의 전과정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디지털 비디오 카메라 없이 디지털 혁명 속에서 생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미국의 멀티미디어 저널리스트 테일러 바크로포드)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DV의 전신인 아날로그 홈 비디오가 등장과 비교해본다면 더욱 뚜렷한 질적 차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제작과정의 기술적 특성과 비용문제 때문에 불가피하게 소수에 의해 독점될 수밖에 없었던 필름의 한계를 일거에 돌파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비디오는 진정 혁명적인 매체로서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다. 저예산으로 제작이 가능하며, 별도의 현상소를 출입할 필요도 없이 쉽게 재생할 수 있고 대량 복제가 가능하다는 점 등은 비디오가 매체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수 있는 강력한 매체라는 믿음을 유포시켰다. 그 결과 많은 독립 제작자들이나 운동가들은 앞다투어 비디오의 세계로 뛰어들어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꿈꾸며 현장을 누볐다. "비디오 테크놀로지는 마치 15세기에 활자가 발명되면서 서적의 개인적 소유가 가능해진 것과 유사한 결과를 초래했다. 옵셋 인쇄가 대중화되면서 60년대의 대안적 언론 운동이 출범했듯이 비디오의 출현은 70년대의 대안적 비디오 운동을 촉발시켰다." (디어드로 보일의 [변화에 대한 적응 : 게릴라 TV의 재검토]에서)  그러나, 이 혁명적인 매체는 그 또한 결정적인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사회적 맥락과 테크놀로지의 발전단계 양자로부터 출발하는 것이었다. 배급의 수단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테크놀로지의 작은 전진은 왜소하기만 했고, 더욱이 아직 비디오 테크놀로지는 기술적으로 미숙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대로' 만들자면 비디오 또한 많은 돈이 필요했고 때로는 수퍼 8미리와 같은 저예산 필름 작업보다도 훨씬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그런 면에서 비디오의 발전사는 홈 비디오와 업무용 시스템의 철저한 양극화로 점철되었다.

  이러한 비디오 발전사의 획을 그은 것이 바로 DV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도입이었다. DV는 저예산의 테크놀로지이며, 역사상 최초로 평범한 소비자와 중견 작가가 최소한 카메라의 영역에서는 구분이 불가능해진 시대를 도래하게 한 장본인이다. 물론, 아직까지 테잎 가격의 문제로 인해 최초 기재구입 비용에 비해 유지비가 만만치 않고, 컴퓨터 편집 시스템은 가전제품의 가격에 비하면 여전히 턱없이 비싼 것이지만, 한 대의 업무용 카메라를 구입하는 비용의 몇 분의 일로 카메라와 후반작업 기재를 모두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혁명적인 변화다. 이러한 변화는 그 동안 자금의 열세에 따른 기재의 열세로 고통받아온 인디펜던트에게 힘의 관계를 역전시킬만한 무기를 제공함과 동시에, 퍼블릭 엑세스로 대표되는 일반인의 미디어 제작 참여를 활성화하는 유력한 기초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기에 '출판'이 하나의 권력이었던 시대가 워드 프로세서로 대표되는 DTP(Desktop Publishing)의 등장과 함께 종말을 고했듯이, 이제 DTV(Desktop TV)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주장은 결코 허황된 망상이 아니다.  동시에 이러한 발전은 소규모 방송국 설립을 위한 유력한 물질적 기초가 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민주 방송 운동을 비롯한 대안적인 미디어 운동의 다양한 구상은 그런 점에서 테크놀로지의 측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단계 속에 놓여있는 셈이다. 또한, 현재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는 인디펜던트의 국제적인 네트워킹은 인터넷의 발전이라는 또 다른 변수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DV, 비선형 디스크 편집 시스템, 그리고 네트워킹의 강력한 무기인 인터넷 등 3주체의 결합은 보다 민주적인 영상 배급구조를 만들어갈 수도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2) 저예산 테크놀로지의 경계 파괴=비디오에서 필름으로

  DV 테크놀로지와 여타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또 다른 새로운 변화 양상은 필름과 비디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물론 DV 이전에도 비디오를 필름으로 전환(Transfer)하는 기술은 90년대 이후 빈번하게 사용되어 왔으며, 특히 많은 인디 다큐멘터리들은 그러한 전환을 통해서 새로운 배급 전술을 현실화시켰다. <파나마 사기극>은 심지어 홈 비디오 촬영 부분마저 포함하는 작품이지만 극장 개봉을 한 후 아카데미상을 받은 바 있고, <후프 드림즈>는 베타캠으로 촬영한 후 S-VHS 가편집과 베타캠 본편집을 거쳐서 35미리로 전환해서 극장에서 개봉하는 전략을 채택하여 흥행에서마저 성공한 바 있다. DV의 등장은 이러한 전환 방식이 보다 낮은 가격에 고화질로 가능해짐을 의미하며, 그 결과 96년을 기점으로 많은 다큐멘터리 영화제에는 DV로 촬영된 후 필름으로 전환한 작품들이 줄을 이어 등장하고 있다. 노동영화제에서 소개된 바 있는 마이클 무어의 <빅원, The Big One>(1997)의 상당 부분은 VX-1000으로 촬영된 것으로 소니의 Hi-Vision 시스템을 활용해서 비디오에서 곧바로 35미리 필름으로 전환했으며, <순항, The Cruise>(1998)의 경우는 모든 촬영공정이 DV를 통해서 진행되었고, 심지어 <마지막 방송, The Last Broadcast>(1998)은 겨우 800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극영화로서 일부는 필름의 형태로 일부는 위성을 통한 비디오 송출의 형태로 미국의 극장 체인에 배급되기까지 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집단상영, 극장 배급라인으로의 진입 등에서 어려움을 겪던 비디오의 한계는 서서히 극복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고화질의 비디오를 굳이 필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느냐는 원초적 질문 또한 가능하다. 그러기에 바로 <파나마 사기극>의 감독 바바라 트렌트는 96년 한국에서의 인터뷰에서 이후로는 필름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할 생각이 없음을 천명하기도 했다. 그러한 정황을 생각해본다면, 비디오를 사용하는 후반작업과 배급 전술의 선택 폭이 보다 확장되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3) 사회적 관계로서의 테크놀로지

  그러나 유아기의 테크놀로지가 언제나 그러하듯, DV 역시 변혁의 가능성을 제공함과 동시에, 기존의 구조적 한계를 증폭시키거나 은폐하는 수단으로 전화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변화는 언제나 구체적인 생산관계와 권력관계 속에서만 일어나며, 테크놀로지는 결코 진공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예산의 절감이 주로 고용인력의 축소로 이어진다는 명제에서 DV도 결코 예외는 될 수 없다. 고용된 노동자의 입장에서 저예산 소인력 시스템은 노동조건에 있어서 파국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 일부 도입되고 있는 1인 제작 시스템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쉽게 고용의 축소를 떠올리게 하며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그것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일부 도입되고 있는 1인 제작 시스템은 고용악화와 노동 강도의 강화를 시도하는 자본의 유력한 공격 무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왜곡된 차용을 장르를 매개로 들여다본다면, 경량화된 16미리 카메라의 등장이 보다 생생한 현장 취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다이렉트 시네마라는 새로운 양식의 출현으로 이어졌듯이, 장기간의 밀착 취재가 보다 용이해진 DV  또한 이미 장르의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재편에는 디지털 센세이셔널리즘이라고나 이름 붙여야 할 부정적인 변화가 함축되어 있다. 선정적인 성격이 강한 소재주의, 그리고 현장의 생생한 물리적 취재에 집착하는 조악한, 이른바 베리떼 스타일의 작품들이 양산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센세이셔널리즘이 주는 신뢰감이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원천봉쇄 해버리는 독특한 메커니즘이다. 그러기에 카메라가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오히려 카메라를 둘러싼 권력관계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필요가 있으며, 테크놀로지가 강력해지면 질수록 비판적 사고는 테크놀로지의 신화에 주목해야 한다. 센세이셔널리즘을 낳게 하는 메커니즘과 동면의 양면을 이루는 것은 바로 개인주의의 신비화이다. 마치 1인 작업 시스템이 무척이나 진보적인 것처럼 칭송되고 있지만, 1인 작업은 결정과정의 단순화를 통해서 작업의 효율성을 향상시킬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집단작업 혹은 조직작업이 지니는 협의와 검증의 과정을 결여한다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자유'를 보장해줄 뿐이다. 개인적 작업이 조직적 작업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그 역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1인 작업 시스템의 진보성을 가장 순수하고 용감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은 미디어 자본의 지배자들뿐이다.

  한발 더 나아가, 만일 우리가 DV 캠코더를 손에 들고 그 무엇인가를 찍어내고 디지털 컴퓨터로 편집해낸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아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관객들 앞에까지 가져갈 수 있는가? 이 '배급'의 문제는 곧바로 두 가지의 영역을 함축한다. 한편으로 그것은 제도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독자적인 배급의 수단 혹은 민주적 공간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면, 최소한 배급통로에 들어갈 수 있을만한 제도적 장치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법적인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인터넷의 영상 전송이 보다 발전되어 인터넷을 통해서 DV 수준의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사전 심의가 인터넷에 적용된다면 테크놀로지의 진보는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여전히 네트워크에 있으며, 그 네트워크의 정점에 바로 세기말의 화두 인터넷이 있다.

  6. 인터넷과 연대, 그리고 대안적 배급체계

  20세기 최후의 격전지답게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측면에 엄청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 인터넷은 예상보다 빨리 멀티미디어적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인터넷은 소수의 전문적인 사람들이 주로 텍스트 정보를 실어나르기 위해 사용하는 문자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몇년 사이에 폭발적인 증가 추이를 보이며 인터넷은 서서히 대중적인 멀티미디어 네트워크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인디펜던트의 입장에서 보자면, 시간과 공간의 거리가 축소되고 보다 민주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네트워크가 생겨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양한 영상 소프트웨어를 필요로 하는 시장의 창출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적 운동을 보다 능률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의 등장을 의미한다.

  (1) 네트워크의 민주적 파괴력

  굳이 인디펜던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통신상에서 이루어지는 온라인 회의와 직접 얼굴을 맞대는 오프라인 회의의 적절한 조화는 작업의 능률을 획기적으로 제고시킨다. 이미 외국의 많은 인디펜던트들은 대본의 제출 및 수정 검토 작업, 그리고 촬영 콘티의 배포를 온라인 상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제작팀은 촬영현장에 모이기 전에 모든 내용을 숙지하게 된다. 특정한 작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제작 스텝을 모으는 게시판으로 통신 공간을 활용하는 것 또한 일반적이다. 이러한 조직화 수단으로서의 전자우편의 활용은, 바로 90년대 이후 활성화되고 있는 인디펜던트의 국제적 공동 프로젝트의 추진을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이다.  동시에 인터넷은 자료 창고이자, 홍보의 장으로서, 그리고 일상적으로는 정보의 공유장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국제 연대의 무기로 등장하고 있다. 인디 필름 제작의 주요정보원인 인디와이어(Indiewire : http://www.indiewire.org), 포괄적인 미디어 민주주의의 메일링리스트인 미디어멘터(Mediamentor), 영상운동의 국제연대조직인 비디아지무스(Videazimuth http://www.videazimut.org)의 올 4월 미디어 민주주의를 주제로 인터넷 상에서 개최한 가상회의 등은 그러한 수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