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술한 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시장규모와 산업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한국 문화산업에 끼칠 영향을 짚어보자. 과연 3차 개방을 시행한 정부의 근거는 타당한가. 이하 영상부문에 한정하여 살펴보자.

(1) 정부의 독단적 추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앞두고 정부는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구하고 업계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일 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의 국내 문화산업에 대한 전문성과 대표성에 대해서는 그 동안 수 차례 논의되었다. 초기 개방 논의 때만 하더라도 중요한 사안은 일본에 대한 국민적 인식 등에 관한 것이었지만 이제 3차 개방 즈음해서 가장 중요한 사안은 국내 대중문화 산업 그리고 문화적 역량, 문화 정체성 등의 문제로 전환되었다. 새로운 국면으로 바뀐 셈이다. 새로운 국면은 더 많은 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시장 점유율도 중요하고, 점유율로는 환원 계산될 수 없는 문화적 영향력 등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끊임없이 개방 단계의 조절, 수위의 조절 등을 주장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개방 조처는 현재 우리의 상황을 적절히 파악하고, 그에 맞춘 준비를 점검하는 것과 동시에 벌어져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초기 개방 전보다 산업계, 문화계와의 대화는 더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든다(문화부는 일본문화 추가개방에 대한 관련 업계·단체 등에 의견을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일정이 불과 보름 남짓한 일정이었다는 것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단적으로 2, 3차 개방과 관련된 단 한 차례의 공청회도 없었다.

(2) 속도의 문제점

영화·음악의 전면 개방, 방송·애니메이션의 최초 개방으로 전면개방의 전단계인 3차 개방에 이르기까지 걸린 기간이 고작 1년 8개월이라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문화산업이 일본에 비해 자본과 경쟁력에서 현격히 떨어진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부 또한 이를 감안 국내문화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시행과 시장에서의 효과를 판단하여 단계적인 개방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차 개방 이후 9개월만에 기습적으로 발표한 3차 개방을 볼 때, 정부가 과연 이런 원칙 하에서 단계적 개방을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첫째, 문화부에서 3차 개방의 근거로 발표한 문화산업진흥책에 따른 우리 문화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근거가 될 수 없다. 문화산업의 특성상 제 정책의 실행으로 인한 효과는 상당한 시간적 간극을 가진다(영상산업의 경우 최소 1년). 즉 미래에 나타날 효과에 대한 선험적 판단에 따른 개방의 확대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둘째, 2차 개방 후 나타날 시장에서의 파급효과가 모두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인 9개월만에 3차 개방의 실행은 이미 중대한 정책적 오류를 안고 시작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3) 근거의 자의성

2차 개방에 따른 일본 대중문화의 우리시장 잠식 정도가 미미하다는 정부의 근거자료는 정부의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아전인수격 자의적 해석이다.

2차 개방에 따른 실제 시장점유율은 상술한 바 문화부의 발표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영화의 경우 문화부 발표인 9.8%와는 달리 2차 개방에 따른 실제 시장점유율은 이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 발표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0년 7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2차 개방의 시장파급 효과가 아직도 현실화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2차 개방에 따른 국내 개봉 가능영화 150여편 중 현재까지 개봉된 영화는 단 10편뿐이라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아직도 2차 개방에 따른 파급효과는 시장에서 현실화되고 있지 않은 상태임에도 현실에 훨씬 못 미치는 축소된 자의적 자료를 근거로 3차 개방을 결정한 것은 근본적으로 문화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대한 접근이 국내 문화산업 보호와 육성의 원칙, 나아가 한일간 상생적인 문화교류와 발전에 입각해 있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한다. 즉 문화부는 쫓기듯 개방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한 예로 정부가 99년 9월 2차 개방을 실시한 이후 문화정책연구원에 위탁, 그 파급효과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 시점이 2000년 1월로 불과 4개월 만이었다. 이는 2차 개방에 따른 효과가 나타나기도 전인, 2차 개방에 따른 일본 영화의 시장진입 시기와 시기를 같이 하는 것이어서 그 조사의 목적이 이미 짜여진 각본에 의한 명분 축적용 조사였다는 인상이 지울 수 없다.

이런 각본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가 전면 개방시 일본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 8∼10%이다. 상술한 바 정부가 제시한 수치를 놓고 본다면, 98년 2편의 일본영화가 개봉되어 0.4%, 99년 4편이 상영되어 3.2%, 그리고 2000년 상반기에는 총 10편이 상영되어 9.8%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슬쩍 엿보기만 해도 일본영화의 국내 개봉편수가 늘어나면서 그 시장점유율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직 2차 개방 대상 작품중 상당수가 미개봉 상태이고, 그 개봉 편수가 늘어날 것이 필연적이므로, 하반기에 그 점유율이 더욱 상승할 것임을 쉽게 예측된다. 또한 3차 개방에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포함되어 있다. 상술한 바 제패니메이션은 매년 일본영화 흥행 TOP 10 중 5편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즉 제패니메이션의 국내 개봉이 가능한 하반기에 일본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을 8∼10% 정도로 보는 것은 정부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현재 개봉대기중인 10여편의 극영화와 연내에 4~5편 이상이 개봉할 것을 예상되는 제패니메이션을 합산할 경우 2000년 일본영화의 한국 영화시장 점유율은 20%대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고, 이런 예측은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문화부는 도대체 전혀 타당성이 없는 자료를 근거로 3차 개방을 꿰어 맞추고 있는 것이다.

(4) 국내 문화산업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 국내 산업 인프라가 전혀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은 그동안 세계 제 1위의 애니메이션 하청국가로 자리잡아 왔다. 이는 애니메이션산업의 특정상 저임금 국가로 하청작업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언제든지 1위 자리를 내놓을 수 있는 불안한 조건을 의미한다. 일례로 최근 중국의 값싼 노동력이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만약 국내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현재 우리가 이루어놓은 하청국가를 자리를 유지하는 것에 둔다면 3차 개방은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우리의 캐릭터 개발을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 진출하고자 한다면, 3차 개방으로 인한 국내 애니메이션은 이미 초토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국내 애니메이션은 지난 3-4년간의 투자로 이제 막 창작애니메이션의 인프라 구축의 싹을 키우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3, 4년 사이에 약 40여 개의 애니메이션 관련학과가 신설되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았던 많은 청소년들과 매니아들을 포함 많은 인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못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을 해보겠다는 푸른 꿈들을 안고 있다. 지금은 미국이나 일본의 하청산업으로서 밑그림을 그려주는 역할에 머물고 있지만 언젠가 제패니메이션과 미국의 디즈니를 넘어설 것이라는 꿈 하나로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꽃도 피워보지 못한 상황에 놓인 애니메이션 분야에 세계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진출하게 되면 우리의 산업 기반이 붕괴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제패니메이션의 개방이 국내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거는 견해도 있지만,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붕괴된 상태에서 애니메이션 시장의 활성화는 남의 잔치에 자리만 내주는 격이다. 문화부는 이번 개방 폭이 국제영화제 수상작에 한정하는 소폭개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제로 일본에서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의 상당수가 국제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5) 정부의 문화산업발전 5개년 계획(1999-2003)

이번 3차 개방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문화산업발전 5개년 계획(1999-2003)을 곁들여 보도 자료로 배포했다. 계획에 따르면 영상부문은 획기적으로 육성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