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맞닿을 수 없는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 the beach.
글: 김관식
2000년 0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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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의 새 영화, the beach는 이런 서로 맞닿아 있을 수 없는 두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문명과 자연, 찌들린 일상과 낙원, 서로 다른 문화의 두 남녀. 현실과 이상. 이 모든 것들은 그가 만들어놓은 영화 안에서 합쳐지기를 모색하고, 결국은 다시 떨어져서 남게 된다.
새로운 것, 남들과 다른 경험을 찾아 태국에서 여행하고 있는 미국인 리차드는 우연히, 혹은 계획적으로 낙원과 다름없는 전설의(?) 해변으로 가는 지도를 손에 넣게 되고 바로 옆방에 묶고 있던 프랑스인 남녀와 함께 모험 아닌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뭐, 그리 힘들지 않은 경로를 거쳐 그 해변에 이르게 되고 그곳에서 이미 정착해서 살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현실과 문명을 떠나 자신들이 꿈꾸던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제도도 없고 구속도 없고 그저 비밀만 지키면 모든 것은 최고의 상태로 있게 된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이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우리가 꿈꾸는 이상의 세계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결국 그 둘을 모두 가지고 있어야만 사람들은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씩 닥쳐오는 문제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매우 이기적인 태도로 자신들의 낙원을 이어가게 된다. 제도에서 떨어져 나와있는 상태에서 사람은 만나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결국 이상은 조금씩 무너져 가게 된다. 극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들의 꿈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잔혹하고 이기적이 될 수 있는가를 영화는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물론 대니 보일은 인간을 가장 잔인한 동물로 몰고가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질려서(딱 좋은 표현이다. 질려서...) 낙원을 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나마 일말의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고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해서 기쁜 표정을 지을 수는 없다. 그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꿈을, 이상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적인 공간인 낙원은 가장 현실적인 동물인 인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그런 진실이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장 슬픈 현실이다. 멀리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바다가 그리워서 바닷가에 가고, 그리고 그 바닷가에서 요란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하지만 사람들이 꿈꾸는 바다가 요란한 음악이 흘러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춤추는 이미지일까? 영화 초반부에 리차드는 여행지에서 영화나 보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고 조소하지만 결국 그 자신도 그렇게 꿈꾸던 해변에서 오락이나 하고 앉아 있었으니까.
영화에서는 문명과 자연의 경우를 내세우고 있지만 다른 모든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까지 어쩌면 이상과 현실은 만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리차드가 PC방 같은 분위기의 공간에서 프랑소와즈가 보낸 E-mail을 받을 때, 그 사진에 적혀있던 말처럼 '서로 맞닿을 수 없는 두 세계'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그들이 사랑하지만 이어질 수 없는 것처럼..... 또, 더 슬픈 것은 그런 문구를 보면서 리차드가 짓는 미소이고, 그런 사실을 말하고 있는 지금의 내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별로라고 말하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실들, 그냥 뻔한 얘기라고. 그러니까 이 영화는 뻔한, 혹은 뻔뻔한 영화라고...디카프리오가 나오고 대니 보일이 적당히 헐리우드식으로 만든 별 볼일 없는(평론가들이 별을 조금 줄테니까...^^;) 영화라고. 적당히 신나는 음악과 멋진 해변을 즐기고. 디카프리오가 오락 캐릭터로 변하는 것을 화제삼으면 될 영화라고 생각하는 게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엔 '서로 맞닿을 수 없는 두 세계'라는 문장이 너무 크다.
2000.02.14. lilactea
영화, 'the beach'의 공식 사이트 : www.thebeachmovie.com
사족 : 영화 엔드 크레딧의 배경음악으로 UNKLE의 'lonely soul'이 쓰였다. 껌뻑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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