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Rangoon; about sadness & love
글: 김관식
2000년 0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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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드 랭군"은 단순히 정치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 배경은 80년대 후반 미얀마에서 벌어졌었던(지금도 그렇다고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들의 열망과 정치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지만 영화는 단순히 정치적인 의도를 넘어서서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로라(페트리샤 아퀘트)는 강도에게 남편과 어린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 현실과 쉽게 구분할 수 없는 꿈속에서 그녀의 남편과 어린 아들은 계속해서 그녀에게 깊은 상실감을 더해주고 있으며, 그녀를 점점 더 '슬프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여행하고 있는 미얀마(당시 버마)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슬픔'에 휩쌓여 있는 곳이다. 모든 사람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군부 독재가 계속해서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국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그들은 숨어살아야 하며, 청년들은 별 생각 없이 군인이 되어 동족을 탄압해야 한다.
로라와 미얀마. 쉽게 생각한다면 그들은 서로 전혀 다른 종류의 슬픔을 지니고 있다. 만약 로라가 직접 미얀마의 거리에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슬픔은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극단적인 것이었다. 다른 슬픔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미얀마의 혼돈속에 있었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슬픔에 휩쌓여있던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아웅코와 다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슬픔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자신의 슬픔과 그들의 슬픔을 동일화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슬픔'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분명 로라와 아웅코사이에 생겨난 것은 '슬픔의 동화'이고 더 나아가 '사랑'이다. 흔히들 말하는 '범우주적'인 사랑. 서로 다른 슬픔이 만나 조금씩 서로를 무너뜨리고 '사랑'을 키워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영화를 '킬링필드'에서 볼 수 있는 휴머니즘의 연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다. 단지 미국인이 갖게되는 아시아의 인권유린에 대한 분노라고 단정짓기에는 감정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이 자리잡고 있다. 감독인 존 부어맨은 그런 요소들을 영화의 이곳 저곳에서 부각시키고 있다. 자주 로라의 꿈속에 나타나는 살해된 남편과 아들의 모습이 로라가 머물고 있는 미얀마의 공간에 나타나는 것, 또는 로라가 조금씩 아웅코의, 혹은 미얀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을 이해해 감에따라 자신의 슬픔을 털어놓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목적; 그것도 우리가 항상 곱지 않게 바라보는 '미국의 휴머니즘'에 대한 자부심같은 것은 절대 아님을 알 수 있다. 물론 감독의 의도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화가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런 장치들은 이 영화를 단순히 전형적인 미국 영화로 판단되는 것을 막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의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비욘드 랭군"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요소들은 부각되어야 한다. 그들의 슬픔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또한 그들의 슬픔이 단지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상황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서 지워지지 않는 광주가 바로 "비욘드 랭군"에 그대로 들어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이 영화는 장선우 감독이 "꽃잎"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개인적으로 "꽃잎"은 그런 면에서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집단의 슬픔에서 개인의 슬픔을 끄집어내어 보는 이들에게 어필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이 영화는 개인적인 슬픔과 집단의 슬픔을 동일화하는 작업이었다.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시작되어 계속해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슬픔들이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시작되는 큰 의미의 사랑. 그 누구도 이 영화를 정치적인 미국 영화라고 쉽게 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정치영화이기 이전에 사랑에 관한, 그것도 두 슬픔이 만나서 서로를 위로하고 부축하는 감동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000313, lilac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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