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로얄> 친구랑 보기 싫은 영화
글: 김관식
2002년 04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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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틀 로얄>은 친구를 죽이는 영화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는 폭력이 난무하고, 피도 눈물도 모두 나옵니다. TV와 영화가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르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폭력으로 치장된 상업영화라고 말할 것이고, 영화가 2001년 마이니치 영화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것에 기뻐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사회적이고도 철학적인 영화라고 말할 것입니다. 분명 이 영화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디렉터스 컷까지 재개봉할 수 있었으며, 그런 흥행호조에도 불구하고 포스터에 별 다섯 개를 자랑스럽게 내걸며 뭔가 예술적인 영화라고 선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분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 영화만큼이나 사회는 비정하고 무서운 곳이기 때문이고, 또한 이 영화의 폭력장면들을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을 만큼, 우리들은 영화들이 보여주는 폭력에 무감각해졌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섬뜩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친구를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평소에 증오하던 친구를 찾아가 죽이려고 했던 한 아이가 이 영화에 있었습니다. 이 여자아이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숨어있는 주인공이었다고 생각되는 풀베는 낫의 여전사, 소마 미츠코를 만나 평소에 자신이 미츠코를 싫어했다는 이유로 총을 들이댔다가 역시나 주인공은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에 역습을 당해 죽고 맙니다만. 어찌 되었거나, 전반적으로 영화의 메시지가; 사회라는 것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에게 해를 가한다는 것으로 위로를 받는 어느 정도의 가슴 뭉클한 것이었다면, 이 여자아이 캐릭터는 그런 분위기에 일순간 찬물을 끼얹고 우리에겐 '증오'라는 것 또한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었지요.
3. 이제 무언가를 말하려는 영화는 비단 작가주의 영화이거나 교훈을 내세우는 따분한 영화만은 아닌지도 모르겠어서, 너도나도 뭔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하고 또 분명 우리는 그런 메시지들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이 영화, 배틀로얄. 분명히 아이들을 폭력의 길로 이끄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정말로 참신했으며, 우리는 분명히 감독이 말하려는 이야기를 포착해냈습니다. 하지만 뭘 어쩌라는 걸까요? 이 영화 때문에 친구를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랑 사이가 좋지 않은 녀석이 밤길에 나를 따라와 나를 어찌 할거라고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째서 이 영화는 최우수 작품상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상을 받았던 것일까요?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도 사회를 믿고 있었던 걸까요? 그래서 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에 깜짝 놀란 것일까요?
사실 이 영화를 혼자서 본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를 보기 위해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아무리 사회가 냉정하고 서로 못죽여 안달이 나 있더라고 해도, 정말로 3일 안에 모두를 죽이고 나 혼자만 살아남아야 한다고 해도, 적어도 친구와 함께 보고 싶은 영화는, 가슴 따뜻하게 눈물 흘릴 수 있거나, 배꼽을 잡고 웃겨서 죽어갈 수 있는(!) 바로 그런 영화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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