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수정 vs 싸이,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당신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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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vs 싸이,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당신의 오판 :::

김관식 | 2001년 1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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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라는 곳이 생기기 전, 전통적인 매체들은 쌍방향적 의사소통이란 그저 허울좋은 이름만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수용자들- 아니 수신자들따위는 아랑곳 하지도 않았었더랬다. 가끔 걸려오는 전화에 대강대강 대답해주면 되었고,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글들은 독자란같은 곳에 쓰윽 실어주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어느날 인터넷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모든 사람들이 송신자가 될 수 있는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도 기존에 수신자였던 수많은 사람들은 달라진게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제 바야흐로 소수권력과 소수문화의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더 이상 몇몇 중심적인 매체들에 의해서 사회가 좌지우지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당장 관련 게시판으로 달려가 욕을 퍼부었고, 조금 잘난척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영화와 음악들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 웹진으로 모여들었다.

우습게도 기존 전통 매체들을 지배해오던 집단들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들도 인터넷의 세계에 둥지를 틀었으며, 자신들도 그런 소수 문화들 사이에 들어앉았다. 여전히 전통 매체들의 형식과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제 우리의 의견을 저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그렇게 날뛰는 네티즌들의 이야기를 수도없이 다루었다. 이제 인터넷은 기존 매체들을 압도하는 여론 선도집단이 되었다고 네티즌들에게 발표하였다. 넘쳐나는 자신감에 기고만장해졌다. 우리들은. 그러나...

최근 연이어 마약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신문에 이름을 올린 황수정과 싸이에 관한 인터넷상에서의 사람들의 반응도 정말 의외이고, 또한 우습다.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둘의 차이점은 절대 발견할 수 없다. 같은 연예인이며 똑같이 마약관련법률을 위반했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완벽하게 상반되어 있다. 황수정은 오래전의 마녀사냥을 연상케 할 만큼 혹독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는 반면에, 싸이는 뭐 괜찮다. 선처를 부탁한다는 등의 전혀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관련 기사가 보도된 후 황수정의 많은 팬사이트들이 손수 문을 닫았다고 하고, 안티-황수정 커뮤니티들이 속속 생겨났다고 한다. 한 네티즌은 황수정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가 다른 사람들의 분노에 완벽하게 매장당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엽기가수 싸이는 기존의 엽기적인 이미지가 자신을 살린 꼴이 되었다. 원래 그랬던 놈이니 뭐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발언부터, 얼마나 연예인 생활이 힘들면 대마초에 손을 대었겠느냐는등의 뜬구름없는 동정표까지. 너무나도 관대한 대접이다. 황수정이 사용한 마약이 싸이가 사용한 대마초보다 강력한 것이어서? 일각에서는 어째서 여자연예인이 남자연예인보다 나쁜 평가를 받는가라는 페미니스트적인 비판까지 들고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페미니스트들과 내 생각이 엇비슷한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기쁘다-)

어째서 사람들은 눈에 비쳐왔던 미디어 안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에 따라 그들의 죄를 판단할까? 황수정은 실생활에서도 예진아씨와 다를바 없어야 하는 것이며, 반대로 싸이는 TV에서처럼 막나가도 된다는 식의 발상은 사람들이 미디어가 보여주는 모습과 실제상황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예진아씨' 너마저… / 중앙일보
마약에 취한 예진 아씨? / 일간스포츠 영어회화코너 (!!)
수갑 찬 예진아씨 / 한국일보

물론 네티즌들의 잘못된 시각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언론들의 잘못을 그냥 간과할 수는 없다. 대중들의 여론을 이끌고 있는(!!) 각종 언론들이 이런 시각차이를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고 또 조장하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심한 것일까? 특히 황수정이 구속되었을 때, 각 '스포츠신문'들이 달았던 헤드라인들은 역사적으로 기억될만하다. 황수정이라는 이름보다는 예진아씨라는 극중 배역명을 사용한 것을 아마도 자랑스러운 자신들의 센스넘치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황수정이 섹스 중독일 것이라는 추측기사를 내면서 속으로는 신문 몇 장 더 팔았다는 생각에 키득거렸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자신들이 무심코 달아놓은 헤드라인에 의해 대중들이 황수정과 예진아씨를 다시 한번 동일시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하지 못했을까? 혹은 하지 않았을까?

네트워크 안에서 일반 대중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은 허울 좋은 겉모습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째서 예진아씨처럼 단아하고 순수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황수정이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혹은 지나치게 섹스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던가? 이것은 팬들을 기만하는 처사이다. 혹은 엽기적인 이미지의 싸이가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뭐 다들 예상할 수 있는 일 아니었는가? 이런 식의 발상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의 이번 사건에 대한 판단들은 왜곡된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다. 혹자들은 미디어를 통해서 자신들의 실제 모습과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놓은 연예인들이 대중들을 기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자신들의 이미지에 대한 책임을 실제 생활에서도 짊어질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미디어에 속아넘어간, 혹은 미디어속의 모습과 현실을 착각한 대중들의 변명에 불과하다. 그들이 이번 황수정의 사건에 놀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이 마치 논리적인 생각인 것처럼 겉으로 거침없이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인터넷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그래서 소수 권력을 위한 미디어로 부상했고 자신들이 그런 매체에 한 부분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펼치려면, 적어도 반대 입장에 서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전통적인 매체들에서 우리들에게 만들어주는 이미지나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받은 부분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중들이 아직도 TV나 신문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실제와 차이가 있는 이미지, 혹은 허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이미 자신들의 생각 저 밑바탕에는 전통 언론과 매체들에 의해 인위적으로이거나 그렇지 않은 경로를 통해 조작되고 왜곡된 바탕을 깔고 있으면서 마치 자신들의 생각이 순수한 자신들의 생각이며,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올바른 판단기준이 될거라고 착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사람들은 가상공간과 실제생활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아이들을 걱정한다. 영화에서 폭력을 배우고, 범죄를 저지른다고 한탄한다. 우습다. 매일 보는 TV 드라마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정말 우리 옆집에 살고 있는 사람일거라 생각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탓할 수 있을까? 또한 언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자들은, 계속해서 대중들을 기만하는 행태를 저지르면서, 더 나아가 자신들조차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허상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어떻게 '인터넷'이라는 파급효과가 큰 매체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입을 열 수가 있는 것일까? 여기서 속으로 이 녀석은 황수정의 팬인가보군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신이 게시판에 올린 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이라면, 기존의 언론 매체와 미디어들이 우리에게 만들어준 허상들이 어느 정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인지, 또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는 사소해보이는 것들을 거침없이 받아들인 후, 인터넷이라는 곳에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으로, 왜곡된 생각들을 다시 한번 왜곡시키고 증폭시키는 일이 어떤 우스운 모습을 낳을 수 있는지 꼭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01.11.18. lilact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