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자사상으로 바라본 <와호장룡> :::
하종근 | 2001년 09월 11일
조회 3007
18세기 이후 서구사상을 지배한 계몽주의는 오늘날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의 패러다임이 되였다. 인간 이성의 끝없는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계몽주의는 현대과학 발전의 원동력 이였으며, 자본주의 꽃을 화려하게 피운 밑거름 이였다. 하지만 그러한 발전의 이면에는 환경오염, 빈부의 격차, 도덕성의 붕괴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만 출신 이안(A) 감독의 영화 <와호장룡>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영화이다. 별점 짠순이 짠돌이로 악명 높은 평론가들도 이안 감독이 들고 나온 이 무협영화에 대하여 두손 두발 다 들었으며, 관객들의 반응 또한 아주 좋다. 물론 필자의 생각도 그러하다. 왜냐고? 그건 아마도 <와호장룡>에서 말하고있는 대안이 노자의 위대한 사상에 기반을 두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자는 5000語를 사용하여 총 81장의 道와德을 논한 "도덕경"을 기원전 6세기경 저술하였다. 無爲自然을 기본으로 하는 노자의 사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5000語로만 구성된 그의 사상은 2000년 오늘의 세상을 전부 아우르고도 남을 만큼의 거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노자의 사상을 <와호장룡>이라는 무협영화를 통하여 우리들이 볼 수 있으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지금부터 <와호장룡>이 보여주는 노자의 사상을 배워보기로 하자. 다소 따분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 질 수 있겠지만, 그 동안 우리주변에서 쏟아져 나오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만 가져다 주는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지적유희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와호장룡>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중심 인물인 수련(양자경)과 용(장쯔이)은 여러모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수련은 자신의 욕망을 협객의 道로 조절하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지만 젊디 젊은 용은 그러하지 못하다. 이러한 용의 태도는 청명검을 훔쳐 강호에 출사표를 던지는 행위의 원인이 된다. 그녀는 자신의 능동적 행위를 통하여 그 동안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세속적 관습과 제도에서 해방된 자유의 기쁨을 맛보게 되지만, 그녀의 이러한 행위는 역설적으로 자유에 대한 엔트로피 증가를 가져오는 결과를 야기 시킨다. 그녀는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감당할 수 없는 혼란에 직면하게 되며 결국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그녀는 자신이 감당 할 수 없는 혼란과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의 몸이 된다.
 이러한 용의 행위는 노자가 도덕경 24장에서 말하고있는 企者不立을 설명하는 것이다. 용의 자유와 사랑은 企에 해당하며 그녀가 企를 立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엔트로피 증가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무게로 다가와 不立하게 되는 결과를 도출시킨다. 또한 도덕경 1장에서 말하고 있는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를 통하여 그녀의 실체에 접근 할 수 있다. 그녀는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해 無에서 有로 動하게 되는데 여기서 말하는 無란 용이 자신의 욕망의 행위를 표출하기 전이고, 有란 청명검을 훔치게 된 행위 이후를 말하며, 動이란 용을 無에서 有로 변화시킨 에너지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보여지는 용의 추락은 有에서 無로 돌아가는 가는 動의 순환의 과정이다. 따라서 그녀의 추락은 동시에 비상(飛上)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노자는 이러한 용을 보면서 말한다. "발돋움하는 이는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다." 또한 "無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이고, 有는 만물의 어미(탄생)를 말한다."
<와호장룡>에서는 수련과 용, 리무바이(주윤발)와 호(장진(B))라는 4명의 인물의 삶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끝이 없이 제시한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정답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굳이 정답을 찾으라면 도덕경 8장에서 말하는 上善若水가 아닐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순리에 따라 흐르며 모진 곳은 깎아 주고 패인 곳은 돋아주며 벽이 있으면 돌아가되 결국에는 벽을 허물며 세상에서 가장 낮고 지저분한 곳까지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물처럼 사는 것이야말로 2000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받아드려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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