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사비 - 레옹 파트 2> 메롱과 히로스에의 조우 :::
이준목 | 2003년 04월 18일
조회 2339
<레옹>이라는 영화가 주는 인상은 매우 강렬했다. 당시만해도 국내에서 이렇다할 대중적인 지명도가 없었던 감독 뤽 베송과 배우 장 르노, 나탈리 포트만 등이 이 영화 한편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 영화는 지금도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작의 하나로 남아있다.
그런 전작의 인기를 바탕으로 해서 비스무리한 배우들과 비스무리한 이야기전개, 비스무리한 액션을 바탕으로 한 속편 떨거지가 하나쯤 나오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수 있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은근히 속편을 기대한 것이 사실이고...하지만, 나는 말그대로 제대로 만든 속편을 원했지, 레옹을 가장한 패러디 코믹물을 원했던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장 르노가 나온다는 것을 빼고는 레옹과는 코딱지만한 연관성도 없다. 한때 한국 에로업계를 평정했던 성인물의 제목 패러디(<쉬리>-하리, <공동경비구역 JSA>-공동섹스구역SEX, <간첩 리철진>-여간첩 리철순 등등)를 연상시킬 정도로, 전혀 상관없는 무비에 레옹의 제목만 낼름 덮어쓰기 해서 후광의 단물을 좀 빨아먹어보자는 잔머리가 느껴진다. 제목을 아예 레옹이 아니라 메롱으로 바꾸던지..쩝.
<와사비>라는 제목도 코믹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거야 영화 원제니까 태클걸께 아니라 치고 굳이 전작과 비교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렇게 영화의 허접성을 부각시키는 제목을 설정한 기획팀에게 경의를 표해야할 것이다.
그럼 레옹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한편 영화 자체로 평가해보자. 이 영화가 내세우는 최대의 미덕은 역시 기존의 장 르노와 함께, 새로이 가세한 일본의 아이돌 스타 히로스에 료코라는 히로인이다. 개인 선호도에 따라 메주덩이와 깜찍발랄이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이 어린 스타는 (그래도 80년생이니 물리적으로 성인이다.)영화가 내세우는 거의 유일의 볼거리이기도 하다.
그녀의 매력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마 딸의 육신에 빙의된 어머니의 영혼을 다룬 '비밀'을 떠올릴 것이다.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교활하게까지 느껴지는 의뭉스런 어머니와 딸의 1인 2역을 얄미울 정도로 잘 소화해낸 그녀의 연기력은 가장 '일본스러운' 연기의 매력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그러나 '와사비'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것이라고는 한마디로 좋게 봐줘도 골빈 양아Girl의 이미지를 넘어서지 않는다. 코스츔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적인 패션에 총알처럼 쏘아붙이는 일본어 수다, 지독한 쇼핑광에다가, 오도방정과 정서불안을 컨셉으로 삼은 듯한 그녀의 주접 연기는 한마디로 뜨악하게 만든다. 비밀의 속깊은 심리 연기는 온데간데없고, 반항아 연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볍고 작위적인 설정등은, 과연 그녀가 제대로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출연 계약을 맺은 것인지 의문스럽게 만든다.
최근 헐리우드에서 갈수록 망가지고 있는 이연걸이나 루시 리우의 경우에서처럼, 서구 영화계는 동양적인 매력을 표현해내는 방법을 전혀 모른다. '비밀'의 연기를 보고 히로스에 료코를 캐스팅했다는 제작진의 말이 의심스러운 것도, 영화를 제대로 봤다면 료코를 그렇게 '깜찍을 위장한 끔찍으로' 망가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동양 배우에게서 어떤 전형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만을 끌어낼뿐, 그 안에 들어있는 어떤 잠재력과 창의성을 작품과 융화시킬줄 모른다. 이런 편견이 동양 배우들의 매력을 오히려 감소시켜서 영화의 매력까지 반감시키는 우를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로 되돌아가서, 이 작품의 스토리를 따라가보아도 별다른 야야깃거리는 찾을수 없다. 단선적인 스토리에 뻔한 액션, 뻔한 결말이다.영화 중반에 레옹의 오마쥬로 느껴지는 장면들이 멏개 낑구어져 있어서 본의아니게 레옹과 다시 비교할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사실 오마쥬라고 하기에도 너무 부실하다. 레옹이 관객에게 어필했던 키워드는 '연인과 보호자 사이를 넘나드는 레옹-마틸다간의 묘한 심리 변화' 그리고 그 대칭점에서 그들의 행복을 위협하는 '게리 올드만이라는 절대악'의 존재였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이미 부녀 사이로 설정된 '위베르-유미'간의 관계에서 '보호자-피보호자'이상의 관습적 유대 관계를 넘어서지 못하는데다가, 영화의 긴장감을 조율해주는 게리 올드만같은 걸출한 악역들도 없다. 기껏 나오는 악당들은 전부다 저렴하게 캐스팅한 엑스트라적 향취를 물신 풍기는 저능아 군단에다가 배우들의 연기는 주-조연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너무 가볍다.
영화의 마지막 보루-바로 액션에서 이 영화의 쒯스러움은 절정에 달한다. 원샷 원킬을 부르짖는 장 르노 형님의 솥뚜껑 펀치 한방에 악당들은 모두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몸빵 액션은 거의 LA용팔이 수준이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폼만 잡고 쏴대면 백발백중인 권총 액션은 윤발이 형 찜쪄먹는다.문제는 여기서 전혀 후까의 향취가 느껴지지 않고 7000원짜리 개그콘서트를 보고 있는데서 유래하는 혈압 상승밖에 없다는 점이지만.
결론지어보면,이 영화는 절대 레옹의 속편이 아니다. 혹시 이 영화가 '전편보다 못한 속편들'이라는 카테고리안에 거론된다는 것 자체만으로 레옹에 대한 모독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장 르노나 뤽 베송이 이 영화로 조져놓은 자존심을 회복하겠답시고, 레옹3-고도리, 레옹4-스메끼리 등의 극악한 속편 러쉬를 이루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다. 속편업계의 거장 실버스터 스탤론 할아버님께서 록키,람보 시리즈를 무더기로 양산해내는 바람이 걸작으로 인정받았던 1편의 명성이 새 되고 말았던 것을 그들은 부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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