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의 차별은 어디까지
글: 박정호
2002년 02월 18일
USA투데이 할리우드 영화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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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지난해 말 개봉됐던 할리우드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의 그녀는 어떤가. 딱딱 떨어지는 스페인식 영어 발음으로 객석을 웃겼다.
할리우드의 특급 스타인 톰 크루즈를 녹여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꿈속의 여인'에서와 같은 활달미는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는 니콜 키드만과 이혼한 톰 크루즈의 연인으로 각광을 받았다.
지난해 추석에 선보였던 '아메리칸 스윗하트'에서 캐서린 제타-존스의 새 남자 친구로 얼굴을 내민 스페인 출신의 중견 배우 행크 아자리아도 희화화되긴 마찬가지.
영어 '정켓'(junket:축하연)을 '홍켓'으로 발음하는 등 폭소를 자아냈다. 스페인의 정통파 배우들이 할리우드의 '가벼운' 인종차별에 '희생'된 셈이다.
영화는 물론 현실이 아니다. 액션이든, 코디미든, 드라마든 어느 정도의 비틀림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왜곡'의 수준이 상식을 크게 벗어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할리우드의 '영화 속 인생'(Reel Life)과 실제 '미국인의 일상'(Real Life)은 과연 얼마나 닮았을까.
미국 종합 일간지 USA 투데이가 최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양자 사이에는 커다란 괴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족.인종.남녀.결혼 등 많은 부문에서 영화가 미국인의 일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할리우드 영화에 나타난 모습을 그대로 믿다가는 큰코를 다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조사는 지난 해 미국에서 최소 6백개 스크린에서 개봉된 영화에 등장한 주.조연급 5백70여 인물과 2000년 미국 인구 센서스 자료를 비교했다.
평소 우리가 짐작했던 할리우드의 상업적 코드를 구체적으로 읽어내는 자료가 된다.
◇인종.민족 차별=올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 지목된 다섯 작품의 주연들은 모두 백인이다.
흑인.아시아계.스페인계 등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사는 '용광로'인 미국 사회의 다원성이 할리우드 영화에선 무시되기 일쑤다.
올 아카데미에선 덴젤 워싱턴.윌 스미드.할 베리 등 남녀 흑인 배우 세 명이 29년만에 주연상 후보로 오르는 등 흑인의 지위가 제법 상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많은 배우들은 주로 코미디에서 백인들을 보조하는 양념 역할을 맡고 있다.
'다운 투 어스'의 크리스 록, '에볼류션'의 올란도 존스 등이 대표적 경우다.
같은 백인들 가운데서도 스페인인은 홀대를 받고 있다. 인구 구성상 스페인계는 미국인 가운데 12.5%를 차지하지만 스페인 출신 배우의 출연 빈도는 5%에 그쳤다.
배우 중에선 제니퍼 로페즈.안토니오 반데라스 정도만 스타성을 인정받고 있다.
◇남자 배우 우대=미국인 중 여성과 남성의 성비는 51대 49다. 하지만 극 중에서는 이 비율이 35대 65로 역전된다. 또 주연급 배역의 경우 25대 75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그만큼 할리우드 영화는 남자들의 잔치로 여겨질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남성들의 지위가 높은 현실을 드러내고 있으나 아직도 스크린에선 여성 배우들이 찾아야 할 자리가 많은 것으로 풀이된다.
배우들의 평균 연령도 재미있다. 인구 센서스상의 일반인과 실제 배우들의 평균 나이는 35세로 일치했다.
그러나 여성 배우의 평균치는 30세(일반인은 36.5세), 남성 배우의 평균치는 38세(일반인은 34세)로 나타났다. 여성 배우들의 수명(상업성)이 그만큼 짧다는 것이다.
뉴욕주립대 미국학 연구소의 엘라인 래핑 교수는 "할리우드에선 연령.체중.일상 등 여러 면에서 여성의 이미지가 비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일례로 40대 이상의 직장 여성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조안 크로포드.캐서린 햅번 등이 활동했던 1930~40년대에도 이런 경우는 없었다"고 비판했다.
◇독신 생활 부각=영화와 실제 사이에 가장 거리가 있는 곳은 바로 결혼 생활이다. 15세 이상의 사람 가운데 기혼자는 49%에 이르나 조사 대상의 영화에선 고작 18%에 그쳤다.
이는 로맨틱 코미디가 하나의 장르로 정착할 정도로 결혼 전의 상황에 관심이 많은 할리우드의 색깔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액션 영화의 비중이 큰 할리우드의 특성상 가정에 대한 묘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흥행적인 요인도 있다. 한국과 비슷하게 미국에서도 10대(49%)들이 성인(27%)보다 영화 소비의 주요 계층인 것.
스크린에서나마 골치 아픈 현실을 피하려는 청소년들의 도피주의를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영화에 사회적 책임감을 물을 수 없을까.
래핑 교수는 "청소년들은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이미지를 쌓아간다"며 보다 실제에 가까운 내용을 담아내려는 영화사들의 자세를 당부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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