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에 대한 또 하나의 주장: 박철수 감독 인터뷰
글: 이희일
1999년 1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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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한국에서 <가족 시네마>는 대체로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한일의 정치적 역사성을 뛰어넘는 비젼을 제시하려던 문화 상품이었는데…… 여기에서의 반응은 적잖이 냉담한 편이었죠. 하지만 오히려 일본에서의 반응은 그 반댑니다. 올 6월 일본 메이저 영화사와 손잡고 (아마 이건 최초의 작업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본격적으로 개봉할 예정에 있어요. 이건 꽤 고무적인 일이죠. 한국 영화의 미래를 위해선 해외 시장 개척이 급선무가 되야 됩니다.
Q : 최근 추진하고 있는 아카데미는 어떤 기획으로 입안되었는지요?
A : 우리나라에선 신흥 감독의 입봉이 비교적 쉬운 편입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많지 않을까 생각되는데요. 그러나 영화 교육의 질, 바로 창작 정신의 질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제가 '프로덕션형 아카데미'를 만들게 된 배경이죠. 저하고도 개인적 친분이 있는 마틴 스콜세지 역시 그런 프로덕션형 아카데미를 통해 많은 영화 인력을 배출해낸 바 있습니다. '박철수 필름 아카데미'는 대전 중이동를 본거지로 4월 말에 개강해서 금년 말까지 종합이론, pre-production, production, post-production 와 같이 4단계의 실제적인 제작 과정을 이수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외국 유학생도 유치하고, 짐 자무쉬 같은 감독도 강사로 초청할 생각이죠.
Q : <301 302>부터 지금 계획중인 '몸' 기획까지 충무로 상업영화와는 사뭇 이질적인, 하지만 일관된 경향을 보이는 작품들을 계속 만들어 왔습니다. 스스로 독립영화를 제작하신다고 생각합니까?
A : 저는 상업영화로 입문한 사람입니다만, 언젠가부터(90년대부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대중을 상대로 거짓말 이야기꾼을 계속해야 하는가? 대중은 정말 구경꾼이 되어야 하는가? 그처럼 90년대부터 제 생각이 싹 바뀐 거죠. 이건 창작 주체자의 제 모습이 아니다, 라는 생각 말입니다. 창작 주체자의 참자유의 실현을 위한 영화를 만들자, 이것이 저는 진정한 독립영화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 프로덕션을 차린 이후 저는 대기업하고는 결코 결합하지 않았습니다. 대기업은 단순시장적 논리에 사로잡혀 있으니까요. 비록 관객들하고 유리된다고 해도 기존의 배급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거죠. 못들어가 갑니다, 아마도 영원히. 저는 대중이 싫습니다. 매니아 집단의 리더가 대중을 이끌 것입니 다.
Q : 그럼 '박철수 필름'은 어떻게 유지되어 왔습니까? 무슨 돈으로 영화를 꾸준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겁니까?
A : 자, <301 302>는 예외였습니다만 대부분의 저의 영화는 극장 흥행에 실패했죠. 그렇지만 저는 역조 현상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 생각대로 외국의 영화제 수상과 외부로부터 조성된 분위기 탓으로 영화 시장에 비해 비디오 시장이 활성화되었지요. 그리고 모자라는 자금은 개인돈, 친구, 저를 후원하는 작은 모임, 뜻있는 돈, 방송 연출과 같은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로 충당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Q : 독립영화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들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 정부에 거는 기대는?
A : 환경 만들기, 정책 만들기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현 정부가 강력한 의지가 있으면 해결될 문제일 텐데…… 본질적으로 한 나라의 창작 정신의 모태가 무엇인가? 그것을 읽어 줄 수 있는 정부라면 가능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실천 주체로 능동적으로 나서야겠지요. 전 감독협회에서 자주 역설하곤 합니다(지금 '학술 국제 교류 분과장' 자리에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육성이 곧 영화 창작의 모태이고 그 나라의 문화 창달의 기초이다'라고 말입니다. 감독협회는 독립영화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고요.
지금 전 제 스스로 독립영화 육성 기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학생부군신위>를 만들 때부터 전 스탭들로부터 얼마씩 돈을 떼어내고 있죠. 예상 기금은 1억인데, 현재 50% 정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1억이 채워지면 그 기금을 유용하게 활용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지금 기획을 하고 있는 단계이긴 합니다만, 대전 엑스포 공원 활성화 방안 안에서 독립영화 마켓 시스템을 구성할 계획입니다. 세계 단편 영화 부스를 만들 거고 그 안에서 한국 독립영화 마켓을 추진할 생각입죠. 마켓을 스스로 형성하는 거, 환경 만들기-정책만들기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Q : 독립영화를 지향하고 있는 후배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A : 대단한 싸움정신, 투쟁이 있어야 됩니다. 창작에서 실험적 정신이 없으면 안되는 거죠. 짧은 시간 안에 독립영화가 많이 성장했습니다. 분명히 희망은 있습니다. 나는 영화를 체계있게 공부하지도 못했거니와 대학교 때에는 2편밖에 못봤지만 지금까지 그대로 밀어부쳤습니다. 전 독립영화를 창작 주체자와 집단의 정신으로 가늠하고 싶습니다. 필름 사이즈가 중요한 건 아니죠. 저 역시 35 밀리의 제약 조건 때문에 이번의 '몸' 기획은 디지틀 카메라로 자유롭게 찍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정책 만들기, 환경 만들기를 해야 16밀리 장편이든 디지틀이든 수월하게 찍을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그러한 작업에 앞장서겠습니다.
Q : 마지막으로 영화 제작 의욕을 추동하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제공받는지 묻고 싶습니다.
A : 이야기꾼, 거짓말의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오히려 영화의 아이디어는 주위에 있습니다. 그것이 곧 내 인생이죠. 내 삶의 궤적을 성찰하기 시작함으로써 90년대부터 영화가 새롭게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 영화가 됩니다. 거부정신, 억척부림에 의해, 길거리에 앉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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