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스미스 - 그 다중적인 인격체의 수다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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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스미스 - 그 다중적인 인격체의 수다스러움 :::

이윤형 | 2000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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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보는 대부분의 영화들을 기억해내면 부분이 나뉘어진다. 발단이니 절정이니. .

다이 하드 시리즈나 <007> 시리즈처럼 처음에는 주인공 보여주고 사건 한 방 터지고 그 사건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 주인공의 멋진 모습 보여주고 마무리되는 영화들을 생각하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이미 시나리오의 패러다임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어진 계산되고 짜여진 이야기들이다. 그런 영화들은 줄거리 말하기도 편하다. 앞으로 얘기할 케빈 스미스의 영화가 그런 영화들보다 낫다 거나 못하다는 말을 하자는 건 아니다. 모든 영화들은 공존을 해야 옳은 것이니까.

케빈 스미스의 장편 데뷔 작 클럭스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려 하려면 대책이 없다.

주인공이 비번인 날에 슈퍼마켓 아르바이트를 가고 여자친구와 싸우고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는 친구 와서 장난치고 . . 정말 이렇게 얘기하면 졸지에 <클럭스>는 아무 것도 아닌 영화가 된다. 하지만 <클럭스>엔 제 3자에게 설명할 수 없는 '말 빨'이 있다.

수다스런 정신분열자 케빈 스미스

정작 사건이라 할 만한 것들은 실제로 있음직한 어이없으면서 단순한 것들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와 말들은 재치로 가득하다. 이야기를 상황이 물고 상황을 이야기가 물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화의 끝까지 간다. 처음 5분을 보면 다 안다는 유식한 사람들도 결말은 예측치 못할 물 흐르는 듯한 자유로운 이야기가 케빈 스미스의 첫 작 <클럭스>엔 존재한다.

그의 영화 중 처음으로 국내 비디오 출시가 된 몰랫츠 역시 '말 빨'이 주무기다. 역시 이야기는 처음과는 상관없는 결말로 치닫게 되고 그것으로 넘어가는 과정 역시 어이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클럭스>와 <몰랫츠>는 케빈 스미스의 주무기인 장광설을 그대로 모셔다 놓은 영화지만 정작 그 영화들은 할 얘기가 없다. 그야말로 '케빈 스미스 표' 영화이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할 얘기라곤 말이 많은데 그야말로 다변에 달변인 영화라고 밖엔 할 말이 없다.

유명 감독들의 초기작은 그야말로 떡잎부터 알아보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가 비교적 젊은 감독들에게 연출을 쉽게 맡기는 이유 역시 젊기에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감독들이 신인 감독을 지나 중진 감독으로 향할 때까지 처음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살다보면 '아노미 상태'라고 해서 정체성에 대해 고민도 하고 혼란한 시기가 있듯이 영화를 만들다 보면 그런 경우가 있다. . .고 생각한다.

가벼운 사람은 무거움을 동경하고 무거운 사람은 가벼움을 동경하는 법이다. 머리가 길면 스포츠 머리의 사람이 멋있어 보이고 머리가 짧으면 긴 머리의 사람이 멋있어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케빈 스미스 역시 영화의 아노미 상태에 빠진 듯 했다. 체이싱 아미는 여기 저기서 '신인 감독의 발랄한 상상'이라고 했지만 주연 배우들 빼곤 더 이상 케빈 스미스의 영화가 아니었다.

생각해보자. 말 되는 이야기를 말도 안 되는 캐릭터들로 풀어나가 말도 안 되게 보여주며 한 없는 가벼움을 지향했던 그가 계속 가볍길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중간에 그만 두긴 했지만 그 역시 '영화학과'에 잠시나마 다녔던 영화학도고 이젠 꽤 유명해졌는데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체이싱 아미>가 정말 심각한 영화거나 너무나 그의 스타일과 다른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막바지에 달하면서 무언가에 얽매이고 결말은 너무나도 건전하다. 그들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아무런 웃음도 그렇다고 어떤 사색을 할 여유도 주지 못한다. 아무 생각 없이 만화책 넘기듯 보아온 <클럭스>나 <몰랫츠>와는 전혀 달랐다.

케빈 스미스 한 명쯤은 뼈 없는 농담 실실 해대는 영화만 만들어도 누가 뭐랄 사람 없는데 그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입장에서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 역시 관객에게 당하는 피해자이다. 관객의 욕심은 '이기심'이라고 말할 수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그 권리가 그에겐 부담스러웠을 지 모른다. 인디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겐 '독특함'을 원하고 그 감독이 메이저로 올라오면 어떠한 '철학'이나 노련함을 원하는 사람이 바로 관객이며 그것이 관객이 좀 더 낫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권리이다. 하지만 슈퍼맨이 아닌 이상 안경 쓰고 똑똑하면서 옷 바꿔 입어 날아다니며 나쁜 사람 처치할 순 없는 것이다. 자신의 스타일을. .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 . 물론 그가 피해자라는 것은 내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이다. . .

도그마 는 성경이 앞뒤가 맞지 않기에 가능한 상상이며 그것 역시 장난이다.

<체이싱 아미>와 <도그마>가 초기 두 작품과 구분되는 이유는 사건이다.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이 끝나야 영화도 끝나는 법이다. 사건이 있으면 영화는 사건에 얽매이기 마련이며 사건의 주인공이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클럭스> 와 <몰랫츠>. . 물론 고민 고민해서 완성한 시나리오겠지만 영화를 보면 마치 그 상황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연출한 듯 보인다. 그것은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동시에 좀 더 신선하단 의미도 된다. 하지만 <체이싱 아미>와 <도그마>에는 즉흥적으로 보이는 것이 조금 덜하다. <체이싱 아미>는 결말에 잡혀있는 듯 보이고. <도그마>는 전체적인 틀이 짜여져 있어 그 안에서 말장난을 해봤자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도그마>는 <체이싱 아미> 보다 조금 더 자유롭다. 신에 대한 이야기를 말도 안 되게 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체이싱 아미>보다 더욱 모험적이며 발랄하다.

과거 그의 모습을 찾은 것이라고 하기엔 단발 적 상상력의 큰 틀 안에서 말장난 몇 마디 주고받는 것밖에 없지만 <체이싱 아미>의 교훈적 주제의 틀은 벗어난 듯 하다.

그의 영화 중 가장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영화가 바로 <도그마>일 것이다. 아주 개성이 넘친다거나 아주 '훌륭한(?)' 영화여서 논란거리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그 영화가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구약 신약을 다 뒤져봐도 13번째 사도는 등장하지 않는다. 가끔 이미 앞에서 13이란 숫자를 안 좋은 날의 날짜로 잡아놨기에 13번째 사도가 등장한다는 것은 상상력이 풍부한 독자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성경은 일부의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다른 허구의 소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비슷한 의문을 케빈 스미스 역시 했던 것 같다. 성경이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밥을 먹고사는 사람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것의 해석을 항상 '주님만이 나의 목자요. .'하는 식으로 해석을 하려드는 것인가.

이미 틀린 부분이 있다면 그것의 판단. . 해석은 자유롭게 맡겨둬야 하는 것이다.

<도그마>는 케빈 스미스의 반(反)기독교적 농담에 발끈한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조금 더 유명해졌다. 그러기에 <도그마>는 '발칙한 상상' 이라고 낙인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성경 읽어본 사람 중에 그런 생각 안 해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도그마>는 오히려 그 단발 적 상상에 모든 것을 맡겨버린 케빈 스미스의 영화로서는 그리 좋은 작품이 아니다.

그야말로 그 영화를 비판한 사람들에 의해 '참 재미있는 영화'가 돼버린 것이다.

기존 작품들에선 찾을 수 없던 화려한 비쥬얼이 존재하는 <도그마>에는 결정적인 무언가가 없다. 짜여진 틀 안에서 밖으로 나가보겠다고 소리쳐대던 그들의 안타까움과 달리 실실 흘려대던 농담이 막판에 예수를 여성의 모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모든 게 정신없이 끝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이야기들이 다 농담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한데 그 하늘 나라로 통하는 교회로 가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미 이야기는 갇혀있어 결말 부분의 그 허전함을 의미 없이 만든다. 정작 틀에서 벗어나 하는 농담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도그마>에는 거대한 변(便)이 등장한다. 그것은 케빈 스미스 . .감독 자신의 변(辯)이다.

변(便)으로 웃기는 것은 주성치의 연기만큼이나 어처구니없이 웃기는 것이지만 그것이 바로 케빈 스미스의 영화를 보는 올바른 자세라고 하겠다. 그 변(便)이 감독의 변(辯)인 탓에 감독은 그것의 처치 방법을 안다. 공기 청정제. . 그것을 보는 관객의 자세 역시 너무나도 단순하다. 지금 필자의 생각처럼 복잡할 것 없이 그냥 웃으면 되는 것이다.

많은 감독들은 각자 선호하는 배우가 있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연결만 시킬 수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어할 것이다. 케빈 스미스의 영화엔 거의 고정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있다.

벤 에플렉. .제이슨 리. .제이와 사일런트 밥(케빈 스미스). . 그들. .

뤽 베송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장 르노도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로버트 드 니로도 거슬러 올라가 히치콕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던 제임스 스튜어트도 케빈 스미스와 함께 하는 그들만큼 연장선상에서 연기하며 또 다른 개성을 창출하는 배우는 없었다. 제이와 사일런트 밥은 모든 영화에 아무 이유 없이 출연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망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케빈 스미스 영화들의 이야기는 어느 캐릭터를 부담스러워 할만큼 정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신경 쓰이지 않는다. 주성치의 연기를 보고 현실성 없는 연기라고 하는 사람 별로 없듯이 그의 영화도 그저 한 번의 웃음으로 그칠 수 있는 코미디 영화다.

케빈 스미스는 20세기말이기에 가능한 감독들 중하나이다. 영화 속에서 영화 얘기를 꺼내는 것은 과거 위험한 모험이었다. 관객을 영화에 몰입 시켜야 하는데 '영화'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덤 파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영화들은 자신의 영화 역시 다른 영화들처럼 영화라는 허구의 하나라는 것을 밝히기 시작한다. 관중을 향해 카메라를 쳐다보기도 하고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영화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멜 브룩스의 스페이스 워즈처럼 아예 그것을 웃길 양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말 장난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감독 중 한 명이 바로 케빈 스미스일 것이다.

그는 상당히 재치 있고 재능 있는 감독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자꾸 실실한 장난이 약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 강도가 약해졌는지 모르지만 그 시원한 '말 빨'을 뒤에 두고 있다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 난 케빈 스미스가 그저 '뼈 없는 농담을 주고받는 영화'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이봉주 선수가 100m 달리기까지 잘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