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한국의 축제(A New South Korean Festival Places) :::
존 크리치 | 2000년 05월 12일
조회 744
A New South Korean Festival Places
Nation on Cinematic (Radar) Screens
이제 아시아의 영화 달력은 일본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전쟁 장면만큼이나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번 달 초에는 인도의 케랄라와 싱가포르에서 영화제가 개최되었으며 홍콩 영화제는 현재 한창 진행 중이다. 또한, 최근 2년 사이에 방콕, 마닐라, 자카르타가 각각 영화제를 새로 출범시켰다.
이 모든 영화제들 중에서 열광적인 영화팬들과 세계 영화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손꼽는 영화제가 바로 한국의 부산국제영화제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는 아시아의 어떤 영화제보다 많은 월드프리미어와 아시아 프리미어 작품들을 확보하고 있으며, 가장 많은 관객들로 붐비며 해외 감독들이 가장 오고 싶어하는 영화제이다.
한국의 북적거리는 항구 도시에 불과했던 부산은 출범 4년만에 아시아의 영화제들 중에서 가장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의 부산은 미국의 선댄스같은 영화 마을로 변모했던 것이다. PIFF는 아시아의 다른 영화제들보다 지역적인 우위를 차지하면서도 희귀하면서도 빼어난 아시아 영화들을 선보인다. 또한, 2년 전 아시아 대부분의 산업이 심각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에도 부산은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필름 파이낸싱 이벤트(부산 프로모션 플랜)를 출범시켜 세계 각국에서 부산을 찾은 투자자들과 20여 명의 아시아 영화 감독들과의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올해에는 홍콩과 도쿄 역시 부산과 흡사한 행사를 개최하기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같은 해에 출범한 중국의 상해영화제와 쉽게 비교된다. 올리버 스톤 같은 스타급 감독과 다른 멤버들을 첫 해의 심사위원으로 불러들였던 중국 본토의 이 유일한 영화 포럼은 곧 슬프고 서투른 패러디가 되고 말았다. 보기 드문 작품들을 상영하겠다는 애초의 야심찬 계획과 달리 대부분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작품들이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상영되었다. 그나마 관객들이 열광한 것은 주류 미국 영화들이었는데, 그동안 중국 정부의 쿼터 시스템으로 인해 통제되었던 작품들이거나 오래 전에 제작된 영화들이었다. 저명한 감독들이 중국에 찾아왔으나 일반 관객과는 만나지 않았고, 각종 안내문에는 영어 자막이 있는 작품을 판별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조직위원회의 사과문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은 한국 관객들의 다양한 영화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새로운 영화제탄생의 필요성을 절감한 프로그래머들의 노력으로 시작되었다. 세계 영화제들을 순례하면서 그들은 부산이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고 언젠가는 부산에서도 세계적인 영화제를 개최할 것임을 설명해야 했다. 그들은 스타만을 선호하거나 영화제에 대해 꿈만 꾸지 않았고,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아시아 영화제를 연구하면서 부산영화제의 태동을 느낄 수 있었다. 도쿄영화제는 전통적으로 가장 최고의 자본을 가진 영화제로서 “일본 국내 시장과 폭넓게 연계된 거대 스튜디오의 판촉을 위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 PIFF 기획자들의 판단이었다. 바다를 사이에 둔 일본에서 그들은 혁명적인 독립영화인들의 작품들이 도쿄영화제에서 무시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한편, 역사 깊은 홍콩영화제는 폭넓은 작품 선정으로 PIFF의 김지석 프로그래머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는데 이 역시 위험에 처해있었다. 홍콩의 뚜렷한 특징이기도 한 지역 영화 산업이 격심하게 쇠퇴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하강세는 한해 260편에서 60편으로 격감되는 등 그 당시 이미 3년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홍콩은 중국에 1997년 반환될 예정이었고 김교수는 영국 식민지 홍콩의 진열장 기능이 더이상 이전의 명성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즉, 과거에 첸 카이거 (패왕별희), 장 이모우 (홍등)를 "발견"한 것처럼 홍콩은 더이상 뛰어난 본토의 새로운 감독들을 서구에 소개하는 창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게다가 악명높은 중국전영공사는 이제 24회를 맞는 홍콩 영화제에 본토 영화들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해마다 압력을 행사해왔다. 1994년에는 독립영화와 역사물을 포함한 무려 10개의 중국 본토 영화들이 모두 상영 취소됐다. 올해의 경우, 동성애를 주제로 한 "남남여여" 가 미리 공지되지 않은 채 영화제 개막직전에 상영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 문제점은 모든 영화제 공통의 것이긴 하다. 그러나 중국이 자신들에게 속해 있는 지역에 대해 더욱 민감한 것만은 분명하다."
홍콩 비평가협회 회장이며 홍콩 영화제 파트 타임 프로그래머인 리 척토는 이렇게 말한다. 홍콩 영화제 조직위원회 측은 이러한 비평가들의 비난에 의의를 제기한다. 영화 프로그램 사무국을 감독하는 정부측 대표인 리치 램은 "우리의 작품 선정은 압력에 굴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할 것이다" 라고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나 아무리 열성적인 프로그래머라도 할 수 있는 일에 한도가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영화제들이 사적으로 운영되고 기업 협찬을 받는 체제인데 비해, 홍콩영화제는 영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 조직된 관광 문화부 관료들이 운영한다는 점에서 매우 예외적이다. 영화제에 십 여년 간 관여했다가 그만 둔 프로그래머 웡 아인링은 "홍콩 정부는 항상 중국 본토와 쉽게 협상하려 든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부산이 영화 세계에 접한 유일한 시기는 한국 전쟁 후반이다. 서울이 점령당한 후 한국의 유일한 주요 도시였던 부산은 상대적으로 덜 파괴된 상태였고 국내에 남아있던 영화 제작사들은 잠시 동안 부산으로 거처를 마련했다. 전 문화부 차관이었던 김동호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작년까지 열흘 동안의 행사에 다녀간 참가자들은 해마다 부산시에 2천만 불 이상의 수익을 안겨주었다. 출범 첫 해 지원을 거절했던 정부가 현재 PIFF의 1년 예산 중 삼분의 일을 지원하면서 경기불황으로 인해 40% 가량 감소되었던 기업의 기부금들이 충당되었다.
한국인들 역시 처음부터 영화제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엄청난 모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회상한다. 그렇지만 10만 명의 관람객들이 개막식에 참가했으며 이 중 90%가 30세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 이 젊은 관객들은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관객과 감독과의 대화에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등 부산의 거리 곳곳을 활기로 가득채웠다. 초대된 해외 게스트들은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광적인 호응에 휩싸였고, 한국인들이 독한 소주를 가득 채운 잔을 권할 때 세계 영화인들은 말 그대로 한국적인 접대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영화는 2000석 좌석이 모두 매진되었다. 이렇게 많은 관객은 처음이다."
싱가포르의 감독 에릭 쿠가 놀라며 말을 잇는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나온 질문들은 한결같이 매우 수준이 높았고 끝없이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한국의 언론 매체와 TV도 곧 이러한 시류에 불을 붙였는데, 심지어 1988년에 열린 올림픽을 능가할 정도로 부산영화제를 국내에서 여태까지 열렸던 국제 행사들 중에서 가장 성공한 이벤트로 꼽았다. 미디어의 지속적인 지원은 영화제가 한국의 자긍심을 높이고 전국적 행사로 확대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작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관객은 모두 181,000명이었고 이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관객을 보유한 도쿄영화제의 116,000명을 훨씬 더 능가하는 수치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상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홍콩이 250개, 부산은 171개), 해마다 다양한 작품들을 확보하고 있다. 작년에는 더욱 많은 수의 월드 프리미어를 확보했고 (야마가타 다큐멘터리 영화제가 24개 다큐멘터리 프리미어, 부산은 26개의 장편 및 단편 프리미어), 이것은 아시아의 다른 어떤 영화제보다 많은 프리미어 숫자이다. 또한 홍콩이 24명의 감독이 참석한 데 비해 부산은 무려 100여 명의 감독이 참석하기도 했다.
부산이 표방하는 기준점은 바로 아시아 대륙을 폭넓게 포함한 아시아 영화에 대한 강력한 집중이다. "부산영화제는 특별히 작은 아시아 영화를 알리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배우 크리스틴 하킴이 말했다. 1999년에 인도네시아에서 제작된 네 개의 진지한 영화들 중 두 작품이 부산에서 상영되었다. 부산영화제에서 제작이 지원된 여섯 개의 작품들 중 한국 작품은 없다. (6개 중 이란, 일본, 중국에서 각각 두 작품씩 완성되었다.)
도쿄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영화 제작 지원 마켓에서 선정된 작품들 중 삼 분의 이가 일본 프로젝트였고, 홍콩영화제가 중국어로 제작된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다. 다음 부산프로모션플랜은 총 23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한국은 오직 3개 작품만이 제작 지원금을 찾고 있다. 2000년 부산영화제에서는 중앙아시아 작품들이 주요 초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영화제는 칸 영화제처럼 바다를 낀 5000석의 야외상영장을 가지고 있는 유럽 스타일의 축제이다. 부산영화제의 기획자들은 부산이라는 도시를 적절히 돈을 끌어들일 수 있도록 매우 능숙하게 변모시켰다. "우리는 정장차림보다는 캐주얼을 선호한다"고 김지석 교수는 말한다. 대부분의 영화가 1960년대 식의 커다란 궁전같은 10개의 상영관에서 상영되는데, 그 주변에 길과 광장이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노점상들은 감자튀김과 오징어, 해물파전 같은 전통 한국 스타일의 거리 음식들을 팔고 있다. 부산 어시장의 향기를 풍기는 이 곳은 프랑스의 해변 리베라와는 다르다. 영화제 기간 동안에 이 "영화의 거리"는 영화에 대해 논쟁하고 유명 영화인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가지는 젊은이들로 새벽까지 붐빈다.
"PIFF 기간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스타처럼 대접받는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때가 이 지역이 가장 각광받는 엄청난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홍콩의 프로듀서 엘리오트 통이 말한다. "한 주일 동안, 그 도시의 모든 것이 영화로 집중된다. 만일 당신이 영화제 ID를 달고 있다면 모든 상점들이 당신을 환영하고 당신이 어디서 왔으며 당신의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한다. "
부산의 성공은 전주와 부천 영화제 생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고, 이것은 또한 한국 영화의 새로운 도래와도 부합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세계적 수준의 한국 감독들에게 원동력이 되었는가, 아니면 감독들이 부산영화제의 자극이 되었는가? 이 질문은 여전히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십 년 전, 한국에는 오직 3개의 영화학교만이 존재했었다. 지금은 무려 10개로 늘어났다. 한국에 밀어닥친 경제 위기로 인해 국내 영화 제작 건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반면, "심지어 영화산업 라는 영역 자체가 없어질 위기가 있었지만 오히려 한국 영화의 질은 훨씬 더 향상되었다."라고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폴 이가 증언했다.
대중 역시 그 점에 동의하는 듯하다. 물론 정부가 국내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매해 일정한 비율로 상영하게 하긴 하여도, 국내 흥행의 37%가 한국영화이며 이는 할리우드 영화들을 혐오하는 프랑스와 거의 같은 정도로 높은 수치이다.
한국의 스파이 영화 "쉬리"는 실제로 국내에서 "타이타닉"을 누르고 흥행 1위를 차지했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상영되었던 많은 한국 작품들이 칸이나 베를린 같은 유수한 영화제에서 한국의 최근작으로 소개되었다.
"부산은 가장 떠들썩하고 활기에 넘치는 장소이다"
엘리오트 통은 이렇게 말한 뒤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아시아 최고의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 존 크리치 (Staff Reporter of THE WALL STREET JOURNAL)
|
  
|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국가별 검색
가격대별 검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