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지켜라! : 모짜렐라 치즈를 얹은 갈비찜
글: 정영선
2003년 03월 30일
6시간 생방송을 끝냈습니다. 말이 여섯시간이지, 정말 춥고 배고픈 시간이었습니다. MC도 패널도 스탭들도 모두 추위에 떨었습니다. 꽃피는 봄이 왔지만, 바람은 결코 만만히 볼 녀석이 아니더군요. 이 바람이 다시 모래폭풍이 되어 이라크에 불어준다면 좋을텐데.
자, 오늘의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입니다.
그 독특함과 기발함에 반하기 전에 든 생각은 ‘아, 이젠 이런 영화를 상업영화로 만들어도 될만큼 영화 제작 환경이 변했구나!’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장준환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지더군요. 이미 단편 <2001 이매진>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는데 아쉽게도 그 단편은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존 레넌이 환생한 것이라고 믿는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군요. 혹 보신분이 계시면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병구와 자신을 존 레넌이라고 믿는 <2001 이매진> 주인공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길. 여튼, 그의 이력을 살펴보다 봉준호 감독과 영화아카데미 11기 동기라는 사실만을 보고 잠시 흐뭇해졌답니다. ( ‘지리멸렬’ 시절부터 봉준호 감독의 팬인 저는 그와 관계된 소식은 무조건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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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파스를 고문도구로 선택한 감독답게 영화는 시종일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하고 기발한 이미지들로 넘쳐납니다. 무척 반가운 일이죠. 비실비실한 캐릭터들만 가득한 한국영화에 에너지 가득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순간이니까요. 특히 여주인공 순이역을 맡은 황정민(B)과 강만식 사장역의 백윤식의 연기야 말로 ‘새로운 발견’입니다. 특히 순이가 서커스 하는 장면에서는 그 옛날, 시골의 어느 장터에서 보았던 동춘서커스단을 떠올리며 잠시 회상에 젖었답니다. 사실 서울대 학력의 형사라던가, 반항적인 골초 형사, 속물적인 형사 등의 정형화된 캐릭터들이 거슬리긴 했지만, 이쯤이야 눈감아줄만큼 다른 캐릭터들은 발군의 실력을 보여줍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유쾌한 인용을 비롯해 기존의 영화들에 두루 섭렵한 흔적이 엿보이는 이 영화는 스릴러 같기도 코미디 같기도 SF같기도 한, 마치 퓨전요리 같은 영화입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스타일의 음식 재료나 조리법이 그야말로 짬뽕된 음식 말이죠.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우리나라에선 한 때 큰 유행을 탔습니다. 물론 정통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국적없는 음식이다, 품위가 없다해서 비난 받았지만요.
하지만 퓨전요리엔 가장 큰 장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고객지향적’이라는 것이죠. 세계화의 확산이나 다른 문화의 접목이니 하기 이전에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이죠. 퓨전요리엔 기존요리에선 맛볼 수 없는 특별한 그 무엇이 있으니까요. 모짜렐라 치즈를 얹은 한우소갈비찜, 해물과 고추기름으로 맛을 낸 중국식 스파게티, 차로만든 국수를 넣은 해물탕등 이름도 가지각색 붙이기 나름입니다.
<지구를 지켜라>의 매력은 그 하나뿐인 상상력에 있습니다. 이런 요리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싶게 여러 가지 요소들을 적절히 배합해서 어디서도 맛볼 수 없었던 감칠맛 나는 음식을 만들어낸 것이죠. 그 맛이 아직 낯선 사람도 있고 입에 꼭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요리를 리스트에 올린 장준환 감독은 기대되는 주방장임엔 틀림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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