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두 남자 이야기
글: 정영선
2003년 06월 25일
(스포일러 있습니다.)
여기, 악착같은 사랑 얘기가 있습니다.
코 흘리던 시절부터 한 여자를 점찍은 한 사내. 그는 나날이 예뻐지는 그녀를 다른 넘이 채 갈까봐 안절부절 죽기 살기로 쫓아다닙니다. 하지만 이 여자, 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의 아버지가 매니저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남자에게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시작하죠. 점수를 올려라, 사법고시를 패시해라, 그럼 내 딸을 주겠다. 물론 남자는 그녀를 쟁취하기 위해 온갖 욕구를 참아내며 임무를 완수합니다. 그리고 이게 왠일입니까, 그가 그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이, 그녀에겐 다른 남자가 생겼던 겁니다. 이제부터 아버지와 남자는 바람난 그녀를 잡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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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자는 여자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사랑일까요. 스토커 수준인 그의 행동은 그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자신의 감정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입니다.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마음을 품는지는 관심밖입니다. 그저 내가 욕망하는 대상이기 때문에 소유해야 되는 거죠. '내가 니 좋다 아이가.' 이 한 마디는 모든 행동의 면죄부가 되고 급기야 여자를 때려가면서까지 자신의 희생이 얼마나 컸는지 열변을 토합니다. 하지만'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라는 말과 함께 동반된 남성의 폭력에, 희생된 대한민국 여성이 어디 하나 둘입니까.
자, 그렇다면 여성의 캐릭터는 어떨까요.
문제는 마찬가지 입니다. 이 여자의 모든 욕구는 '성'에 관한 것에만 집중돼 있습니다. 남성 감독의 시각으로 볼 때 청년기는 성의 분출기일지 모르나 여성의 시각으로 볼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보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지 남자와 자지 못해 안달이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람난 그녀가 (영화적 표현을 따르자면) '전 그 남자랑 너무 많이 자서 다시 그에게 돌아갈 수 없어요' 하고 훌쩍이며 침대에 픽 쓰러지는 순간엔 정말이지 영화관을 뛰쳐나오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이런 신파적인 표현을 쓰다니, 그 용감한 상상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나쁜 편견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서울대'에 합격해야, '사법고시'에 합격해야 남자는 예쁜 아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서울대에 가지 못했더라면, 사법고시에 합격 못했더라면, 그녀의 아버지가 그를 받아들였을까요. 그녀가 거들떠나 봤을까요. 서울대 다니는 남자가 유학 다녀온 남자에게 기가 죽고, 이대 다니는 여자친구를 사수하기 위해 연대와 함께 가는 미팅을 막는 게,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립니다.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인 정부 정책마저도 '학벌극복 기획단'을 세운다는 마당에, 참 시대착오적인 발상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아버지와 (미래의)남편 뜻을 어긴 여자가 벌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천하의 바람둥이였고, 그녀는 죽을병이 걸려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된 거죠. 물론 남자는 후회하며 죽어가는 그녀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버지와 남편. 그들의 권위는 아직까지 함부로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영화의 결론인 거죠.
전 이런 영화가 아주 싫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안 그런 척하면서 은근슬쩍 더 나쁜 많은 통념들을 심어 주니까요. 그가 아무리 '착한' 마초라도 그의 본질은 마초입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그 권위는 이제 사라질 때도 된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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