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영화이야기

스토커 : 콘프레이크는 이제 그만!


글: 정영선
2002년 12월 05일

스토커의 원제목은 'One Hour Photo'입니다. 제목이 주는 느낌이 참 좋은데, 왜 개봉명을 <스토커>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의미전달이 쉽지 않고, 로빈 윌리암스의 연기변신을 부각시켜야 하는 등등의 이유가 있었겠죠. One Hour Photo. 우리나라로 치자면 '45분 현상소' 같은 곳입니다. 영화의 키워드는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사진 한 장도 '퀵 서비스'로 이뤄지는 세상.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이젠 진부한 주제가 됐지만) '소통이 단절된 현대사회의 고독과 소외'를 느낄 수 밖에 없죠.

'싸이’(로빈 윌리암스)는 대형 할인 쇼핑몰 내의 사진 현상소에서 일하는 중년의 남자입니다. 그는 한 가족의 대소사를 사진을 통해 십여년동안 지켜보고 있습니다. 부부의 연애시절부터 사랑스러운 첫 아이의 탄생까지. 사진을 바라보는 그의 애틋한 시선 속엔 자신도 그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죠. 그럴만도 한 것이 그의 고독은 혼자 견디기에 너무 무겁고 오래된 것이었으니까요. 혼자 문을 열고 온기없는 거실에 들어와 TV를 켭니다. (슬프게도, 그가 보는 TV 프로그램은 '심슨가족'입니다.) 그에겐 친구도, 가족도 없죠. 사람들은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이 일하는 대형 할인 쇼핑몰의 배경과도 같은 존재니까요. 이는 그의 옷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옷색깔은 진열대나 상품색과 같은 색이죠. 얼핏 보기에 그는 차가운 블루톤의 대형 할인 쇼핑몰의 한 상품처럼 보입니다. 결국 싸이는 이 영화의 제목이 <스토커>가 될 법한 사고를 칩니다.

싸이는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고 모든 것을 사진을 통해 봅니다. 영화에서 말하듯 사진은 행복한 모습만 담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순간들만 찍으니까요. 사진만 보면 우리의 삶이 기쁘고 축복 받은 걸로 보이죠. 어느 누구도 잊고 싶은 장면을 남기지는 않으니까요.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사진을 통해선 내가 원하는 이미지들이 창조됩니다. 그래서 싸이는 꿈꿨는지 모릅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완벽한 가정을요. 그래서 저 사람처럼 될 수만 있다면, 그처럼 살 수만 있다면 삶이 완벽해 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완벽한 삶이란 없다는 걸, 우린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외로움에 지친 남자, 싸이의 식단을 한 번 볼까요?
그는 대부분 콘프레이크나 초코바로 식사를 대신합니다. 식사라고 하기엔 민망한 것들이죠.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식사란 보통 이런 식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메뉴 1위는 단연 라면일 테구요. 그리고 참치캔과 스팸류의 각종 통조림들이 뒤를 잇겠죠. 콘프레이크나 빵도 주메뉴구요. 그리고 빠지지 않는 한 가지, (절대 물을 끓이는 수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생수'도 필수품목입니다. 하지만 혼자 살수록 더 잘 챙겨먹고 튼튼해져야 합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리고 뻔한 얘기지만 그래야 남들보다 더 큰 고독을 이길 수 있으니까요. 혼자 산다고 대충 대충 지내다간 인생 남루해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뽀얀 우유에 소복히 담긴 콘프레이크처럼 깔끔하고 산뜻한 영화. <스토커>는 그런 영화입니다. 아, 물론 이제 콘프레이크 같은 건 그만 먹어야 겠죠. 자꾸 콘프레이크만 먹다간 주인공 '싸이' 신세가 될 지 모르는 일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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