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PW    쪽지함쇼핑카트




맛있는 영화이야기


눈높이가 다른 <여섯개의 시선> :::


정영선 | 2003년 11월 11일
조회 16517
스크랩 1


여섯개의 시선은 각각의 시선이 지닌 눈높이가 다릅니다. 두 가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는 영화 외적인 의미로,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느껴온 것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고, 둘째는 영화 내적인 의미로 개별 작품의 편차가 심하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진보진영 내에도 수많은 스펙트럼이 존재하듯이, 여섯 개의 시선 속에도 차이들은 존재합니다. 자, 그럼 하나씩 살펴볼까요.

1. 그녀의 무게
임순례 감독의 이 영화는 제목이 말하듯, 무게 때문에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한 여고생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고등학생의 일상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짚어냅니다. 거기엔 기교도, 수식어도 군더더기도 없습니다. 이미 임순례 감독의 전작인 세 친구와이키키 브라더스를 통해서도 보여졌듯이, 영화는 솔직 담백합니다.

2. 그 남자의 사정
삭막한 아파트, 모노톤의 세트, 무표정한 사람들. 사실 이런 요소들은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것들이라 좀 식상지 않나요? 자, 그래도 조금 더 봅시다. <고양이를 부탁해>를 만들었던 정재은 감독의 작품이니까요. 이번엔 바닥과 벽에 ‘접속하라’ 등의 말들이 써 있습니다. ‘ 이건 뭐지? 미래의 가상세계인가?’ 고개를 갸웃해봅니다. 알 수 없습니다. 이 영화의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도무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거죠. 주제의식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특히 <여섯개의 시선>처럼 주제의식을 앞세운 영화에서는 치명적인 일입니다. 전 이 영화가 전체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쾌락에 대해 말하는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왜냐구요? 아이가 자꾸 자다가 소변을 보는 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사건이거든요. 그래서 ‘소변보는 행위 = 개인의 쾌락’ 이며, 그걸 억압하는 전체주의적인 사회를 묘사하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영화의 홍보자료에 따르면 “'성범죄자의 인터넷 신상공개'를 소재로 '성범죄자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더군요. 하지만 그 주제를 간파하기란 어렵습니다. 주제에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감독의 주장하고자 하는 바조차 전달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화의 결말에서 이불에 소변을 본 아이는 소금을 받으러 다니다가 결국 성범죄자의 집까지 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남자의 사정’이야 어찌됐든, 그 성범죄자는 정말 ‘나쁜 놈’이 아닌가요?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아이를 가둬버렸으니 말이죠. 가만, 이 영화는 ‘성범죄자의 인권’에 관한 영화랬는데, 이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저런 성추행범이라면, 그 명단은 반드시 공개되어 마땅하다!’ 라는 생각드는데, 도대체 이 영화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요?

3. 대륙횡단
흔히 ‘차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소재는 ‘남녀차별’과 ‘장애인 차별’ 입니다.
아주 쉬운 주제지만 그만큼 광범위하고 일상적이죠. 여균동 감독은 한 사내에게 주목합니다. 그는 말이 어눌해서 사랑하는 이에게 고백도 못하고, 혼자 외출하는 일도 어렵고, 취직도 되질 않습니다. 그런 그가 마지막엔 광화문 사거리 ‘대륙횡단’에 나섭니다. 당연히 차들은 빵빵거리고 경찰들이 뛰어나옵니다. 그리고 영화는 끝입니다.
‘대륙횡단’이라는 제목에 잔뜩 부풀어 있던 저는 영화를 보면서 자츰 실망이 더했습니다. 여균동 감독의 시선이 아주 불편했거든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여기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연출하고 데미무어가 등장했던 영화 <G I 제인>을 예로 들어볼까요. 이 영화는 남녀차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잘못된 ‘남녀평등’에 관한 좋은 텍스트죠. < G.I 제인 >에서 데미무어는 남녀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남자가 되야 합니다. 머리를 빡빡 밀고, 근육질의 남자가 되어 그들과 똑같은 훈련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남녀평등을 몸소 실천한 여자가 되는 겁니다. 여기의 오류는 남녀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지극히 남성적인 시선으로 남녀평등을 바라본 것이죠. 대륙횡단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극히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을 강조합니다. 특히 마지막 대륙횡단은 장면은 무모해 보입니다. 장애인의 개인적인 욕망만을 부각해 장애인를 구경꾼 취급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거든요. ‘대륙횡단’은 광화문 사거리에서 이뤄져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서 먼저 이뤄져야 되는 게 아닐까요?

4. 신비한 영어나라
박진표 감독은 전직 피디답게 시청자를 자극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R'과 ’L' 발음을 잘하기 위해 아이를 수술대 위에 올립니다. 영화는 그 수술 시간을 리얼타임으로 보여주면서 단일한 사건으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강렬하고 충격적입니다. 물론 ‘소재주의’ 이라는 지적을 받을수도 있겠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것 같습니다.

5. 얼굴값
박광수 감독의 <얼굴값>은 감독의 <이름값>을 제대로 못한 영화입니다. 그의 팬이었던 저로서는 실망뿐이었습니다. 반전과 서스펜스를 내세웠지만, 이야기는 싱겁습니다.

6.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여섯 개의 시선을 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국어를 못해 정신병자로 오인 받아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됐던 네팔 여성 노동자 찬드라의 이야기 입니다. 거의 ‘믿거나 말거나’ 수준인 찬드라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기막힌 한숨이 나옵니다. 게다가 박찬욱 감독이 어찌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풀어냈는지, 차츰 찬드라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죠. 물론 찬드라의 시점샷으로 진행되는 영화 구성도 여기에 한 몫을 합니다.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지닌 의식 수준은 ‘산재 노동자’에 대한 인식 정도입니다. 특히 TV <느낌표!>에서 보여지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고마운 사람들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외부세계와 겪는 갈등과 단절감은 거기가 끝이 아니라는 걸 영화는 이야기해주고 있죠.

<여섯개의 시선>은 유의미한 영화입니다. 우리 시대의 ‘차별’에 대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을 주니까요. 계몽적이라는 지적은 피할 길 없겠지만, 이 정도의 계몽쯤은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영선
모든 것들엔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물론 병조림이냐 통조림이냐에 따라 유효기간은 다르죠.
그 날 개봉해서 먹어야 상하지 않는 음식이 있고,
적어도 몇 년간은 안심해도 되는 음식이 있듯이요.
희망. 꿈. 사랑. 미래. 용기..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이름들.
당신에게 유효기간이 남아있는 건 무엇입니까?

 정영선 님의 다른 기사 보기 >><< 정영선 님과의 대화 


Readers' Comments

여섯개의 시선 ACUWJD(이정민) - 2004/07/25
비록 여섯개 모두 골고루 다 이해할수 없지만 굳이 이해하는 것이 있다면 (신기한 영어나라?)왜냐하면 부모들의 이기심으로 한 설소대 수술 좀 부담 스럽고 휴우증도 만만치 않거든요.

내 의견 쓰기


More Articles to Explore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쓰리, 몬스터> (2004/08/07)
일탈을 꿈꾸다 < 러브 미 이프 유 대어 > (2004/02/14)
눈높이가 다른 <여섯개의 시선> (2003/11/11)
<영어완전정복> 맛있지만 영양가는 없는 밥상 (2003/10/23)
<영매> 그, 혹은 그녀와 화해해야 하는 이유 (2003/09/18)

  기사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