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스트> 모두에게 중요한 영화가 될 수 있을까
글: 윤상열
2001년 0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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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영화의 잡종교배로 탄생한 것 같은 느낌을 전해오는 "휴머니스트"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경찰을 살해하는 과정부터 영화는 황당무계함을 무기로 질주하기 시작한다. 엽기라는 대중적 카테고리 안에서 버무리고, 데쳐내고, 잘라내고, 뒤통수까지 후리는 그 뻔뻔한 수법의 첫 희생자가 경찰이라는 의미는 사회의 일차적인 치안에 부재를 드러내고, 현실성의 괴리를 그릴 것이라는 암시를 넌지시 던져주는 것이다. 마태오(안재모)의 느글거리는 나레이션에다 코믹잔혹극이라는 타이틀롤을 의식한 선문답은 결국엔 수녀의 사투리 버전이라는 놀라운 상상력(?)의 치부를 드러내기까지 한다. 그것은 수녀라는 특정한 신분에 대한 경외감과 신비로움을 깡그리 무시하게 만들어버리고, 그들의 범죄를 목격한 죄(?)로 혼비백산한 채로 도망치다가 붙들려 아메바(박상면)와의 강간신에 이르면 어이가 없어진다. 아무리 자신의 신체가 사지절단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더라도, 아무런 영화적 동의도 구하지 않은 그런 충격 요법은 웃음의 소재로 쓰기에는 그 명분이 미약할뿐더러 얄팍한 상술로 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계속해서 썩어 문드러지는 거지의 다리가 보여지는 것은 솔직히 얘기해서 너무나도 유치한 발상이다. 결국 패륜아 마태오에 의해서 제거되기는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역설적인 관계를 의도했는지 알다가다 모를 일이다. 도둑이 자기 발 저려서 잘라낸 꼴인가. 썩어 패인 우리 사회는 그런 일회적인 치료법으로 완치하기에는 너무나도 깊이 곪아있다. 여기서 감독은 자신의 신분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속내를 말하기에는 뭔가 찜찜하고, 그렇다고 입을 다물자니 이야기가 안되고, 그래서 여기저기 어정쩡하게 건들거리기만 하니 영화가 가벼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코미디도 엽기라면 블랙코미디는 노란국물이란 말인가? 온갖 잡스러운 은어와 비어, 사회적 일탈까지 갖다 붙이면 모두가 유머가 되는 세상이라지만 영화까지 기행으로 몰아붙이기에는 아메바가 똥물을 들이키는 장면만큼이나 역겹다.
그러나 영화 외적인 요소로 "휴머니스트"가 주는 매력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난다. 산울림의 '예쁜 맘 예쁜 꿈', 이미 고인이 된 원로 영화배우 최무룡의 '외나무다리', 어니언스의 '하얀미소'등을 들을 수 있는 매력은 감독 이무영의 팝컬럼니스트로의 재질을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연출에 시나리오를 겸하면서 음악까지 선곡하는 작업을 혼자서 감수는 내는 역량은 인정하지만 서두에서 밝혔듯 자기 자신에 의한 자화자찬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까지 감독 스스로가 해결 짓는 장면에 도달해서는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세상 모든 사악을 자신의 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완벽주의가 영화 내적인 면까지 승화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 본다.
기막히게도 이 영화는 꼼꼼히 뜯어보면 참으로 재기 발랄하면서도 엉뚱한 구석이 많은 영화다. 다시 말하면 자조 섞인 웃음을 입가에 빙그르르 하게 띄울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집으로 돌아가면 홀라당 까먹고 마는 일회용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어떻게 인연이 닿는다면 그 능지처참(陵遲處斬)의 아비규환을 눈으로 경험해 보길 바란다.
추(追) : 독설과 아집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혹은 현대사회의 놀라운 개인주의적 사고에 대한 시니컬한 은유를 담고 있는 "휴머니스트"는 어디까지가 온전한 오늘의 현실이며, 어디까지가 붕괴된 오늘의 사회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하는 모습은 과히 처절하다 못해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는 것 같은 같다. 하지만 과연 그게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현실 대안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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