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 비오는 날의 수채화 15년 후
글: 양유창
2001년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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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예뻤다 |
전지현과 차태현만 아니라면, 사실 이 영화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사실 그렇다. 이 영화를 보러가는 관객의 80%는 전지현과 차태현 때문에 간다. 그리고 전지현과 차태현 때문에 실컷 욕도 못해주고 극장을 나올 것이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그녀와 너무나도 귀여운 그이니까.
한국영화를 보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욕을 실컷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가 <엽기적인 그녀>이다. 영화를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곽재용 감독에게 이 프로젝트는 무리였다. 한 마디로 <비오는 날의 수채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감수성 그대로를 15년 후인 2001년에 적용하고 있으니 영화는 구태의연하고 식상하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들, 너무 뻔한 다음 장면이 그대로 머리 속에 떠오른다.
김일우가 말도 안되는 1인 3역을 하는 것과 영화 속에 제작사인 '신씨네'가 직접 등장하는 것은 애교로 봐주자. 이 영화는 해서는 안되는 것들 속에 간혹 그나마 재미있는 코미디가 삽입되면서 2시간의 러닝타임을 버텨내는 영화다. 그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순전히 얼굴마담을 잘둔 배우들 덕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나중에 두 배우가 타임 캡슐을 묻는 산을 풍경으로 아주 평범하게 보여준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보는 것보다 더 널널하고 흐릿한 심심한 쇼트다. 방금 전에 지나갔던 '엽기적인 그녀'라는 타이틀과 전혀 매치가 안된다. 그리고 등장인물인 차태현과 전지현이 차례로 등장한다. 차태현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는 것은 사실 오버다. 그런 설명 없어도 관객은 차태현과 전지현의 성격을 미리 다 알고 있고 혹시 모르더라도 앞으로 전개될 이 영화 속에 너무나 잘 드러난다. 차태현이 오버스럽게 등장했다면, 전지현은 비교적 무난하게 등장하여 시원하게 지하철에서 오바이트를 해댄다. 전지현의 오바이트 연기는 좋았다. 대체적으로 <화이트 발렌타인>보다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다.
코믹한 상황들을 수습하는 것은 다분히 만화적인 발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즉, 중간과정이 생략된 채 원인과 결과만 화면에 나오고 그 사이에 만화 속에서라면 말풍선 속에 나올 말들이 차태현의 독백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런 만화적 상상력이 짜임새 있게 이어진다기보다는 중간마다 필요할 때 어설프게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감독은 영화를 <비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로맨스와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로맨스 중간마다 코믹요소를 집어넣으면 로맨틱 코미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천만의 말씀. 그런 어설픈 로맨틱 코미디는 차라리 안하는 게 낫다. 관객 역시 헷갈리니까.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을 억지로 함께 주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시간 적당히 떼우러 온 관객을 대충 만족시키며 돌려보낼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그 사람들을 다음에 다시 오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엽기적인 그녀>는 애초 원작부터 PC통신을 기반으로 에피소드 별로 한 편씩 소개되었던 그와 그녀에 관한 이야기다. 차라리 이 영화를 에피소드 별로 나누어서 그와 그녀가 만나 벌이는 코미디로 깔끔하게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괜히 어설픈 시간 떼우기용 <매트릭스>나 <비천무> 따위 집어넣지 말고 그대신 그와 그녀의 에피소드를 좀더 감각적인 영상으로 만들고 좀더 강한 비트의 음악을 사용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N세대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흥행을 위해 <엽기적인 그녀>가 안전한 길을 선택했다는 건 안다. 신씨네는 흥행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편지>나 <약속>의 그 순도 500%짜리 진부함을 보라. 그런 진부함이 또 한국시장에서 장사가 된다. 영화를 보는 일반 관객은 그런 상투성을 일면 거부하면서도 그것이 익숙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결국 극장을 찾는다.
<엽기적인 그녀>는 배급파워와 배우들의 인지도 덕분에 흥행에서 성공하겠지만, 사실 2001년 한국영화계에서 필요없는 영화다. 중견 감독이 젊은 프로젝트를 맡아 나름대로 고군분투했을 때 겪을 수 있는 시행착오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영화다. 욕을 해도 사랑스러운 전지현이 엽기적이라기보다는 80년대 감각으로 2001년 아이들 영화를 만든 제작진의 사고방식이 더 엽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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