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고양이를 부탁해> 나도 한번 따라해보고 싶었다


글: 성재원
2001년 10월 10일

퍽이나 좋았던 영화에 대해 감상을 되짚어보는 일은 저에겐 고통입니다. 그 이유는 고약한 저의 습관에 있습니다. 타인의 단점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내려하지만, 장점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습관이 바로 그것이죠. 이 습관은 영화와의 관계에서도 적용이 되나봅니다. 잘 된 부분보다는 미흡한 부분이 없나를 주의깊게 추적하며 보기를 잘하죠. 때문에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게 되면 그 마음 한켠엔 때늦은 후회와 함께 앞에서 놓쳐버린 감동을 주는 원인들을 찾기에 바빠집니다. 물론 잘된 영화가 그렇지 못한 영화에 비해 그 수가 작은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가끔식 보게되는 좋은 영화를 저의 재수없는 습관으로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게 너무 슬프거든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도 그런 좋은 영화였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좋지는 않았습니다. 위에서 말한 저의 고약한 습관에다 마음 깊숙한 곳에 아직도 그 세력을 보존하고 있는 한국 영화에 대한 뿌리깊은 선입관이 합세를 하였고, 더구나 이 영화의 5명의 신인급 여배우들 - 이요원, 배두나, 옥지영, 이은실, 이은주 - 들의 연기력에 대한 의심까지 더해지니 좀 살벌했었죠. 싸움닭같이 볏을 빳빳이 세우고 노려보던 저의 자세는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더군요.

마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를 결혼 20년차의 언니라 생각한다면, 이 "고양이를 부탁해"는 언니와는 20년정도의 터울이 있는 귀여운 여조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인생 경험에서 오는 그런 슬픔은 아니었지만, 이제 막 성인들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 경험없는 젊은 슬픔이었습니다. 또한 아픈 현실을 품에 안고가는 성숙한 희망이었다면 모호한 현실에 도전하는 희망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가장 정이 가는 녀석은 배두나가 분했던 태희였습니다. 가족들과의 대화를 거의 단절한체 자신의 세계에 몰입해 살아가는 태희의 방에는 그녀의 소중한 책들이 자리를 잡고 있더군요. 반가웠습니다. 뇌성마비에 걸린 한 시인을 곁에서 묵묵히 도와주고, 주위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는 순수한 그녀의 모습이 맘에 들었습니다. 특히 담배없이 못사는 녀석의 습관도 맘에 들었죠. 한번은 친구집에서 놀다가 그 담배때문에 친구들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행동에 동질감이 팍팍 느껴지더라구요. 하지만 그녀석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석의 꿈입니다.

태희는 사회의 기성 틀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사상을 지니고 행동하는 이방인같은 녀석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가장 맘에 듭니다. 왜냐구요? 그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다른 삶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때가되면 직장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갖고 그러면서 늙어가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소위 비현실적인 삶을 소망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저의 경험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일생 자신이 몸담은 회사를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며 살기보다 자아를 위한 삶을 살고싶어 회사를 그만두었던 경험은 태희의 그런 소망과도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태희가 지영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장면은 너무도 가슴에 사무칩니다.

아웃사이더의 여러 의미중에 "경마에서, 인기가 없는 말"이란 것이 있더군요. 1등을 하지 못하는 말들은 경주에서 들러리 역할만 하며 힘들게 달려야 할뿐 사람들로부터 어떤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영화에서 아마도 이에 해당하는 주인공은 혜주, 지영, 비류, 온조가 될겁니다. 지영은 가난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늘 궁핍하게 삽니다. 다 쓰러져가는 집 다락방에서 텍스타일 디자인 연습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보이는 어떤 무력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상고를 졸업한 후 백으로 들어간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혜주는 다른 4명의 친구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들의 잡일들을 도와주는 저부가가치의 인물로 살아가는 실제 모습은 역시 인기없는 아가씨입니다. 비류와 온조는 쌍둥이 자매로 길에서 악세사리를 팔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무기력하고, 때로는 사회에 대해 불만스런 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5명의 주인공들이 자주 모이던 동인천의 건조하면서도 약간 황량한 모습들은 그들의 내면을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부둣가던가요? 그곳에서 세차게 부는 바닷바람을 막고자 깃을 세우고, 목도리를 꽁꽁 처매며 종종걸음을 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더군요. 각자가 속한 곳에서 별볼일 없는 상황이지만 가끔씩 그들은 핸드폰으로 메세지를 전하며, 서로 모여서 놉니다. 언제나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울상짓고 슬퍼하는게 삶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 젊은 삶에게서 희망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중간중간 녀석들이 모여 노는 장면은 일상에서 배어있는 삶에 위로가 되는 쉬운 희망들이겠죠. 락카페, 쇼핑센터, 친구의 집, 길거리에서 만나 훌훌 털어버리고 쉴대없이 수다떨고 웃고 즐기는 모습에 관객인 저도 적잖이 위로를 받았더랍니다.

그 모습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영화속의 젊은 5명의 친구들이 보여주었던 장면들이 주는 느낌들을 비슷하게나마 체험하고 싶더라구요. 후후. 내일이면 나이 서른인데, 영화 한편에 이렇게 푹 빠지다니.. 이윽고 송탄에 사는 소설가 친구와 성남에 사는 사진 프리랜서인 친구를 불러내어 동대문 운동장으로 가서 영화속에 나왔던 밀리오레와 두타에도 가보고, 그 근처 먹자 골목 식당에서 닭한마리 잡아 먹고 그랬습니다. 미국 테러의 음모론과 오만 방자한 미국의 악독함에 대한 토론, 서로에 대한 악의 없는 갈굼등을 하며 서로에 대한 친함을 확인했었죠. 길거리 노점상에서 산 조생귤을 지하철에 까먹고, 쉴새 없이 농담과 진담의 줄타기도 하고.. 제 방에 와서는 바둑, 오목, 알까기등을 했었죠. 물론 담배도 피워대면서 말이죠. 후후.. 영화속에서 본 5명의 친구들의 아기자기한 모습들이 참 보기 좋았더랍니다. 정재은 감독은 사회에 진출하려는 5명의 20살 친구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보여줬거든요. 무려 70여곳이나 서울과 인천 시내 곳곳을 촬영한 그 섬세함과 다양한 경험들을 어찌 하루만에 비슷하게 느끼겠습니까? 어림없었죠. 또한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나 나이의 차도 그렇겠구요. 그러나 친구들이 함께하며 감정들은 비슷했던 것 같더라구요.

왜 사회에 소외받은 자들이 있구, 그들의 삶이 슬프고 힘든지 이유를 대라면 끝도 없겠고, 그 문제를 비판하자면 입에 거품을 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기서 어떤 대안을 찾고 건설적인 계획을 논할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그냥 그들의 실제적인 모습을 정이가는 대사와 연기와 영상으로 담담하게 보여주는 사람도 있군요. 그냥 감성적으로 느끼고, 맘에 드는 부분은 한번 따라해보는 것이 제가 택한 이 영화를 읽는 방법이었습니다. 머리가 아파서요. 흠흠..

영화 한편에서 자신과 비슷한 인물의 모습을 보았고, 그를 통해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면 큰거 하나 건졌다고 볼 수 있겠죠? 더구나 극중 인물들이 보였던 행동을 비슷하게 따라하며 그 즐거움들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으니 정말 저에게는 딱 맞는 영화였습니다. 친구같은 영화였죠.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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