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디지털 영화의 힘, 김호정의 힘
글: 이종열
2001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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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욱 감독의 <나비>는 디지털 영화 특성답게 과감하면서 독특한 얘기를 전한다. 환경 오염이 심각한 한국의 근 미래, 지우고 싶은 기억 때문에 망각의 바이러스를 찾아 나선 안나(김호정)를 중심으로 영화는 그 가상의 공간을 더듬는다.
나는 얼마 전 휴대폰에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구를 새겨넣고 다녔었다. 그런데 지인(知人) 하나가, 기억이 사라져 가는 일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우고 싶은데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일 또한, 슬픈 일 아니겠느냐는 말을 전해주었었다. 영화 <나비>는 내 지인이 말한 슬픔처럼, 기억이 사라져버리길 바라나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쓰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지워져버린 기억을 다시 얻길 바란다. 그녀의 지워져버린 기억 속에는 어떠한 것이 있던 것일까?
<나비>는 일부 식자들이 지적했던 이야기의 모호함보다는 디지털이라는 매체의 표현적 한계가 아쉬운 작품이었다. 근사한 소재였음에도 좀 더 근사하게 나오지 못함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잡아두기엔 역부족이었던 장면이 더러 있었다. 가령, 황폐함을 나타나기에는 디지털만큼 '딱이야'도 없었으나 근 미래의 금속성, 풍광의 아름다움 같은 치장을 욕심 낼 수도 있는 장면에선 대비효과를 얻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비>에서 아주 근사한 여배우 하나를 발견해, 영화 전체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정말로 기다려왔던 반가운 만남을 선사한 안나 역의 김호정은 연기력을 바탕으로 한 성량과 외모가 참 풍부한 배우다. 표정연기만으로 몇 페이지에 달하는 대본의 대사를 대신해낼 수 있는 배우는 드물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관객의 말처럼, '마치 심도 깊은 완벽한 논문을 한편 읽은 것과 같은' 연기를 얼굴에서 다 해낸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차가운 이성재의 아내 역이 그녀였다는 것은 미쳐 기억하고 있지 못했지만, 앞으로의 역할이 무척이나
궁금해지는 배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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