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더 넥스트 베스트 씽> 전반전과 후반전의 양상이 확연히 달라진 축구경기와 같은


글: 이종열
2001년 11월 02일

영화의 마지막에 애비(마돈나)는 로버트(루퍼트 에버렛)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이 말은 정말 대부분의 관객이 하고 싶던 말이었을 것이다. 이는 가볍게 시작해서 가볍게 끝날 것만 같던 얘기가 갑자기 딴 짓을 했기 때문이다. 마치 전반전과 후반전의 양상이 확연히 달라진 축구경기를 보는 것과 같다.

물론 나는 후반전이 보기 좋았다. 전반전이 버전만 조금 달리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었다면 후반전은 양육문제를 통한 미국가정의 현 단면을 읽게 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분열되면서 현재의 가정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데 <더 넥스트 베스트 씽>은 그 단면의 최신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이 남자로부터 아기(물론 이는 다른 진실이 뒤에 밝혀지지만)를 얻고, 남편이 아닌 아이의 아버지로서만 존재하는 남자, 다수의 게이 커플 등 영화가 보여주는 현재의 가정이라는 이름은, '하나'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필요로 했던 전통적 가족상과는 다소 멀어진 개인주의적 성향의 가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안에서의 새 세대는 영화 속 샘처럼 궁금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한 지붕 아래 두 아빠가 드나들고, 게이 아빠라는 놀림을 들어야 하고…. 흔해빠진 말로, 애가 무슨 잘못인가? 고도로 발전해가는 산업화 사회는 더더욱 복잡한 가족문제를 만들 것이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의 혼란이 되겠지?

<더 넥스트 베스트 씽>은 이러한 얘기를 꺼내볼 수 있는 흥미로움을 제시하긴 했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소재거리로서만 가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외려 영화가 관심두는 건, <코카서스의 백묵원> 같은 낳은 자가 먼저냐, 기른 정이 먼저냐 하는 고래(古來的)로부터의 김빠진 물음이다.

죤 슐레진저 감독은 자신의 걸작인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년)에 나오는 환각에 빠진 카우보이처럼 헤매고 있는 듯 보인다. 역시 나이 탓으로 돌려야할까? 내가 알고있는 사람답지 않게 이번 작품은 너무 평이했다. 노년의 철학이 담긴 그의 차기작을 만나고 싶다. 솔로몬 재판 같은 것은 후배들에게 맡겨두고 깊이를 보여달라. 마돈나가 다시 나와도 좋다. 난 그녀의 이중생활이 만족스러우니까. 물론 그녀의 명곡, '아메리칸 파이'가 또 나와도 난 마냥 좋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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