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어둡고 이해하기 힘든 사랑
글: 성재원
2002년 01월 09일
 |
하지만 한기는 정작 선화가 자신의 손아귀에 잡히는 순간부터 사탄의 재현에서 사람의 아들로 변신을 하더군요. 성경 속의 사탄이 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지만 한기는 선화의 고통과 불행함을 동정하고 함께 괴로와합니다. 영화가 이렇게 복잡한 인간 내면의 문제로 파고들 때 저는 참 반가우면서도 괴롭습니다. 진부함은 켤코 심오함에 대적할 수 없지만 편하고 안 편하고는 정반대라서 그렇습니다. 아, 심오함은 때때로 그에 걸맞은 아름다운 영상을 생산해내기도 하더군요.
선화를 향한 한기의 시선이 욕망에서 연민으로 바뀔 무렵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음침한 사창가 골목과 천박한 욕망이 꿈틀대는 정사의 방으로 바뀝니다. 비열함, 더러움, 폭력이 가득한 이곳을 남녀 주인공의 애증이 교감하는 기적의 장소로 바꿔놓는 김기덕(A) 감독의 연출에 감히 박수를 보냅니다. 방 내부가 훤히 드러나보이는 이중거울이 설치된 어두운 밀실에서 조용히 응시하는 한기에게선 선화를 향한 사랑이 관객을 향해 모습을 드러냅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진흙탕에서 피는 연꽃이라는 느낌마저도 들더군요. 그에 호응하여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한기를 향한 증오에 조금씩 애정을 더해가는 선화의 모습은 역설적이지만,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가 되어버리는 저 자신의 감정에 놀랄 따름입니다.
그러나 아름답운 영상을 통해 한기와 선화가 함께 도달해가는 감정의 지평은 사랑이라고 하기가 웬지 마땅치 않습니다. 그 둘의 모습은 각각 한기의 사랑에선 사디슴이 선화의 사랑에선 매저키즘이 그 본질이라 느껴지기 때문이죠. 사디슴이나 매저키즘이나 한쪽 대상이 존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에 오히려 그 대상에게 집착, 희구하기 마련이고 또한 그 과정에서 애정의 모습을 심심찮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저의 판단에는 한기의 부하인 명수가 보여준 선화에 대한 사랑이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명수는 선화를 사랑하기에 선화가 원하고 자신이 생각하기 선화가 행복해지는 삶이 결코 창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조직을 배신하고 선화를 탈출 시키거든요. 반면 한기는 표현하기 힘든 내면의 감정들을 한껏 그 큰 눈동자에 머금은 체 선화를 바라보며 겉에서 맴돌 뿐입니다. 사랑한다면 그녀를 본래의 제자리로 돌려주어야 마땅할 것인데 사랑하는 것 같은 한기는 한사코 그녀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일견 한기의 사랑은 왜곡되고 비뚤어진 자아상으로 인해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는지 모릅니다. 또한 자신의 품에 들어오기 까지를 총체적으로 기획한 주모자로서 선화와 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무의식으로부터 거부했을지도 모르구요. 보편적인 사랑을 하며 고통하고 반발하는 명수를 짓밟으며 “깡패새끼가 무슨 사랑이야!” 하며 유일하게 내뱉은 한기의 처절한 한마디가 한기를 고뇌를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아니 절대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랑의 논리를 깨버리고 가는 한기와 선화의 관계는 영화의 마지막까지 도발적입니다. 또한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하는 서로를 향한 무언의 응시는 저로 하여금 다만 “그래 둘은 그렇게 살아가는 거야”하는 체념적인 긍정으로 결론에 도달하게 합니다.
운명적인 사랑.. 역시 진부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이렇게 정의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도 후반부의 환타지적인 구성을 취하면서 해체될 수 밖에 없는 그 둘의 사랑을 말 그대로 운명적으로 이루어 놓더군요.. 환타지라, 그래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영화관을 나왔습니다. 어두운 뒷맛이 남는 영화였는데 길을 나서니 비가 오더군요.. 기분 묘하더이다.
P.S : SBS 드라마 스페셜 [피아노]에서 한억관으로 분해 열광해마지 않았던 조재현씨의 연기.. <나쁜 남자>에서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후후..
This article is from http://www.cinel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