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루> 슬프고 아름답고 아쉬운 영화
글: 성재원
2002년 0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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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가제 특공대원 후지에는 전우들의 죽음과는 구별되어 살아있는 자신에 대해 늘 죄책감을 안고 살다가 결국 천황의 부고를 들은 후 며칠뒤 눈덮인 산속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삶을 마감합니다. 저에게 후지에의 죽음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습니다. 비인격적 실체인 국가가 존립을 위해 과연 개인에게 죽음을 강요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의식이 생기거든요.
전쟁이란 것은 한줌밖에 안되는 국가의 지배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이기적 행태라 생각하기에 또한 어떤이유로도 전쟁이란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거창한 사기에 넘어가 전쟁에서 초개같이 죽는 것을 개죽음이라 봅니다. 자국이나 적국 국민들 모두에게 적용되는 개죽음이죠. 그럴바에는 반전운동을 하다가 투옥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 <호타루>의 후루야타 야스오 감독은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의 휴식처인 여관주인으로 어머니같이 그들을 품고 사랑해주었던 도미코(나라오카 도모코)를 통해 말을 하더군요. 도미코를 위한 축하잔치에서 도미코는 후지에의 손녀를 보고는 불현듯 옛날 전쟁터에서 산화해간 젊은 아들들을 떠올리며 슬픔에 차 통곡을 합니다. 어떤 부모든 자식을 위해 대신 죽을진대, 어버이라는 국가가 자기의 자식인 젊은이들을 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거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후지에의 자살은 엄밀히 말하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타살입니다. 합법적인 살인 행위이구요.
암튼 백발의 도미코가 후지에의 어린 손녀를 부여잡고 오열하는 장면에서 저 또한 조용히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도미코의 눈물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수많은 전쟁터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눈물로 느껴집니다.
사실 영화의 주인공은 후지에가 아니라 어촌인 치란에서 양식업을 하는 부부 야마오카(다카쿠라 켄)와 도모코(다나카 유코)입니다. 아내의 이름을 따라 "도모마루"라 지은 어선에서 함께 작업하는 부부의 모습은 평화로운 어촌 치란의 풍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어촌 치란이 과거 일본군 특공대의 주둔지였던 아픈 과거가 있는 것처럼 이들 부부 역시 치란의 과거와 연결된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야마오카 역시 후지에처럼 특공대원이었구요. 아내 도모코가 사랑했던 사람은 원래 조선인 청년 카네마루였습니다. 결국 카네마루가 죽고 살아남은 야마오카와 결혼하게 된거죠. 도모코의 심장질환이 외적인 이유지만 이들 부부사이에 자식이 없음은 아마도 도모코가 입은 과거 사랑의 상처로 인한 결과일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이들 부부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슬프게 느껴집니다. 눈덮인 숲에서 학 한쌍이 노니는 모습을 보고 야마오카 부부가 그 모습을 흉내내며 놀이를 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와 저절로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리지만 마음 한쪽이 살짝 아려오더군요.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우가 뒹굴며 노는 장면과 견줄만 합니다. 러브토리에서의 쾌활하고 외향적인 젊은느낌의 눈놀이와는 다른 약간은 절제되는듯 하면서도 내밀한 사랑이 눈처럼 폴폴히 날리는 그런 눈놀이 말이죠. 못 믿겠다구요? 일단 한번 보시라니깐..
늙은 여관주인 도미코의 부탁으로 부부는 카네마루의 유물을 고향 안동에 있는 친척들에게 돌려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야마오카의 자기부정의 노력과 카네마루의 유물 전달은 두 부부를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랑으로 공고히 묶어주며 끝이나죠.
영화에서 아쉬운점은 과거 속에서만 등장하는 조선인 청년 카네마루입니다. 영화 중반부터 야마오카와 도모코 그리고 여관주인 도미코의 뇌리에 누구보다 강하게 등장하면서 이야기를 주도하고 영화 제목 '호타루'(반딧불이)로 과거와 현재에서 늘 되살아나는 전쟁터의 젊은 슬픔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의 처지에 대한 인식은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과거의 회상씬에서 친하게 일본군과 지내던 카네마루의 모습은 그가 받았을 차별과 억압을 외면하고 미화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징용되어 죽음을 앞둔 카네마루의 심정은 분명 일본청년 야마오카와 후지에와는 다른 무엇이 있을테지만 영화는 그부분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마도 영화는 과거 전쟁중에 죽어간 사람들이 아니라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싶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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