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나기>와의 대화
글: 강희태
2000년 02월 11일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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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보기의 한 방법
<우나기>라는 영화는 앞에 줄거리에서도 드러나듯이 잘못하면 그렇 고 그런 치정극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끝내 사람 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런 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 일까? 우선은 강변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람들의 마음을 보다 넉 넉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리라. 또 주인공 야마시타가 닫아 두었던 마음을 열고 새롭게 삶을 살아가려는 모습이 감동을 주었으리라. 하지 만 과연 그게 다일까?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몇 개의 사물이나 사건의 의미가 전복되는 것이 아닐까? 한 사물이나 사건에 담긴 의미가 변화해 나가는 것이 야 마시타의 변화와 맞물렸기에 영화가 부자연스럽게 삐걱거리는 일 없이 사람들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아닐까? 그런 것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파헤쳐 보련다.
-칼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야마시타는 식칼로 아내를 몇 번이고 찔러 죽
인다. 자수를 한 야마시타는 8년 동안 교도소에 있다가 가석방되어서
나온다. 하지만 아직도 '아내의 내장을 후비던 칼날의 감촉'을 잊지 못
하고 괴로워하면서 세상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래서일까? 야
마시타는 목수 친구가 '작살'로 우나기(장어)를 잡아보라고 했을 때 차
마 하지 못하고 이 방법은 마음에 안 든다고 얘기한다. 여기까지는 야
마시타에게 칼이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놓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게이코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는 때에 게이코의 옛
애인인 토시마가 나타나 게이코를 협박할 때 칼의 의미는 변화한다.
'가석방으로 나오면서 사건에 휘말리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그
래서 자살을 기도한 게이코를 맨 처음 발견했을 때에는 '사건에 휘말
리는 것'이 두려워서 바로 구해주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을 부르지요?)
자신이 운영하는 이발소의 면도칼을 들어서 토시마의 얼굴을 그어버린
다. 두려움을 유발시키는 존재였던 칼이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여는 문
으로 변하는 것이다.
-도시락 혹은 벤또
낚시를 하러 가는 야마시타에게 아내는 항상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언제 들어올 거냐고 물어본다. 이 때 '도시락'은 불 륜을 위한 도구였다. 이것은 야마시타에게 뿌리깊게 각인되어 버린다. 그래서인지 야마시 타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한 게이코가 밤에 우나기를 거두러 가는 그에 게 '도시락을 싸서 다리 위에서 기다릴께요'라고 말하자 야마시타는 '도시락?'을 반문하면서 놀란다. 다리 위에서 도시락을 가지고 기다리 는 게이코. 하지만 야마시타는 도시락을 받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그 렇지만 게이코는 계속해서 도시락을 싸서 기다린다. 다리 밑으로 배를 타고 그냥 지나가는 야마시타에게 도시락을 줄에 묶어서 내려보내는 게이코의 마음이 눈물겨울 정도로. 이렇게 도시락은 불륜을 위한 도구에서 사랑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 로 180도 바뀌어 버린다. 게이코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던 야마시타는 가석방이 취소되어 교도소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게이코가 싸준 도시락을 받아 들인다.
-우나기
야마시타는 세상과 벽을 쌓고 '내게 귀 기울여주고,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우나기와 대화한다. 그럼 그는 진짜로 우나기와 대화했던
것일까? 우나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죽은 그의 아내가 아니었을
까? 그래서 그는 옛날 감옥 동료가 우나기를 수조 속에서 꺼내 바닥에
던져 버렸을 때 '무슨 짓이냐?'며 화를 냈을 것이다. 아내에 대한 사랑
이 컸던만큼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큰만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뻐끔
거리고만 있는 우나기를 무척이나 아꼈던 것이다. 수조 속에서 헤엄치
는 야마시타의 모습을 화면에 담은 것은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아내
의 기억 속으로만 묻혀 있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이
런 야마시타였기에 게이코를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우나기를 강에 풀어준다. 목수 친구가
그에게 해줬던 말을 기억하면서. 우나기는 알을 낳기 위해 2천㎞의 여
행 끝에 적도 부근까지 간다는 얘기. 수조에서 강으로 풀려난 우나기
는 이제 먼 대양을 향해 갈 것이다. 그 우나기처럼 야마시타 또한 자
신 속에 갇혀서 지내지 않고 세상과 부딪히려는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주인과 대화하기
우주인을 기다리는 그 동네 청년은 외계인과 접촉하기 위해서 거대 한 원형 광장에 장치들을 만든다. 외계인을 기다리는 그 청년과 야마 시타의 대화. 야마시타 "우주인이 우리와 대화하려 할까?" 청년 "마치 당신처럼요? 당신은 우나기와만 대화를 하지요?"(정확한 대사는 아니 지만 대충 이런 내용의 대화가 오고감). 마음을 닫고 있는 야마시타. 우주인을 기다리는 이 광장에 외계인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외계인 과의 대화는 실패한다. 하지만 광장은 토시마 사건 이후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이 동네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는 장으로 변한다. 결 국 이 광장에서 외계인과의 대화는 실패했지만 '또 하나의 외계인'인 야마시타와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 밖에 다른 얘기들
1 <해피엔드>에서 최민식은 아내인 전도연을 죽인다. 아마 최민식의 마음이 야마시타와 같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우나기>는 <해피엔드>와 이어지는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해피엔드>는 안 봐서 잘은 모르겠다).
2 이 글이 너무 야마시타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서 쓰여진 것 같다. 야마시타가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게이코에 대해서도 주목하면서 영화를 보시길. 게이코의 변화도 보면서 말이다.
3 이 영화에서 또 중요한 것이 작가가 은연 중에 표현하고 있는 공동 체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특히 토시마 일당이 들이닥쳤을 때 야마시 타의 과거를 아는 목수 친구가 야마시타가 사건에 휘말릴까봐 야마시 타 대신 토시마 일당을 때리면서 경찰관에서 '이 녀석을 때리는 것은 바로 납니다. 잘 보세요!'하는 장면은 압권이라 생각한다. 여하튼 이 영 화에서는 도시화가 이미 거의 다 진행된 사회에서 그래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현실 속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다시 되새김하게 해 준다. 최근에 우리 나라 도시 지역에서도 공동체 운동이 조금씩 생기 기 시작했다는데. 과연 이 영화의 메세지가 우리들 가슴에 얼마만큼이 나 여운을 남길 수 있을까?
바람따라 흘러가는 떠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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