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버스, 정류장> 오지 않는 버스, 승객도 없을 것 같다


글: 손정호
2002년 02월 28일

<버스, 정류장>은 제작 때부터 영화음악 때문에 관심을 많이 가진 영화다. 그만큼 많은 기대를 하고 보기도 했지만, 그런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버스는 텅 비어 있고, 정류장에서 한시간 이상을 아무리 기다려봐도 버스는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버스에 승객이 많이 탈 것 같지도 않다.

영화 <버스, 정류장>은 속물 같은 세상의 변두리에 서있는 두 남자와 여자의 만남과 이해에 관한 영화다. 남자는 서른이 넘은 학원 국어 강사이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꾸면서 살아왔지만 그 꿈은 재능과 현실의 압박 속에 쉽게 이루어지지 않고(<와이키키 브라더스>의 희석된 괴로움) 남자는 괴로워한다. 저런 저런...... 그리고 그를 둘러싼 속물 같은 사람들은 그를 비웃고 그는 외로움을 느낀다. 여자는 원조교제를 하고, 가정은 혼란스럽고, 옆에 있던 친구 하나는 자살한다. 그것도 다이어트 때문에. 하아~~ 그녀는 당돌함 속에 인생에 대한 조숙함을 가지고 시니컬하게 웃지만 눈물을 흘린다(<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효신이가 문득 생각나기는 했지만... 쩝...). 그 둘은 학원과 버스 정류장이라는 공간 사이에서 만나고 때로는 엇갈리기도 하지만 서로를 점점 이해해간다.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기대어 버스를 타고 어딘가 사라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흠......

처음에 이 영화는 독약 같은 세상 속에서 중독 되기를 거부하면서 살아가는 고립된 두 남녀의 괴로움과 그들이 만나고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아직도 들꽃처럼 남아있는 희망적인 모습들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살짝 우회적으로 돌려서 던져주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머리 속에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다. 조금 감각적으로 잡아낸 몇 장면들과 어느 정도 매력적인 영화음악의 선율이 마음속에 잠깐 머물다가 휙 날아가 버리는 것이 전부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는 않고, 엑스트라들도 유심히 보면 어색하게 굳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같은 시간의 같은 사건을 다른 시점에서 찍어서 약간 다르게 보여주는 방법도 진부하게 느껴지고, 페이드 인 페이드 아웃도 너무 많이 쓰여서 여운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순전히 엉망진창인 영화 만은 아닌 것이,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화면은 참 예쁘다. 그리고 산뜻한 면들이 약간 있기는 있다. 학원에서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농담이나, 돈으로 고등학생을 사서 사랑이라고 우기는 아저씨의 느끼함 같은 것들(<고양이를 부탁해> 만큼 뛰어나게 산뜻하지는 못하지만). 하지만 전체적으로 영화에 어떤 주제의식이나 시나리오의 절묘함은 없다. 근사한 버스 정류장에서 멋진 버스를 타고 무너진 인간의 잔해들이 가득한 도심 속을 유유히 빠져나가고 싶었지만......기다리던 버스는 오지 않았다.

*보태는 말*

"버스, 정류장"의 영화음악을 맡은 조윤석은 언더 음악계에서는 거물에 속하는 뛰어난 뮤지션이다. '미선이'라는 전설의 밴드에서 보컬, 기타, 작사, 작곡을 했었고, 지금은 '루시드 폴'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프로젝트 활동중이다. 미선이와 루시드 폴이라는 이름으로(루시드 폴의 독집 앨범 성격이 가미된 <버스, 정류장> 사운드 트랙 - 불행하게도 이 앨범은 전작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사서 돈 아깝지 않을 정도는 된다 - 을 포함하여) 시중에서는 세 장의 음반을 구할 수 있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찾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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