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박찬욱 감독이 맘에 든다
글: 성재원
2002년 0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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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흐름과 맞물리는 공간의 변화는 하드보일드 장르에 대한 선입관을 거부한다. 평화로운 자연에서 어둡고 침울한 도시로 그리고 다시 자연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 자연은 영화의 장르적 속성을 좇아 변증법적으로 진화한 결과 초반의 자연과는 전혀 이질적이다. 도시에서 갈등이 잉태되지만 해산은 어머니 품, 자연이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유산이다. 생명의 자연이 피비린내 진동하는 살육의 자연으로 변한 것이다. 물위에 동동 떠서, 조각조각 찢겨져서, 구석구석 구멍이 난 채로 널브러진 주검의 처연함이 참혹하다.
<복수는 나의 것>의 핏빛 찬란한 자연의 이미지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목소리다. 그러나 이 목소리는 맑스의 목소리와는 좀 다르다. 왜냐면 철저하게 노동자에 의한 자본가의 타도라는 맑스의 노선을 비껴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판단을 유보하고 비개인적인 관점에서 감독이 처리한 노동자, 자본가, 혁명가의 죽음은 계급지향적이지 않으며 대안적이지도 않다. 차라리 극단적인 전면적인 부정과 더 가깝다. 이와 통하는 것은 참혹한 자연 속에서 정처 없이 배회하는 광인의 이미지다. 일그러진 얼굴의 광인은 뒤틀린 몸으로 감독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영미(배두나)는 이런 감독의 독특한 시각이 잘 묻어나는 캐릭터다. 그녀는 혁명적인 팜므파탈 캐릭터다. 재벌해체를 외치는 혁명적 무정부주의자인 그녀는 통념상 정의의 편에 속한다. 그러나 그녀는 순진한 류를 선동해서 유괴사건을 조작하고 류를 파멸로 몰아가는 소위 요부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다. 또한 팜므파탈의 전형적인 죽음도 기꺼이 수용하고 말이다. 그뿐인가? 혁명의 완성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임무도 무서운 조직의 힘을 빌어 완수하고 있다. 가히 두렵고 위험한 존재라 아니할 수 없다.
영미라는 캐릭터 외에도 감독의 뒤틀린 비판의식이 시각과 청각의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빼어난 장면을 빼놓을 수가 없다. 류와 장기매매 사기꾼들과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희미한 도시의 전경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계단을 올라가는 진한 실루엣은 강한 미적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누나의 신음소리를 엿들으며 일렬로 늘어앉아 자위를 하는 청년들의 역겨운 모습에 이어 무덤덤하게 라면을 빨아먹는 류(신하균)의 표정은 찬사를 불러일으킨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느끼지 못한 장면장면의 아름다움을 즐기게 되어 흐뭇하다.
감독은 정치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인 입장을 표방하고 있지만, 각 인물의 친밀도에 있어선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카메라의 시선이 결정적 순간에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류가 타인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각 인물들을 똑같이 보여주거나 먼발치에서 크게 조망을 한다. 그러나 동인의 살해장면에서는 결정적 순간에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동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를 통해 죽음을 알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관객은 류와 영미의 시선으로 동인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의 주관적인 느낌일 가능성이 참 많지만, 이 사회문제 책임의 대부분은 가진 자들에게 있지 않은가?
어쨌든, 포근한 봄날이 극장 문을 나서는 나를 포옹하려 다가섰지만 눈에 피가 아른거려서 현기증만 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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