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로얄 테넌바움> 이 많은 캐릭터, 이 풍부한 사연들


글: 이종열
2002년 04월 02일

<로얄 테넌바움>은 맛있는 중편소설과 같다. 천재가족인 테넌바움가의 다사다난한 가족사를, 적확한 영상문체와 살아있는 캐릭터 구축으로 필름에 새겨넣은 이 작품은 마치 양장본 소설을 읽는 듯한 그럴듯함을 안겨준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각 캐릭터들이 함유한 사연들이다. 글쓰기 신동 마고(기네스 팰트로), 금융 신동 채스(벤 스틸러), 테니스 신동 리치(루크 윌슨) 형제는 이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 로열 테넨바움(진 해크만)으로 인해 20여 년간 각기 헤어져 살다, 조우하게 된다. 그러면서 사연 많던 지난 시절과 각각의 (말그대로의)'특성'들을 표출하기 시작한다. 줄담배와 방자한 연애로 얼룩진 20년을 산 마고, 아내의 비행기사고사 이후, 비상대피훈련을 하는 아디다스 트레이닝복 애용가 채스, 피 다른 누이 마고에 대한 연정 때문에 먼 항해를 떠났던 리치. 이들은 천재성이 사라진 20년 후, 또다른 사연덩어리 캐릭터들과 관계 맺으면서 조각난 가족의 상처를 드러내 보인다.

<오션스 일레븐>의 캐릭터들이 맡은 바 임무만을 충실히 책임지고 있다면 <로얄 테넌바움>의 다수 캐릭터들은 서로와 서로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텍스트를 살찌운다. 또 <로얄 테넌바움>의 캐릭터들은 각기 사연들이 워낙 돌출적이고 정상으로부터 살짝 빗겨나 있어 시종 코믹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것이 일그러진 가족사에 걸쳐있는 일이기에 마냥 웃을 수많은 없다. 가령, 트레이닝복 착용만을 고집하며, 틈틈이 대피훈련을 하는 냉철한 채스와 두 아들을 보면 상황은 웃기나 그 고집과 반복 행위를 하게끔 한 이유와 사연까지 알게되면 씁쓸한 뒷맛이 오래 남는다.

<로얄 테넌바움>은 이처럼, 웃음이 자연스레 유발되는 정겨운 드라마이자, 동시에 생각이 머물게 하는 쓰디쓴 블랙코미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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