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너무나 인간적인
글: 이윤형
2002년 06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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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영화로 옮길 때에는 영화적인 상상력이 많이 사용되기 마련인데 그런 것을 창조하는 것에는 실화가 큰 도움이 되지만 ‘실제’에 대한 문제가 창작자나 관람자가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일급살인>의 경우에는 실화에서 힌트를 얻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소설이나 만화를 영화로 옮긴다면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그 원작을 독자들이 왜 좋아했느냐, 일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원작을 영화로 옮기는 일은 별로 없으니까. .
그런 면에서 <스파이더맨>은 끝까지 읽는 데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지만 노골적인 매력이 있으며, 결국에는 이 작가가 강박과 비슷한 정신병을 갖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던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보다는 월등히 낫다. 필요한 부분과 필요치 않은 부분에 대한 선택이 꽤 정확했고 어느 면에서도 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미줄로 공중을 날아다니며 가장 현실적인 판타지의 극치를 보여주는 스파이더 맨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캐릭터는 엄청난 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진한 부분이 -아쉽다는 말이 맞으려나- 있다면 인물간의 스케일이다.
주윤발이 한창 바바리 코트를 휘날릴 때 성냥개비 한 번 안 물어본 사람 없고 요즘에는 축구영웅이 되는 꿈을 안 꾸는 사람 없듯이 <스파이더맨>류의 영웅적 판타지는 대리만족을 이끌어 내는 게 가장 주요한 몫이다. <수퍼맨>이나 <배트맨>에서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인물들의 평소 모습이 (어떤 게 평소 모습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반인과 다를 게 없고 더욱 더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영화에서 그들이 펼치는 화려한 선행의 액션이 관객을 잡아끄는 결정적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평소의 모습과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했을 때의 모습이 둘 다 매력적이어서 어느 한 쪽에 더 나은 만족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니 관람 후 허전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스파이더맨의 판타지에 대한 부분이 너무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판타지가 부족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그린 고블린’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것과 스파이더맨인 파커가 사랑하는 메리 제인 때문이다.
<배트맨>에서 펭귄 아저씨는 얼마나 매력적이었는가. 가만 서있기만 해도 뭔가 나쁜 짓을 할 것처럼 생긴 전형적인 악당. 하지만 <스파이더 맨>에서의 악당인 고블린은 우습기 그지 없다. 귀엽다. 액션 장면이나 스파이더 맨과 대화하며 움직이는 몸 동작은 심형래 감독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이 부분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다. 고블린이 전체적인 영화의 판타지는 떨어뜨리지만 샘 레이미의 스타일은 살려준다. 샘 레이미가 창조해낸 고블린은 그렇게 우스운 캐릭터이다. 고블린은 괴물이기 이전에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고블린의 행동에서 이 영화에 대한 감상법에 약간의 저지를 당할 것이다. 철저한 악당이고 거대한 음모를 갖고 있어야 영화의 재미는 더하겠지만 어설픈 악당을 보는 것으로써의 재미는 이대로가 더욱 좋은 것이다.
거미인간으로 변하기 전의 파커는 <포레스트 검프>의 검프와 똑같은 대접을 받는 인간이다. 영화의 처음 부분에서 보여주듯 파커는 검프와 같고 그에게 사랑의 대상인 메리 제인은 <포레스트 검프>에서의 제인과 같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스파이더 맨의 멋진 활약상 뿐만 아니라 제인과의 사랑도 중요한데 그 사랑을 위해서는 스파이더맨 뿐만이 아닌 파커 역시 비중 있게 다뤄야 했던 것이다.
애초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들 것 같던 이 영화가 샘 레이미에게 넘어간 것은 좋은 결과일까. .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 같이 생긴 라덴 할아버지의 막강한 파워에 세계가 어쩌고 하던 미국이 번데기처럼 바짝 쫄아 버린 때에 스파이더맨 만한 영웅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은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너무나 인간적이다. 그것이 제임스 카메론과 샘 레이미의 차이인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거미가 된 인간이 아닌, 거미처럼 된 인간인 것이다. -실제 원작에서의 스파이더맨은 거미가 된 인간보다는 과학 천재인 인간에 가깝다- 전형적인 판타지에 사람냄새 나게 만든 샘 레이미의 선택에는 일면 찬성하고 그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펼치는 액션에는 필자 역시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지만 그가 추구하는 유치한 영상의 미학은 ‘어른들’에게도 판타지를 안겨주는 것에는 약간 미진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측면을 제외한다면 이 영화는 아주 큰 오락적 재미를 갖고 있고 그 영화적 매력 역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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